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봉사를 만들어내다” [이정숙 봉사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봉사를 만들어내다” [이정숙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6.02.23

영원한 내 편은 가족이라는 말처럼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울타리이자 가장 끈끈한 울타리이다. 이 울타리로 다른 이를 포근히 감싸주는 봉사를 한다면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하는 것보다 더 따뜻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봉사를 만들어내고, 수행했던 가족, 바로 이정숙 봉사자의 가족이다.
내 생에 가장 오래 기억될 봉사
이정숙 씨(50)는 아이들에게 청소년 예절을 가르치는 예절관 봉사로 봉사에 입문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며 시작한 이 봉사로 봉사에 재미를 붙인 그녀는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에 대해 더 잘 알려주고픈 마음에 안양자원봉사센터에 ‘가족봉사’를 신청했다.
그 중에서도 장애인돌봄팀으로 들어간 그녀의 가족은 매달 장애인돌봄센터를 방문했다. 처음에는 지적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지식도 부족해 센터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종이접기, 그림그리기, 나들이 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장애인돌봄팀 팀장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이렇게 봉사를 이어나가면서 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적장애인 한 명당 한 가족씩 결연을 맺자는 의견이었다. 결연을 맺으면 그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한 달에 한 번만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시간 날 때마다 아이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봉사활동이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제안할 수 있었다.
“장애아동들은 밖에 나가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결연을 맺으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응훈련도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가족들이 하는 평범한 일상을 같이 보냈어요. 당시 두 아이와 비슷한 또래였던 그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둘째가 아이를 씻겨주고 책을 읽어주면 첫째는 같이 게임이나 운동을 했어요. 또 모든 가족이 다 같이 쇼핑이나 나들이도 가고요. 별 것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참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예절관부터 법원 안내 봉사, 지역사회 봉사 등 여러 가지 봉사를 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더라고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8년
하지만 이 봉사활동이 처음부터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남편조차 ‘차라리 신체장애인과 결연을 맺자’고 말했고, 아이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런 아이를 집에 데려와서 돌볼 수 있겠냐’며 반대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시설에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시설에 버려진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아이들을 모른 척하고 내버려두면 이 아이들은 더 나아질 기회조차 뺏기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설명했죠.”
그때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엄마의 설득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은 다른 또래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바르게 자라게 되었다.
“아마 이 봉사가 아니었다면 저도 다른 부모들과 똑같았을 거예요. ‘공부해’, ‘방 치워’ 이런 잔소리만 했겠죠. 그런데 봉사활동으로 공통된 대화거리가 있고, 인성교육을 따로 할 필요가 없으니 우리 가족도 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더 돈독해졌던 것 같아요.”
그녀는 가족들이 보내는 일상을 같이 보내는 것뿐 대단한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봉사활동을 하며 막상 큰 도움을 받은 건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8년. 아쉽게도 지금은 이 아이가 다른 시설에 가게 되면서 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다.
“지금도 자주 생각이 나요. 그럴 때마다 당시 찍어 놓은 사진들을 보고, ‘잘 크고 있겠지’ 생각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하기도 해요.”
함께 만든 추억만으로도 의미 있었던 그때
이렇게 지적 장애 아동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녀에게 지적 장애 아동과 쉽게 친해지는 방법을 물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인지가 부족하고, 한 가지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최대한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하게끔 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고, 또 다른 아이는 옆에 있는 사람의 귀, 배꼽, 코 이런 곳에 손가락을 넣으려 하기도 해요.
이런 특성을 빨리 이해하고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 보다는 왜 안되는지를 설명하고 두 번째로는 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을 똑같이 대해줘야 해요. 그리고 식사를 같이 하면 훨씬 빨리 친해질 수 있어요. 저희 가족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친해져서 나중에는 같이 기차여행, 버스여행도 자주 다녔어요.“
이렇게 꾸준히 그 아이와 함께 다니며 그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전문적으로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성결대학원 사회복지과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그게 완전히 좋아져서 비장애인처럼 활동하기는 사실상 어렵죠. 하지만 교육을 해서 조금이라도 이 사회에 같이 융화되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특히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적어도 인간으로서 누리며 살아야할 인격적인 대접은 받으며 살아가야죠.”
또한 그녀는 그 아이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봉사는 가치를 가진다고 말을 이었다.
“같이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죠.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런 도움을 받은 만큼 다른 부분이 소홀하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 우리 가족이 아닌 사회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봉사활동만큼 의미 있는 활동이 없어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