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의 꿈을 봉사로 이뤄내다” [일본어봉사자 하상임]
“만학의 꿈을 봉사로 이뤄내다” [일본어봉사자 하상임]
by 안양교차로 2016.01.06
만학의 꿈을 이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만학을 이뤄낸 뒤 배움을 실천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일본어 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인 하상임 씨는 만학의 즐거움을 봉사로 풀어냈다. 배우는 기쁨과 나누는 기쁨으로 충만한 7년을 보낸 그녀는 정신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풍족해졌다고 말한다.
쉰여섯, 일본어과에 입학
우연히 일본 노래를 듣기 시작한 하상임(70) 씨는 우리나라와 정서가 비슷한 일본 노래에 흠뻑 빠졌다. 노래 가사를 찾아보니 한자는 띄엄띄엄 읽을 줄 알았지만 히라가나는 읽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하나 둘 단어를 찾아보면서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자 이제는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방송대 일어과에 입학한 것이 쉰여섯. 졸업을 하고 나니 쉰아홉이었다. 일어 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였던 그녀는 이렇게 배운 일본어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다보니 배운 일본어를 이용해 일을 할 수도 없고, ‘봉사를 하면 적격이겠다’ 싶을 즈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안양시 일어 자원봉사자 모집’을 보게 됐다.
처음 안양 일본어봉사자팀에 들어가자마자 장애인복지관에 일본어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일본어과를 갓 졸업해서 아직은 누군가를 가르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그 자리를 사양했다. 그래서 그녀와 같은 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본어 봉사자 팀에 들어온 다른 봉사자가 그 강사자리를 맡아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 년 뒤, 그 사람은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고, 당시 일본어봉사자팀 팀장은 그녀에게 다시금 그 자리를 권했다. 그녀는 수업을 참관한 뒤에 결국 그 강사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렇게 수업을 시작한 건 2008년 7월 2015년 12월까지 7년을 꾸준히 강의를 이어나갔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무척 재밌더라고요. 저도 배우는 사람이었으니까 제 기준에서 잘 가르치는 교수나 강사를 참고해서 가르쳤어요. 또 방송대 후배가 신사동, 목동에서 장애인복지관까지 같이 공부를 하러 왔어요. 후배가 그렇게 애써서 오는데 배우는 것 없이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쓸데없는 잡담은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풀로 두 시간을 쉬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어요. ‘시원찮은 강사나 교수보다는 낫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우연히 일본 노래를 듣기 시작한 하상임(70) 씨는 우리나라와 정서가 비슷한 일본 노래에 흠뻑 빠졌다. 노래 가사를 찾아보니 한자는 띄엄띄엄 읽을 줄 알았지만 히라가나는 읽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하나 둘 단어를 찾아보면서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자 이제는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방송대 일어과에 입학한 것이 쉰여섯. 졸업을 하고 나니 쉰아홉이었다. 일어 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였던 그녀는 이렇게 배운 일본어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다보니 배운 일본어를 이용해 일을 할 수도 없고, ‘봉사를 하면 적격이겠다’ 싶을 즈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안양시 일어 자원봉사자 모집’을 보게 됐다.
처음 안양 일본어봉사자팀에 들어가자마자 장애인복지관에 일본어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일본어과를 갓 졸업해서 아직은 누군가를 가르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그 자리를 사양했다. 그래서 그녀와 같은 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본어 봉사자 팀에 들어온 다른 봉사자가 그 강사자리를 맡아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 년 뒤, 그 사람은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고, 당시 일본어봉사자팀 팀장은 그녀에게 다시금 그 자리를 권했다. 그녀는 수업을 참관한 뒤에 결국 그 강사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렇게 수업을 시작한 건 2008년 7월 2015년 12월까지 7년을 꾸준히 강의를 이어나갔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무척 재밌더라고요. 저도 배우는 사람이었으니까 제 기준에서 잘 가르치는 교수나 강사를 참고해서 가르쳤어요. 또 방송대 후배가 신사동, 목동에서 장애인복지관까지 같이 공부를 하러 왔어요. 후배가 그렇게 애써서 오는데 배우는 것 없이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쓸데없는 잡담은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풀로 두 시간을 쉬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어요. ‘시원찮은 강사나 교수보다는 낫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강의에서 번역, 동시통역까지
장애인 복지관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그녀에게는 기억에 남는 제자 한 명이 있다. 대다수의 장애인은 시험을 목적으로 하거나 어학 공부에 흥미를 느껴서라기보다는 일정 시간만큼 누가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복지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조금은 불편한, 뇌병변을 앓고 있는 한 학생은 지금 나이 40세가 될 때까지 그녀에게 오랫동안 일본어를 배웠다.
“어학이라는 게 오래 하다보면 저절로 몸에 배는데 그 학생이 딱 그런 경우에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일본어로 배우고 말하니까 정확한 뜻은 몰라도 대략적인 내용은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인사동에서는 일본 사람들한테 인사를 해서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동생이랑 같이 일본으로 여행을 갔는데 큰 불편함 없이 관광을 할 수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녀는 강의 외에 시청에서 요청하는 다양한 분야의 통역봉사에도 참여한다. 이 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 볼링대회와 2007년에 열린 석수동 옛 시장 빈터에서 열린 작품전시회에서도 통역을 맡았다. 특히 작품전시회는 동시통역이 필요한 상황. 일본인 작가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면 그녀가 한국어로 그 내용을 통역해 전달했다. 짧은 대화가 아닌 전문적인 내용의 동시통역은 이전에 해본 적이 없어서 불안했던 그녀는 스스로 동시통역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랄 정도였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그녀에게는 기억에 남는 제자 한 명이 있다. 대다수의 장애인은 시험을 목적으로 하거나 어학 공부에 흥미를 느껴서라기보다는 일정 시간만큼 누가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복지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조금은 불편한, 뇌병변을 앓고 있는 한 학생은 지금 나이 40세가 될 때까지 그녀에게 오랫동안 일본어를 배웠다.
“어학이라는 게 오래 하다보면 저절로 몸에 배는데 그 학생이 딱 그런 경우에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일본어로 배우고 말하니까 정확한 뜻은 몰라도 대략적인 내용은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인사동에서는 일본 사람들한테 인사를 해서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동생이랑 같이 일본으로 여행을 갔는데 큰 불편함 없이 관광을 할 수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녀는 강의 외에 시청에서 요청하는 다양한 분야의 통역봉사에도 참여한다. 이 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 볼링대회와 2007년에 열린 석수동 옛 시장 빈터에서 열린 작품전시회에서도 통역을 맡았다. 특히 작품전시회는 동시통역이 필요한 상황. 일본인 작가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면 그녀가 한국어로 그 내용을 통역해 전달했다. 짧은 대화가 아닌 전문적인 내용의 동시통역은 이전에 해본 적이 없어서 불안했던 그녀는 스스로 동시통역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랄 정도였다.
봉사자보다 적은 봉사수요처
다른 봉사와는 달리 어학 관련 재능기부 봉사는 봉사자보다 봉사수요처가 더 적다. 큰 대회에서는 전문 통번역가가 있기 때문에 봉사자들이 있더라도 큰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일어에 관해서 봉사를 요청하면 자기 일처럼 나서 줄 봉사자가 열 명 정도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요. 봉사자들이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수혜자가 봉사자를 필요로 할 만한 분야가 많지 않아요.”
그녀 또한 아직 의욕은 왕성하지만 대회 주최 측이 대부분 그녀보다 나이가 젊다보니 주최 측에서도 봉사자 대하기가 부담을 느껴하는 것 같고, 복지관에서도 더 젊고, 실력 있는 봉사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까지만 강의를 하고 봉사를 매듭지었다.
반면 봉사자들 중에서도 헌신적이고 젊은 봉사자들을 구하기가 어렵다. 일본어 실력을 갖춘 40대, 50대는 봉사보다는 취업에 더 관심을 갖고. 봉사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매주 같은 시간, 꾸준히 봉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을 내기는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녀만큼 같은 시간 늘 그 자리에 있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가 자진해서 만든 약속이다 보니까 매번 약속한 시간은 꼭 지켜야 하는 부담이 있긴 해요. 지인들과의 약속이나 가족행사도 그 시간은 피하고, 심지어 아플 때도 그 시간은 피해 아프려고 하고요. 신기하게도 노력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7년간 쉼 없이 봉사를 해온 그녀는 봉사를 ‘마음의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
“보이는 이득은 없지만 보이지 않게 얻는 것들이 참 많아요. 마음이 부자가 된다는 표현이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표현이에요. 스스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는 느낌이 봉사의 가장 큰 재미 아닐까요?”
취재 강나은 기자
다른 봉사와는 달리 어학 관련 재능기부 봉사는 봉사자보다 봉사수요처가 더 적다. 큰 대회에서는 전문 통번역가가 있기 때문에 봉사자들이 있더라도 큰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일어에 관해서 봉사를 요청하면 자기 일처럼 나서 줄 봉사자가 열 명 정도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요. 봉사자들이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수혜자가 봉사자를 필요로 할 만한 분야가 많지 않아요.”
그녀 또한 아직 의욕은 왕성하지만 대회 주최 측이 대부분 그녀보다 나이가 젊다보니 주최 측에서도 봉사자 대하기가 부담을 느껴하는 것 같고, 복지관에서도 더 젊고, 실력 있는 봉사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까지만 강의를 하고 봉사를 매듭지었다.
반면 봉사자들 중에서도 헌신적이고 젊은 봉사자들을 구하기가 어렵다. 일본어 실력을 갖춘 40대, 50대는 봉사보다는 취업에 더 관심을 갖고. 봉사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매주 같은 시간, 꾸준히 봉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을 내기는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녀만큼 같은 시간 늘 그 자리에 있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가 자진해서 만든 약속이다 보니까 매번 약속한 시간은 꼭 지켜야 하는 부담이 있긴 해요. 지인들과의 약속이나 가족행사도 그 시간은 피하고, 심지어 아플 때도 그 시간은 피해 아프려고 하고요. 신기하게도 노력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7년간 쉼 없이 봉사를 해온 그녀는 봉사를 ‘마음의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
“보이는 이득은 없지만 보이지 않게 얻는 것들이 참 많아요. 마음이 부자가 된다는 표현이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표현이에요. 스스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는 느낌이 봉사의 가장 큰 재미 아닐까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