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그림으로 자기 자신과 만나세요”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김형희 대표]

“그림으로 자기 자신과 만나세요”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김형희 대표]

by 안양교차로 2015.11.10

흔히 ‘예술이 밥 먹여주냐’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예술을 비하하는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예술이 인생을 바꾸는 경우는 흔하다. 우연히 보게 된 소설이나 연극, 우연히 듣게 된 음악에서 삶의 방향이 바뀌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술은 밥을 먹여줄 뿐만 아니라 영혼도 살찌워준다고.
무용수에서 재가 장애인을 거쳐 화가로
장애인, 비장애인이 어울려서 함께 문화예술 작업을 하는 비영리 단체,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이끌고 있는 김형희(46) 씨가 좋은 예다. 김형희 씨는 어렸을 때부터 무용가를 꿈꿨다. 재능도 있었고, 열정도 받쳐줬던 그녀가 무용을 전공하며 그 꿈을 실현시켜나가던 찰나, 교통사고는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척추 손상으로 인한 전신마비로 그녀는 무용은 커녕 일상생활도 어려워졌다.
상상도 한 적 없었던 절망이 그녀를 덮쳐왔을 때, 그녀는 극단적인 마음을 먹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랬던 그녀가 집에 있던 무용잡지에서 무용수를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불편한 손에 연필을 끼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팔이라도 자주 쓰도록 재활훈련의 일부처럼 시작한 그림이 그녀를 살렸다. 그녀는 지나가버린 무용수에 대한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시 화가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10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전시회를 열었고,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출산 뒤에 우울증이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이번에 그녀가 택한 출구는 미술치료였다. 그녀는 본인이 힘들어서 시작한 미술과 미술치료가 자신이 사회로 나올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미술에 대한 열정을 원동력 삼아 대한임상미술치료학회에서 1급 미술치료 자격증을 취득하고 차의과학대학에서 미술치료로 석사 졸업을 하면서 미술치료에 대한 전문성을 높였다. 그녀의 졸업논문은 그녀와 같은 고통을 가진 이들을 연구한 척추손상 환자에 대한 임상미술치료의 효과였다.
자신을 만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세상을 만나는 것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는 미술수업과 미술치료, 전시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가 가장 중시하는 건 ‘소통’이다. 예술로 자신과 소통하고 예술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둔다.
그녀는 미술 수업을 할 때 데생부터 가르치지 않는다. 우선은 미술치료부터 진행을 한다. 미술치료는 다양한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며 주제의 폭이 넓고 미술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누구든 자기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해요. 그런데 미술치료는 못 그리는 사람한테 더 효과가 좋아요. 왜냐하면 어떤 형태나 색채를 기술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안에서 떠오르고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 심리상태가 더 빨리 보여요. 그러니까 자기 내면하고 더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죠.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는 손으로 연필을 잡기도 어려운데 세밀한 데생부터 가르치면, 처음에는 낯선 느낌 때문에 재미를 느낀다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그림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어요."
그녀는 미술치료로 본인을 만나게 하면서 그림 그리기의 재미부터 느끼게 한 뒤 단계별로 수업을 진행한다. 작년까지도 장애 여성들을 위한 화가반이 있었고, 현재 토요미술아카데미에서는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모아 수업을 진행한다.
올해는 특별한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움직이는 그림 콘서트’가 부평과 서울에서 열린다. 그림과 함께 춤, 노래, 연기, 영상 등 모든 예술 분야가 융합되어 새로운 예술장르로 재탄생하는 토털아트다. 여성 장애인 화가의 이야기가 3개의 옴니버스 구성으로 꾸며진다. 그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업해 이뤄나간 이 공연을 ‘복잡하지만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는 이번 공연은 문화관광부에서 연구주제로 꼽히기도 할 정도로 신선하면서도 흥미롭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낸다. 이 공연은 관람을 원하는 이들이 모두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마음의 작은 씨앗을 키우세요
그녀는 누구보다도 재가 장애인을 깊이 이해한다. 그녀 자신이 겪었으며, 미술 치료 대상자로 많은 이들을 지켜보아서다.
“중증장애인이 육체적으로 나오지 못하는 건 내면적으로 자신이 나올 준비가 아직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흥미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면 밖으로 몸이 움직이지 않아요.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전동휠체어도 있고, 이동지원도 이루어져요. 하겠다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아직 그만큼 내면이 단단하지 못한 거예요. 이건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에요.”
그녀는 장애인 단체나 병원 등에서 미술치료를 진행할 때마다 이 사실을 매번 느낀다. 자기 자아하고 화해가 되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 발전해나갈 수가 없다. 재활이 뒤처지는 것은 물론이다. 자신의 자아와 화해를 이루어야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도 더 쉬워진다.
“하지만 어떤 기회가 주어져야 될 거예요. 모든 사람은 현재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충격이 느껴져야 변화를 마음먹어요. 내가 예술가가 아니어도, 내가 예술가를 꿈꾸지 않아도 예술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마음에서 작은 씨앗이 생긴다면 그 씨앗을 키우세요. 용기를 내서 도움을 요청하세요. 모든 사람들은 다 귀하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본인조차도 자신의 가치를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에요. 만약 어떤 생각이나 어떤 기회가 생긴다면 이걸 키워나가세요. 그 조그만 씨앗이 또 다른 인생이 열리는 큰 기회가 될 겁니다.”

[토털아트 창작 움직이는 그림콘서트 ‘그림 속, 그녀들의 이야기’ 공연일정]
* 1회 11.13(금) 오후3시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
* 2회 11.18(수) 오후7시30분 영등포아트홀
* 3회 11.19(목) 오후3시 영등포아트홀
* 4회 11.19(목) 오후7시30분 영등포아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