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이 봉사가 되었습니다” [한영숙 한소리예술단장]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이 봉사가 되었습니다” [한영숙 한소리예술단장]

by 안양교차로 2017.10.31

한영숙 단장은 충청도 부여에서 자라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할머니가 베풀어주신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어르신들을 위해 국악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뒤 그녀의 제자들도 그녀의 뜻에 따라 어르신들을 찾아 마음을 전하고 있다.
스승의 봉사를 따라가는 제자들
한영숙 단장이 봉사로 국악공연을 시작한 것은 1985년, 신나라 이벤트를 처음 만들면서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벤트가 이제는 주기적으로 복지관, 요양원들을 찾는 봉사로 발전해 이제는 군포노인복지관, 매화복지관, 의왕사랑채복지관 등의 복지관, 효요양원, 미소요양원, 꿈에그린요양원, 여기에 장애인시설, 주간보호센터 등 수많은 곳에 봉사를 하고 있다. 한영숙 단장과 제자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봉사를 하며 어르신들을 찾아 뵙는다.
“제자들도 열심히 해주다보니까 가는 곳마다 어르신들이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모두 마음이 따뜻하고,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 제자들이죠.”
봉사를 하러 갈 때마다 그녀는 지키는 수칙이 있다. 첫 번째로는 어르신들을 무조건 웃게 해드린다는 것, 두 번째로는 호칭을 어머님, 아버님, 오빠, 언니로 부르고, 할머니나 할아버지, 어르신으로는 절대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만 해도 시설에 가면 이분들이 스스로 버려지셨다고 생각하셨어요. 이것이 현대판 고려장이라고요. 저희를 보고도 자기 자신이 초라하다며 우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희는 더 웃으실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려고 노력해요. 또 공연하러 가서도 ‘막내딸 왔어요.’ 혹은 ‘막내 사위 왔어요’라면서 가족처럼 대해드리고요.”
생애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면서
이렇게 마음을 주면서 국악공연을 하다 보니 받아들이는 어르신도 한소리예술단을 그저 봉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들과 며느리한테 버려진 충격으로 7,8년 간 말을 잃었던 어르신은 익숙한 민요가락에 자기도 모르게 따라 불러 모두를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하고, 죽음 직전 그녀를 불러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전하는 어르신들도 수없이 많다.
용인의 한 시설에 계셨던 어르신은 산소호흡기를 꽂고도 그녀를 찾았다. 한복을 입고 왔으면 좋겠다는 어르신의 말씀에 그녀는 한복을 갖춰 입고 어르신께 달려갔다. 그 어르신의 소원은 그녀가 입었던 한복을 한번 입어보는 것이었다. 그 소원을 들어드린 그녀는 그날 저녁 어르신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슷한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한 어르신은 평생 딸 하나를 키웠는데, 그 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르신은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딸이 선물해준 스카프를 늘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한영숙 단장을 알아본 어르신은 미소 지으시며 그동안 먹지 못하던 미음도 받아드셨다. 그리고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스카프를 그녀에게 전했다. 그리고 삼 일 뒤 어르신은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슬픈 날들도 많았지만 뿌듯함도 그만큼 컸어요. 어르신들이 그동안 마음 속에 가라앉았던 앙금을 저희가 흔들어서 소리를 통해 씻어내고, 다시 앙금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해요.”
세상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
그녀는 봉사를 갈 때마다 어르신들에게 더 해드릴 수 있는 것들을 해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저는 항상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가 모두 있어야 좋다고 강조해요. 어르신들은 빈손으로 가면 섭섭해 하세요. 그래서 정책적으로 봉사자들을 위한 지원이 있어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좀 더 갖춰 어르신들에게 가고 싶어요. 또 지금은 제가 개인적으로 3~400만 원 가량의 소형앰프를 가지고 다니는데, 공연을 자주 다니다보니 고장도 잦고, 수리비도 많이 들어요. 정부에서 봉사자들을 위한 물품 대여나 제공이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봉사로서 얻은 것이 정말 많다고 강조한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허튼 생각을 안 해요. 양심을 속이는 일들을 할 수가 없어요. 스스로의 양심을 지킬 수 있어서 좋고, 자녀들이 그런 부모의 모습을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좋죠. 그러한 정신이 대물림이 되니까요. 행복하고, 바르게 아이들을 키워 화목한 가정을 이끌 수 있는 지름길이 바로 봉사입니다.”
한영숙 단장은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세상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제가 수혜자가 아니라 베푸는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제가 가능한 한 어르신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더 나이가 들면 지금 어르신들이 앉아계신 자리가 제 자리가 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고요. 제가 봉사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이 가장 최선의 날’이라고요. 내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봉사해야 최선을 다할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 제가 수혜자의 입장이 된다면 평생 저축해놓은 돈 찾아 쓰는 기분으로 편하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죠.”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