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진주냉면

진주냉면

by 안양교차로 2013.07.16

진주의 명물이 평촌에

여름철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냉면이 사실은 겨울철 별미였다고? 바로,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헌에 따르면 냉면을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으로 음력 11월의 시절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냉동기술이 향상되어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별미로 인기가 높다. 이처럼 언제나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어디서나 먹을 수 없는 냉면이 있다. 냉면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평양냉면과 함께 최고의 맛으로 평가받는 ‘’이 그 주인공이다.
진주와 부산, 사천 등에서만 운영되어 냉면 마니아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이 안양 평촌에 자리를 잡았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한국의 열두 달 행사와 그 풍속을 설명한 책이다>
문의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900-7 제일빌딩 1층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진주 냉면을 맛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대중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은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심지어는 냉면 한 그릇을 맛보기 위해 진주까지 다녀오는 일도 감행하게 하는 음식이다. 조선팔도에 평양냉면과 함께 손꼽히는 ‘’의 면과 육수 맛은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다. 그중, 허영만 화백의 인기 만화 ‘식객’에서는 해물육수를 사용한 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이병주의 장편 소설 ‘지리산’에서는 일본인 교사 ‘구사마’가 “진주를 떠나면 영영 이 맛있는 냉면을 못 먹게 될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대목이 나올 정도이고, 1994년 북한에서 출판한 ‘조선의 민속 전통(식생활 풍습편)’에 다르면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렇듯 정평이 난 맛이지만, 현재 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얼마 전 문을 연 안양과 사천, 부산과 진주뿐이다. 이조차도 모두 직계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이유는 왜일까. 1930년대 진주 중앙시장을 거점으로 의 보급화가 시작되는 듯 했지만, 6.25전쟁과 대화재 등으로 그 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현재는 유일하게 남아있던 진주 서부시장의 본점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평촌 ‘’의 육수는 진주에서 공수되고 있다. 평촌에서 을 운영하는 이민중 대표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서 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간판만 보고도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해물육수의 깊은 맛
은 갖가지 재료가 풍성하게 사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경상도 대표 양반지역이었던 만큼, 예전에는 석이버섯과 전복 등 값비싼 재료가 고명으로 올려 졌다고 한다. 현재도 순메밀로 국수를 만들고 소고기를 삶아 수육을 썰며 돼지고기는 쓰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켜켜이 얹어진 고명의 색감이 곱기도 하거니와 푸짐한 양이 식욕을 자극한다. “해물과 소고기 메밀, 그리고 각종 야채가 어우러져 한 끼 식사는 물론, 영양식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이 대표. 특히 ‘’의 개성은 육수에서 돋보인다고 전했다. 본점의 큰며느리 조카라는 이 대표는 “물냉면 육수를 만들 때, 9가지 이상의 재료를 사용하고, 숙성기간을 거친다”면서 “9가지 재료 안에는 죽방멸치와, 홍합, 바지락, 문어, 새우 등의 해산물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또, 숙성기간을 거쳐 시원한 맛의 깊이를 더한다고. 덧붙여 비빔냉면에 함께 나오는 온육수에 대한 설명도 함께했다. “닭, 사골, 소양지로 육수를 만들어 냉면만큼이나 이 육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의 메뉴판을 살펴보면 조금은 생소한 메뉴가 한 가지 있다. 비빔냉면과 물냉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육전’이 그 주인공이다. 소고기를 다져서 만든 육전에 대해 이 대표는 “메밀과 육전의 궁합이 맞는다”면서 특히 “면과 싸먹으면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가게에 들어선 손님 둘이 냉면을 제치고 육전을 먼저 주문하며 자리를 잡았다.
진주에서 핵심 재료를 공수해 오는 만큼 맛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 이 대표의 이야기다. 진주에 가면 냉면 먹고 온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진주의 명물이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면서, “진주에서 드시고 온 분들이 같은 맛이라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더하여 “최대한 원래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히며, 수도권 일대에서 유일하게 의 명맥을 이어나가기에 더욱 분발하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배부른 한 끼 식사로 ok
맛 체험의 시간이다. 육전과 비빔냉면, 물냉면을 앞에 두고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해봤을만한 고민을 한다. 소고기육전과 실고추, 석이버섯 등 풍성한 고명에 가려져 메밀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조선시대 권번가에서 야식으로 즐겨먹었다는 명성답게 한 수저 먹어본 육수의 맛이 남다르다. 새콤달콤하지는 않지만 담백하면서 어딘가 해물의 풍미가 느껴지는 듯하다. 쫄깃한 면을 육전 위에 올려서 먹어보았다. 다진 소고기에 계란을 입힌 따뜻하고 부드러운 육전과 시원한 면의 맛이 입맛을 당기게 만든다. 어느새 그릇을 뚝딱 비우기 시작하고 냉면 먹고 배부르기는 처음이라는 식후 소감이 들려온다. 알고 보니, 함께 온 일행이 식성이 좋아보였다는 주방장의 판단에 양이 조금 더해졌다고 한다. 이 대표는 “맛있고, 깔끔한 한 끼 식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절대로 정해진 양에서 빼지는 않지만, 눈치껏 양을 더하기는 한다”고 전했다. “의 매력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길 바란다”는 이 대표. 전통적인 방법으로 명맥을 유지한 이 안양의 명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취재 허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