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일주일에 단 하루, 다른 이들을 위해 양보하세요” [우용호 봉사자]

“일주일에 단 하루, 다른 이들을 위해 양보하세요” [우용호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6.04.12

우용호 봉사자에게는 일주일 중 토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다. 봉사일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그는 오전에는 도시락배달원으로, 오후에는 호스피스로, 한 달에 한 번은 집수리 전문가가 되어 활동한다.
자신을 내려놓은 토요일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봉사에 큰 관심이 없었던 우용호(60) 봉사자는 2003년, 안양시시설관리공단에서 장애인의 이사를 도와주는 직원들을 모집하자 자원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안양시시설관리공단에서 단체로 참여하는 도시락배달, 사랑의집수리 등의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후로 2012년, 그는 또 다른 봉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다. 그는 석 달간 교육을 받고, 호스피스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로 지금까지 목욕, 발 마사지 등을 해주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있다.
또한 요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은 안양TS산악회에서 주최하는 장애인 산책 봉사를 한다. 주차장에 내려 휠체어를 끌고 바퀴가 굴러 갈 수 있는 곳까지 구경을 시켜드린다. ‘등산도 힘든데 어떻게 휠체어까지 끌고 산을 오르냐’는 질문을 했더니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휠체어봉사는 정말 많이 힘들어요. 그래도 즐겁잖아요. 그런 기회가 아니면 그 분들이 산으로, 들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작년에도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중증 장애를 겪고 계신 분의 휠체어를 밀어드렸는데 저한테 고맙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우리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벌써 봉사를 한지 10년. 그의 봉사시간은 점차 늘어나 작년에는 토요일 봉사로만 250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봉사를 많이 하려고 특별히 노력한 건 아니에요. 토요일에 결혼식 같은 특별한 일만 없으면 봉사를 나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으니 약속을 지킨 거죠.”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수많은 감사장과 공로상을 수상했지만 본인은 겸손하기만 하다.
“원래 봉사는 티 안 나게, 조용하게 해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하지는 못했나 봐요.”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다
그는 지금 사는 지역에서도 ‘기술자’로 통한다. 한밤중에 전기나 보일러가 고장 나서 수리공을 부를 수 없을 때 이웃들은 그를 찾는다. 늦은 밤, 달콤한 잠을 깨우는 이웃이 번거로울 만도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
“집에 따라서 들어가 보면 온 가족들이 한겨울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벌벌 떨고 계세요.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제가 잠깐 움직여주면 그분들이 추위에 떨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잖아요.”
이런 재능이 있기에 그는 집수리 봉사에서도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인원 중 하나이다. 게다가 그의 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집수리 봉사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짐을 모두 바깥에 꺼내둔 뒤, 도배와 장판, 전기공사, 방충망을 모두 새로 해주고, 짐을 정리해서 안으로 넣어준다. 하지만 연세 드신 분들은 자신의 소지품을 생판 모르는 이들에 맡기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때 그가 나서서 어르신께 말씀드리면 신기하게도 그에게 ‘짐을 꼭 지키고 있으라’고 하시며 소지품을 당부하신다.
“제가 ‘짐 옆에 꼭 붙어있을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씀드리면 이해해주시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그러시는 게 이해가 가는 게 어르신들은 은행 잘 이용 안 하시고 한 푼, 두 푼 몇 십년간 모은 돈을 장롱이나 베개에 넣어두시곤 해요. 그런데 가끔 이렇게 도와준다고 해서 맡겨 놨을 때 어떤 사람들이 그 돈들을 가져간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도와준다고 하는 낯선 사람들을 믿지 못하신대요.”
집수리 봉사를 할 때면 재능과 시간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비를 털기도 한다. 필요한 것이 보이는데 수리를 안 해주고 오기에 어렵기 때문. 각 집마다 필요한 것이 모두 다르니 당장 구하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한다.
못 다 이룬 봉사의 꿈
그는 자신이 10년간 봉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봉사 수혜자들의 한마디였다고 말한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많았어요. 어떤 한 분은 건강하셨을 때는 사회에서 큰일을 하시고, 영향력이 크셨던 분이셨는데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니 모두 물거품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께 발마사지를 해드렸더니 저한테 몇 살이냐고 여쭤보시면서 누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세요. 그리고는 너무 고맙다고, 내가 생전에 이런 걸 왜 몰랐는지 모르겠다면서 손을 꼭 잡아주시더라고요. 가슴이 뭉클했죠. 봉사를 하다보면 저도 ‘왜 좀 더 일찍 봉사를 접하지 못했을까’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정말 봉사활동 많이 하시는 분들은 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일찍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완전히 봉사가 생활화 되어 있으시잖아요.”
이렇게 아직 채우지 못한 봉사에 대한 열정이 있어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등 본격적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저도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정년 이후에 남을 위해서 움직이는 가치 있는 삶을 살면서 지금까지 못했던 봉사를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