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고두방

고두방

by 안양교차로 2013.07.16

영양 오리탕, ‘팔천탕’ 이야기

두부요리, 청국장으로 이름 난 고두방에서 신 메뉴를 계발했다는 소문이 넘실넘실 들려왔다. 소문의 주인공은 ‘팔천탕’. 귀동냥으로 들은 바로는 ‘맛이 좋다’는 것, ‘뒷맛이 깔끔하다’는 것, 그리고 ‘오리탕’이라는 이야기였다. ‘팔천탕’이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어느 지역의 역사 속 전설의 음식을 재현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름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상상으로 만들어 본 ‘팔천탕’의 갖가지 수수께끼를 풀어보기 위해 의왕시 청계동으로 향했다.
문의 :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823-2번지
031-426-3329
“왜!”, ‘팔천탕인가요?”
마침 점심시간에 맞춰서 방문한 탓에 고두방은 ‘팔천탕’에 대한 궁금증을 확인 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바쁜 모습이었다. 평일 점심시간, 인근에서 몰려온 직장인들로 꽤나 넓은 주차장은 차들로 꽉 찼고, 주문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여기 팔천탕이요!”라는 소리에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눈치껏 살펴보니 누군가와 ‘팔천탕’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한 보 후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팔천탕’ 한 그릇을 주문했다.
밑반찬과 함께 뚝배기에 담긴 팔천탕, 그리고 밥 한 공기가 나온다. 맛깔스럽게 담긴 밑반찬들이 주인공 ‘팔천탕’을 잠시 잊게 한다. 역시나 콩 요리 명가라는 명성답게 청국장으로 무친 우거지부터 반찬 하나하나가 점심시간 깔깔해진 혀끝을 달래며, 식욕을 자극한다.
오리탕이 뚝배기에 담겨져 나온 것이 생소하고 한 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뚝배기에 수저를 한 번 담그고, 맛을 본다. 지극히 주관적인 첫 맛의 느낌은 ‘향긋하다’는 것. 구체적으로 ‘향긋한 향’은 향신료에서 나는 ‘향’이 아닌 ‘자연에서 나는’ 상긋한 ‘향’의 느낌이었다. 이러한 ‘향’ 때문인지 뒷맛의 여운이 길지 않고 깔끔하고 담백한 매력이 있었다. ‘익숙하지만 색다른 맛’으로 오리탕이지만 오리탕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팔천탕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깊어졌다.
밑반찬의 존재감이 사라져 버릴 만큼 ‘팔천탕’ 한 뚝배기만으로 밥 한 그릇이 뚝딱 사라졌다. 불러 오른 배를 보며 미리 밑반찬을 먹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볼 즈음, 어느덧 한가해진 식당에서 김도윤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인사를 제대로 마치기도 전에, 김 대표에게 물어본 첫 번째 질문은 “왜, 팔천탕인가요?”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팔천원이어서요. 저기 만천탕도 있어요”라는 이야기. 이 땅에서 사라진 팔천탕의 비밀을 들을 줄 알았던 기대감은 다음 질문도 잊게 하였지만, ‘팔천탕’의 전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8가지 이상의 한약재, 청국장으로 맛을 낸 ‘팔천탕’
고두방은 콩 요리 전문점이다. 게다가 이곳의 ‘냄새 없는 청국장’은 맛 애호가들 사이에서 추천메뉴로 꼽힌다. 이런 곳에서 오리탕을 만들어 낸 사연이 궁금했다. 지난 해 ‘팔천탕’ 계발에 공을 들였다는 김 대표는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과 메뉴 계발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최고의 보신음식을 만들겠다는 포부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흔히 보신탕이라고 부르는 개장국은 못 드시는 분들이 많죠. 추어탕도 못 드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리탕을 생각하게 되었지요”라며, “오리는 약용으로도 이용할 만큼 건강과 미용에 좋은 음식이에요. 한마디로 건강탕이지요”라고 전했다. 특히 고두방의 팔천탕은 남다른 부분이 많다. 처음 맛 본 사람들은 오리고기의 육질과 국물 맛에서 보신탕인지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고기를 삶는 단계에서는 엄나무를 함께 넣고, 조리과정에서는 8가지 이상의 한약재와 청국장으로 맛을 낸다. “팔천탕에서 향긋한 맛이 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한약재에서 나는 산초의 맛이에요”라는 김 대표. 덧붙여 “된장이 아닌 청국장으로 고소한 맛을 내지요. 마늘이 들어가지 않아서 깔끔하고 개운한 여운을 남기고요”라고 전했다. 올해 1월에야 비로서 지금의 팔천탕 맛을 찾고 레시피를 확정하게 되었다는 김 대표는 지난해 함께 고생한 주방장과 직원들에게 못다 전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소스계발에만 4~5개월이 걸렸어요. 소스는 만들어서 2~3주 동안 숙성하여 깊은 맛이 우러나오도록 하는데, 함께 한 주방장과 직원들이 고생 많았지요”라면서 “결과물이 나올 때 마다 아들에게 시식 하도록 했는데, 입맛이 까다로워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지 않았어요. 팔천탕이 발전 할수록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어 용기가 생겼지요”라고 덧붙였다.
“음식도 원리를 알아야???”
16년 이상 음식점 운영을 해 온 김 대표의 이전 직업은 엔지니어였다.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새로운 메뉴를 고민할 때, 항상 ‘왜’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고 전했다. “냄새 없는 청국장 띄우는 기계를 만든 계기도 ‘청국장은 왜 냄새가 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거였어요. 알고 보니 옛날에는 아랫목에서 뜨겁게 하였다가 다시 식히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부패가 된 거였지요. 하지만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면 맛은 그대로지만 냄새는 나지 않게 되더라고요”라며 ‘팔천탕’도 오리의 육질을 최대한 살리면서 최고의 맛과 영양을 내기 위해 연구했다고. 무엇보다 음식 재료와 정성도 요리의 원리에 포함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제가 고향이 금산이에요. 한약재는 고향의 약초시장에서 사오고, 밑반찬은 모두 만들어서 나가지요. 재료와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면 최고의 보양음식 아니겠어요”
김대표는 “사실 ‘팔천탕’이라는 이름에는 ‘8가지 한약재’ 등 복합적인 의미가 숨어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잡하잖아요. 팔천 원이어서 팔천탕 재미있기도 하고요”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에게서 팔천탕의 깊고, 진한 이야기가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취재 허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