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봉사를 시작하고 15년, 저는 좀 더 행복해졌습니다”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을 이준호]

“봉사를 시작하고 15년, 저는 좀 더 행복해졌습니다”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을 이준호]

by 안양교차로 2016.02.02

안양 4동에 위치한 공방 겸 카페,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을’은 각종 시화 작품들로 가득했다. 시와 그림을 다채로운 색깔과 모양으로 담아 각각의 개성을 뽐내는 등, 석판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니 다른 카페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 공방 겸 카페의 주인이 누구보다 독특하면서도 따뜻하기 때문이다.
시와 그림을 그려 어려운 이들을 돕다
요즘 한창 인기 있다는 캘리그라피를 무려 35년 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이준호(56) 씨는 캘리그라피와 함께 그림도 그린다. 학교나 문인협회에서 작품을 보내면 그는 시를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글씨 모양을 생각해서 이를 시화로 남긴다. 이렇게 액자나 등, 목판 등에 새겨진 작품은 작품전시회에 전시되거나 특별한 선물이 된다. 수원, 광명, 양양, 속초, 영암, 안양 등 다양한 문인협회에서 오는 요청 때문에 시화전시회가 있는 가을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처음 시화를 배울 때보다 다 배우고 일에 익숙해진 지금 일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전국적으로 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시는 거짓말을 못해요. 시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말을 하고 싶구나’ 마음을 들여 볼 수 있어서 재미있죠. 그 재미에 빠져서 요즘은 저 스스로도 시를 쓰고 싶어서 시를 배우고 있어요.”
이렇게 시화아트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는 봉사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지금까지 두 번 열린 전시회의 수익금에서 각각 200~300만원을 흔쾌히 다른 이들을 위해 내놓았고, ‘아침뜰장학회’, ‘청솔장학회’, ‘빚진자들의집’, ‘사랑의집수리’, ‘난치병협회’ 등에 꾸준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의 재능을 이용해 봉사를 하기도 한다. 각종 봉사단체의 행사에 도움을 주기위해 행운석에 글과 그림을 써주는 부스를 열어주는 것. 행운석은 한 문장의 글과 조그만 그림이 그려진 작은 돌을 말하는데, 독특하고 예뻐서 감사와 사랑을 표하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또한 그가 머무르는 공간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방법으로도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공방 겸 카페는 안양시장애인빙상연맹의 회의실로 사용되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주점도 일일찻집으로 활용되어 봉사단체의 운영비 마련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발견하다
그가 이렇게 봉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한 시민단체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부터였다. 그는 스스로 역마살이 있다고 말할 만큼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다양한 사업을 했다. 일로는 지금 하고 있는 시화아트를 포함해, 음식점, 주식회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대학로, 인사동, 부산, 광주, 대만 등에서 몇 년을 머무르기도 했다. 심지어 노숙자 체험을 해보겠다며 집을 나와 돈 한 푼 없이 지하철 역사를 전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돈을 많이 벌거나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돈과 행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배웠고, 봉사가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들을 통해 배웠다.
그때부터 그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가 가진 공간, 그가 가진 재능, 그가 가진 관심사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그 나름대로 찾아낸 것.
“도움을 주면 받는 것이 있어요. 물론 그건 물질적인 건 아니죠. 저랑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서로 멘토, 멘티가 되어주고,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품앗이를 해주고 이런 관계를 얻을 수 있죠. 스스로 지금은 15년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나 편부모가정, 노인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고민해서 만들어내고 운영을 하는 분들만큼 적극적이지 않아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저 나름대로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는 거죠.“
그가 이루고 싶은 세 가지 소원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사가 많고, 현재 몸담고 있는 분야가 예술 분야이다 보니 그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많다.
첫 번째는 찾아가는 문화행사를 추진하는 것으로, 현재 그는 ‘찾아가는 문화행사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다. 공원이나 학교 등을 방문해 글을 작은 돌이나 나무에 새겨서 전달하는 것이다.
“문학이 주는 기쁨이 있어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위안이나 유대감 같은 건데요. 그런 기쁨을 작게나마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기회가 나는 대로 이어가려고 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예산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현명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안양 시민이자 국민으로서 예산이 눈먼 돈으로 여겨져 다른 곳에 낭비되지 않고, 내 이웃을 위한 복지에 더 소중하게 쓰일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뜨고 보려고 한다.
“보통 예산의 10프로 정도는 절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죠.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산 감시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극소수의 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문서자료를 통해서는 예산을 옳게 쓰고 있는지 아닌지 들여다보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거든요.
제가 나라를 구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이웃이 있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는 시 하나 정도는 더 살기 좋게 만들 수는 있어요. 행정이 바로 서면 시 자산 중에 복지 분야에 쓸 수 있는 돈은 확실히 더 많아질 거예요. 그래서 주변에 어려운 이들을 돕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예산 감시를 생각해야 하는 거죠.“
마지막 세 번째는 시민단체의 자립을 도와주는 것이다. 지원금에 의존하는 시민단체는 결국 돈 문제로 어려움에 빠진다. 이런 시민단체가 자립하기 위한 동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공연이나 전시회 등 문화상품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사실 수익이 일정하지 않은데 계속 봉사를 이어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당장은 몇몇 사람이 고통을 감수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힘들고요. 또 자신이 가진 재능이 있다면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런 활동에 참여하고 시민단체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