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삶을 가르쳐드립니다” [윤명자 봉사자]

“삶을 가르쳐드립니다” [윤명자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7.09.19

교사로 한 평생을 보낸 윤명자 봉사자는 아이들에게도, 어르신들에게도 지식보다는 삶을 가르친 은사로 기억되고 있다. 지식은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지만 어려운 친구를 돕는 방법과 이웃에게 힘이 되어주는 법은 누구에게도 배우기 어렵다. 또한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삶을 가르쳐주었기에 자신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윤명자 봉사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
윤명자 봉사자는 2007년 퇴직하기 전까지 목화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목화회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경로, 효도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책과 CD 등을 직접 만들며 프로그램을 짰다. 그녀가 이렇게 20년 전에 봉사를 처음 시작했던 이유는 아이들의 일기에서 불효와 정서불안을 엿봤기 때문이다.
“그때도 성격이 난폭한 아이들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해주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일기를 쓰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바르게 클 수 있을지 고민했죠,”
고민 끝에 그녀는 4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양로원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양로원에 가서 보여줄 공연을 준비했고, 이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은 도움이 되고 싶다며 조금이나마 음식을 마련했다. 양로원에 간 날,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그날은 잊을 수 없는 뜻깊은 하루로 남았다. 또한 토요일 수업이 끝난 뒤에는 정서가 불안하거나 폭력성을 띠는 아이들을 모아 장애인보호시설을 찾았다. 아이들은 장애인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장애인들과 함께 놀면서 많은 변화를 보였다.
“아이들이 장애인을 가까이에서 접해본 건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한번 방문만으로도 아이들의 성격이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데리고 다녔어요.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게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해서요.”
그 당시 함께 양로원 위문공연을 갔던 학부모들은 그녀의 행동에 감명을 받아 그녀가 전근을 간 학교를 찾아와 자주 모일 수 있도록 봉사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생겨난 ‘늘푸른회’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한 계좌에 3000원씩 매달 자동이체를 하고, 그녀는 그 돈을 모아 봉사를 지속하고 있다.
퇴 후, 어르신들에게 가르치는 한글
윤명자 봉사자는 은퇴 후에는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2007년 친한 동료 교사를 만나러간 하나로쉼터에서는 어르신들 7~8명에게 한글을 가르쳐드리고 있었고, 그녀에게도 이러한 봉사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며 제안했다. 그녀는 봉사에 마음을 두고 있었고, 집도 가까워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10년간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르신들이 오셔서 한글만 두 시간 넘게 배우지 않아요. 와서 체조도 한 번 하고, 다 같이 노래도 부르고, 한글도 배워요.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 웃으면서 하니까 60세부터 80세까지의 어르신들이 매번 오시죠,”
아이들과 달리 어르신들은 습득력이 빠르지 않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들한테 가르치면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양을 어르신들은 5번 이상 가르쳐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답답해하지 않고, 그러려니 한다.
“어르신들이 ‘선생님 답답하시죠?’ 라고 물어보면 제가 대답해요. ‘어르신이 지금 배워서 고시에 합격할 것도 아니고, 그냥 즐겁게 배우고, 즐겁게 놀면 된다’고요.”
그녀는 어르신들에게도 역시 한글을 가르칠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드린다.
“젊으셨을 때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사셨겠어요.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존경스럽죠. 다만 어렵게 사신 분들이셔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세요. 그 부분은 제가 하는 행동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우시더라고요.”
그녀가 집에서 입었던 옷을 2,000원에 팔아 봉사비용으로 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르신들은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에서 안 입는 옷을 보따리에 넣어 이곳까지 가져와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말하거나 그녀가 집에서 나오는 책이나 종이를 모아 고물상에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르신들도 집에 있는 종이들과 빈 병, 이곳으로 오면서 보이는 박스 등을 주워와 그녀에게 건넨다.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어르신들이 편지를 써주는 것에도 큰 보람을 느끼지만 이렇게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시는 것을 보면서 더 뿌듯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거든요. 어떤 계기만 있으면 실제로 행동하게 돼요.”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그녀는 어린이집에 가서 동화구연을 하며 어린 아이들을 위한 봉사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제가 어린이집에 가서 문을 열자마자 이 방, 저 방에서 나오면서 ‘이야기 할머니’ 오셨다고 달려와서 안겨요. 원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도 ‘이야기 할머니’가 여기 있는지 들여다보고 가고요.”
그뿐만이 아니다. 일주일에 세 번은 한글교육 봉사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어린이집 구연동화를 하면서도 한 달에 한 번은 매화복지관에 가서 하모니카 연주 봉사, 일주일에 한 번은 환자돌봄 봉사, 일주일에 한번 늘푸른복지관에서 안내 봉사 등 다른 봉사도 열심이다.
그녀가 이렇게 열정을 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봉사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바뀌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이들과 봉사를 할 때 당시에는 그녀가 담임으로 있던 반에 걸을 수 없는 학생이 있었다. 5학년이라 꽤 몸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학생의 어머니는 아침에 아이를 업고 학교에 와서 쉬는 시간마다 그 아이가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업어서 데려가고, 과학실이나 도서관에 갈 때도 업어서 데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윤명자 봉사자는 학급회의 안건으로 이 학생에게 휠체어를 선물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학급회의에서 이 안건은 통과되었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세운 상가에 가서 휠체어를 사왔다. 이후 더 큰 변화가 생겨났다. 이 학생과 가까이 사는 친구가 아침에 그 친구를 데려오고 학교까지 도착하면 옆 반에 있는 남자 선생님이 이 학생을 업어 교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체험학습이나 견학을 갈 때도 늘 친구들이 이 학생을 도와 함께 했다.
그녀가 중고로 판매하는 옷을 보면서 옷 판매를 하고 있던 동네 이웃이 그녀에게 옷을 매달 보내주며 좋은 일에 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봉사에 대해, 이웃을 아끼는 마음에 대해 배운 이들의 마음속에서 윤명자라는 선생님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쳐준 선생이 아닌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 은사로 기억되고 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