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가난 구제는 인문학이 합니다” [최원경 문화운동가]

“가난 구제는 인문학이 합니다” [최원경 문화운동가]

by 안양교차로 2017.09.26

미국의 언론학자인 월 쇼리스는 흑인 여죄수에게서 ‘우리는 할렘 가에 태어나서 음악회, 미술관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철학을 배워본 적이 없고, 시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가난하다’는 말을 듣고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코스를 만들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 라고 했지만 인문학으로는 가난 구제가 가능했다. 노숙자였던 이는 노숙자에서 벗어났고, 가난함에 젖어 무기력해진 이들은 다른 꿈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 이러한 인문학코스는 클레멘트 코스라고 불리며 많은 국가의 복지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원경 문화운동가]

지역아동센터와 작은도서관, 도시락배달, 집수리까지
최원경 문화운동가의 명함에는 다섯 가지의 직함이 적혀있다. 문화운동가이자 작은도서관 버드나무에부는바람 대표, 갈릴리교회 담임목사, 갈릴리지역아동센터 대표, 군포시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
“저 혼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저희 갈릴리교회 교원들과 많은 자원봉사자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할 수 있는 일이죠.”
그 외에도 독거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배달과 적십자봉사회를 통한 지역사회 봉사, 사랑의 쌀 나누기 등 활동영역이 크다. 그가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운 이웃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지역에 지역아동센터가 없다보니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지역아동센터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다보면 아이들을 키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도시락도 전해드려야 하고, 집수리도 해야 하니까요. 자연스럽게 점점 그 범위가 커지더라고요. 지금도 지역에 어려운 이웃이 없는지 끊임없이 발굴하고 도와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지역 내 방문간호사들과 연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의논하고 있고요.”
인문학도서관 ‘버드나무에부는바람’
작은도서관을 만들게 된 계기도 비슷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초등학생들은 돌보고 있었지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까지는 돌보기가 쉽지 않았고, 아이들이 아무리 변해도 부모나 어른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이들의 보육환경이 변하지 않아 아이들도 결국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휴먼네트워크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 아이들은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희망네트워크라는 단체를 통해 철학교수들과 대화를 나눴어요. 아이들이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됐어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놀라운 성과였죠. 그런데 너무나도 안타까운 건 아이들이 집에 다녀오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온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교육과 평생교육을 목표로 인문학도서관 ‘버드나무에부는바람’을 세웠다. 2013년부터 인문학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버드나무에부는바람은 이제는 자리를 꽤 잡아가고 있다.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시에 평생학습마을로 지정되어 이곳에서 퀼트, 뜨개질, 프랑스자수, 캘리그라피, 통기타, 합창 등 다양한 취미에 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교수진을 직접 모셔와 인문학 강의를 한다. 지금은 25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서양미술사 강의에 한참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노숙자나 지역 내 한부모 가정 등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도 고민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어려운 이웃의 인문학 학습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사랑의 쌀 나누기는 금정초등학교에 결식아동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시작했다. 2001년부터 결식아동들의 급식비를 10년 넘게 지원했고(현재는 완전 무료급식으로 끝났다), 현재도 독거노인이나 조부모가정에 쌀 나눠주기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늘 재정적인 적자보다도 무서운 건 지역주민들의 무관심이다. 아무리 수준 높은 인문학교실을 열고, 나라에서 주목하고 있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짜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멘토들을 모셔온다고 해도 주민들의 관심이 없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교실의 운명은 지역주민들의 관심에 달려있어요. 대학에서도 인기 없는 강의는 폐강되듯 인문학교실도 마찬가지죠.”
자원봉사도 결국에는 지역주민의 관심에서 시작한다. 지금도 이곳을 찾는 자원봉사자들이 적지는 않지만 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봉사점수가 필요한 학생이나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에 앞서 실습을 위해 오는 이들이다.
“모든 봉사가 그렇듯 저희도 고정적인 시간에 오래, 늘 와주시는 자원봉사자가 필요합니다.”
민간에서 하는 활동이기에 정부에서의 관심도 중요하다.
“관에서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좋겠어요. 주민센터에 할머니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오시면 ‘가까운 곳에 갈릴리아동지역센터가 있다’ 고만 안내해주셔도 아이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는 의식주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주민들의 많은 관심부터 정부의 도움, 그리고 인문학의 힘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사치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이제 인문학은 복지의 기초이기도 하다. 인문학이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누구나 향유하고, 배울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