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철든다는 것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는 것” [김석윤 봉사자]

“철든다는 것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는 것” [김석윤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6.12.13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김석윤 봉사자는 고재영 봉사자를 따라 봉사를 시작했다. 군포 소상공인 소셜클럽부터 구세군의 착한냄비까지 그는 ‘자신의 봉사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냐’면서도 ‘가족들을 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영업자 모임에서 봉사를 배우다
신혼살림을 군포에 차리고 자리를 잡은 지 15년, 그는 컴퓨터 수리를 하는 디지털뱅크라는 가게를 운영 중이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보니 홍보를 하기에도 어렵고, 운영 방법을 배우기에도 어려웠던 그는 자영업자들 모임에 자주 나가 정보를 얻곤 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식사를 함께했던 친목 모임이었던 이 모임에서 고재영 봉사자의 주도로 일주일에 한번 있는 스터디모임이 생겨났다. 동갑내기 절친이었던 고재영 봉사자를 따라 그 또한 스터디 모임인 군포 소상공인 소셜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모이자고 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자영업자들은 일을 하니까요. 소상공인 소셜클럽을 하면서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죠.”
군포소상공인소셜클럽에서는 처음 가게를 시작하는 이들, 가게를 운영한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홍보나 운영에 있어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여 공부를 해나가고 있다. 전문 강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소셜클럽에 와서 강연을 하니, 자영업자들로서는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실질적인 경영수업을 받는 셈이다.
집을 마련해주는 산타가 되다
그는 구세군에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착한가게로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한평의꿈’ 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평의 꿈’은 LH공사에서 저렴하게 임대하는 집 중 일부를 구세군에게 맡기면 구세군은 집을 마련하기 어려우신 분들에게 LH의 임대보다도 더 저렴한 돈으로도 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LH에서 맡긴 집들이 괜찮은지 살펴보고,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가도록 판단해야 한다. 집을 보러 다니고, 세입자를 구하는 일이 한평의꿈 평가위원들이 하는 일이다.
“제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집을 보러 다니죠. 문 열고 봐서 햇빛은 잘 드는지 확인하고, 장판을 걷어서 곰팡이는 없나 살펴보고요. 온수도 잘 나오고, 물 잘 내려가는지 보는 거죠.”
적당한 집들을 추린 뒤, 이제는 신청자들을 추린다. 한평의꿈은 거의 월세가 없다시피 하고, 적어도 2년은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늘 신청자들이 넘쳐난다.
“보통 다자녀가구, 노인 가구, 다문화가구, 저소득층 위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요. 이런 기준은 뻔하지만 평가위원마다 마음이 끌리는 분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 엄마, 아빠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가정에 더 마음이 가고, 어떤 사람들은 자식들이 많은 집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살 사람들을 선정하죠.”
그가 한평의꿈 활동을 하며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법적으로는 재산이 많이 잡혀서 차상위계층도 안 되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자식들이 재산이 많은데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렇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요. 연세가 많으신데 고시원에서 지내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런 분들은 나라에서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요. 차라리 저소득층이나 다문화가정이나 다자녀가정은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려고 하고, 민간에서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사업들이 자주 나오죠. 그런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은 분들은 말 그대로 통계로는 보이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가족을 잘 지키는 일
자영업자인 그로서는 이렇게 가게를 자주 비우고 지역 내 활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직장인들은 퇴근 이후에는 그래도 비교적 자유로운데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잖아요. 또 자영업자들 중에서도 손님들이 자주 내방하는 가게인 슈퍼마켓 등에서는 자리를 못 비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요.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 같이 손님이 직접 내방하는 일이 적은 자영업자들이 움직이게 되요. 그런데 저희도 자리를 비우면 가게를 찾아올 수도 있는 손님 한 명을 놓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봉사를 하면 할수록 ‘철든다’는 느낌이 들어 멈출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그냥 술 한 잔 마시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만나는 것이 좋죠. 제가 사실 다른 분들께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냥 시간을 좀 할애하는 것뿐이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든다는 건 어려운 사람들 많이 만나보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사는 이야기 듣는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그는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고쳐주고, 컴퓨터 내부를 청소하는 재능기부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찾아주는 복지관이 없어 봉사활동을 자주 하기 어려운 상황. 러브하우스에 중고컴퓨터도 기증하고 싶지만 학생들은 중고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
“복지관에 딱 한번 가서 컴퓨터 청소해드리고, 윈도우 다시 깔아드리고 온 적이 있거든요. 그 때는 확실히 뿌듯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제 업종이 봉사활동에는 조금 제한사항이 많은 것 같아요.”
자영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그는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면서,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우리 가족을 잘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서 좀 더 똑똑한 사람이라면 더 큰 일도 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가정을 지키는 일은 해야겠죠.”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