기획투데이 : 업체탐방

‘운명’같은 홍어... [흑산도홍어]

‘운명’같은 홍어... [흑산도홍어]

by 안양교차로 2014.04.18

점을 깨소금에 찍어 잘근잘근 씹어 본다. 처음에는 시큼하고 다소 역하게 느껴지지만, 오래 씹을수록 제대로 된 맛이 느껴진다. 게다가 코가 시원하게 뚫리는 감각은 다른 음식으로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비염 증세마저 사라지게 하는, 탁 뚫리는 숨쉬기의 카타르시스’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홍어회에 삶은 돼지고기와 잘 익은 배추김치를 얹어서 막걸리를 곁들여 먹으면 ‘홍탁삼합’이라고 일컫는다. 톡 쏘는 맛과 독특한 향, 개운한 뒷맛. 이처럼 특별한 홍어를 대접하는 곳을 찾아보았다. 안양 중앙시장 건너편 중앙 성당 근방에 위치한 ‘흑산도 홍어’가 그곳이다. 간판은 평범하지만 이 집은 이름난 ‘홍어 맛집’이다.
주소: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707-323 / 문의: 031-468-4566
“‘운명’이죠.”이곳을 운영한 지 18년이 넘었다는 정효진 대표는 홍어를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홍어가 운명인 이유를 세 가지 들었다. 자신의 얼굴이 홍어를 닮았다는 것. ‘홍어를 닮아서 홍어장사와 천생연분’이라며 농담을 건넨다. 두 번째는 홍어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를 공부하게 된 점이다. 그는 홍어 요리를 배우기 위해 4년간 홍어요리를 잘 한다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농수산물 센터에서 홍어를 만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홍어에 관한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가 풀어놓는 홍어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흑산 앞바다에서 홍어를 잡아 열흘 넘게 배에 실어 목포나 영산포로 운송하는 동안 신선도를 잃고 부패한 홍어를 시식한 것이 향토음식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부터,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 그리스 신화 이야기까지 나왔다.
세 번째로 그가 꼽는 것은 매스컴 출연 및 수상 경력이다. 그는 서울국제음식박람회, 안양맛자랑 요리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KBS, SBS, MBC의 각종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는 ‘ 잘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한 것일 뿐인데 상이 이처럼 많이 따라오는 경우는 드물지 않겠느냐’며 이 역시 홍어와 자신이 천생연분인 이유가 아니겠냐고 겸손하게 언급했다.
부인이 큰 힘이 되어 주다
사실 그가 홍어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에는 부인 김윤경씨의 영향이 컸다.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해, 좌절했던 자신을 일으켜준 것이 부인이었다고 그는 언급했다. “제가 홍어를 유독 좋아하니 홍어장사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했죠.” 처음에는 그도 반신반의했지만,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벅차고 험한 일만 도맡아 하는 아내를 보며 그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홍어회집은 많아도 직접 홍어를 삭혀서 요리로 내놓는 집이 없다는 점도 그의 도전의식을 부추겼다. 그렇게 이십 여 년이 흘러, 이제야 홍어로 제 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외국 사람들이 ‘넘버 원’으로 꼽는 곳.
외국인들이 이곳을 찾는 일이 많다. 정 대표는 그간 외국인들이 다녀간 흔적들을 보여주었는데, 한 상자가 빼곡할 정도였다. 그림과 함께 ‘특이하다! 맛있다!’라고 남기고 간 스페인 사람, 매 해마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는다는 호주 재벌과 찍은 사진,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일본인의 손편지까지. 한국인들도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마니아적인’음식을 어떻게 외국인들이 즐길 수 있다는 말일까? 그는 외국인들에게 홍어 요리를 어필하는 비법을 알려줬다.
“김치의 맛을 알기 위해서 묵은지부터 내놓으면 안 되는 것처럼, 홍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육사시미를 내놓고, 홍어 갈비살, 홍어 아이스크림으로 약간 단계를 높이고, 홍어찜으로 이동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조금씩 홍어의 매력을 알게 된 외국인들은 이내 이곳의 ‘단골’이 되고 마는 것.
홍어는 참을성
그는 홍어를 ‘참을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국내 수온이 상승하면서 홍어의 대세가 되고 있는 대청도의 홍어와 외국산에서는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진 칠레산 홍어로 직접 요리한다. “삭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온숙성, 아이스, 황토, 부뚜막..저는 제가 개발한 방식으로 삭히고 있습니다. ‘숙성 홍어의 제조방법’이라는 논문으로 특허를 냈죠.” 그는 한 주먹의 짚과 홍어를 포장하여 그가 특허를 낸 수중공법을 이용한다. 물의 온도를 맞춘 뒤 홍어에 짚을 넣은 뒤 일정한 압력을 가하는 것. 미세한 조정이 요구되는 이 같은 과정에는 당연히 참을성은 물론 홍어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삭혀야만 제 맛과 빛을 찾을 수 있는 홍어회를 보면, ‘사람의 마음 역시 그렇지 않은가’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 치고 화를 내는 사람을 못 봤다면서 홍어는 참을성의 요리이며 이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언급했다. 홍어는 거담에 효능이 있고 소화촉진과 혈액 순환이 좋고, 장을 깨끗하게 하니 이해가 간다. 앞으로도 좋은 재료와 깊은 정성으로 삭혀낸 홍어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를 기대한다.
취재 이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