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봉사는 하루 240시간을 살아가는 비법이죠.” [정명자 자원봉사자]

“봉사는 하루 240시간을 살아가는 비법이죠.” [정명자 자원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5.10.27

처음에는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이 봉사인 줄도 몰랐다. 그저 사람이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인 줄 알고 다른 이들을 도왔다. 그렇게 봉사를 오래 하게 되면서 그녀에게는 장래희망이 하나 더 생겼다. 앞으로 요양원을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봉사를 하면서 누구보다도 얻게 된 것이 많다는 그녀에게 봉사는 취미이자 천직이었다.
어르신의 무게는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정명자(53) 씨가 봉사를 이렇게 당연하게 여긴 건 학창시절 은사의 영향이 컸다. 봉사에 관심이 많던 은사를 따라 일 년에 두세 번은 스케치북이나 장난감, 과자를 싸들고 보육원을 찾았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며 아이들을 씻기고, 닦아주고 놀아주는 날이 그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시간이 흘러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다른 이들을 돕는 것에 익숙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시간이 없어 봉사를 잘 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정반대였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 어르신들이 많이 계세요. 그래서 아이가 노는 동안 어르신들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어려운 상황에서 살고 계신 어르신들 얘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복날이 되면 어르신들을 초청해서 저희 집에서 삼계탕을 대접한다든가 어르신들 집에 방문해서 수박을 드리곤 했어요.”
15년째 의왕시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어르신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면 다음에 꼭 다시 그곳을 찾았다. 청소나 빨래를 해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쌀이나 과일 등 어르신에게 필요한 음식을 그때그때 사서 전달했다.
이제는 의왕시 시민경찰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의왕시 주민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방범을 위해 애쓰고 있다. 시민경찰은 현재 3년 정도 되어 70명의 인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단체를 위해 그녀는 사무국장으로서 서류정리나 프로그램 기획, 회의 진행 등의 활동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시민경찰을 하면서도 공인중개사인 그녀의 직업이 도움이 됐다. 순찰을 돌다가 길 잃은 어르신들을 만나면 집을 곧잘 찾아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비오는 날, 집을 찾지 못하는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가족들이 안 돌아온다며 가족들을 마중 나왔는데 그만 집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정명자 씨가 이 어르신을 업고 가는 모습을 찍은 또 다른 시민경찰은 이 사진을 올 봄에 열린 경찰서 사진 콘테스트에 올렸다. 200여장이 넘는 사진을 놓고 경찰관들이 직접 스티커를 붙여 투표한 결과 그녀의 사진이 대상을 탔다. 사진 제목은 이랬다.
“어르신의 무게는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봉사활동으로 찾은 또 다른 장래희망
원래 노인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단순한 봉사를 이어오다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전문성을 띠고 어르신들 돕고 싶어졌다. 그래서 일하면서 틈틈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현재까지 요양원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요양원을 차려서 운영하는 것이 장래희망인 그녀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현장에서 배워가고 있다. 그녀는 뇌졸중이나 파킨슨 병 등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회상 치료를 한다.
회상 치료란 아주 오래 전 옛날의 소품을 이용해 치매환자들의 기억을 이끌어 내는 치료 방법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메주, 지게, 갈퀴, 항아리 등을 축소해 만든 소품을 가져가서 ‘어머님 장은 언제 담가요?’라고 여쭤본다. 본인의 자식들에게는 ‘너 누구냐’고 말하던 어르신들이 신나서 장 담구는 방법을 일러준다. 오늘 방금 있었던 일은 기억 못해도 몇 십 년 전 일은 생생히 기억하는 치매의 특성을 이용해 기억력을 높이는 치료법이다. 요양원에서 회상치료를 자주 하다 보니 요양원 원장이나 교수들이 요양학원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그녀가 다른 이들보다 실전 경험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루 240시간을 사는 시간 활용법
쉰을 넘은 나이지만 정명자 씨는 아가씨 못지않은 큰 키에 47kg의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그녀는 그 비결을 봉사로 꼽으며 봉사를 하다보면 살찔 틈이 없다고 말한다. 시민경찰을 시작한 것도 지인이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두세 시간 정도 걷는다는 말에 그 정도는 운동삼아 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가정, 일, 봉사활동을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면 특별한 비결이 없어도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봉사를 하는 보람은 몸매유지에 있지 않다. 가장 큰 보람은 어르신들이 자식은 몰라봐도 그녀는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반겨주는 모습에 있다. 그녀가 요양원에 가면 어르신들은 그녀를 끌어안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사탕을 까서 자꾸만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그런 어르신들을 보며 그녀는 어르신들에게 간식거리나 회상치료 소품들을 안겨드리고 오곤 한다.
봉사를 아직 하지 않고 있거나 봉사를 하다가 자신의 일로 잠시 중단한 이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24시간을 가장 뜻 깊게 보내는 방법이 봉사라고 생각해요.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정도를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한테 쓴다면 그건 그냥 한 시간, 두 시간이 아니라 100시간 이상의 가치가 있잖아요. 그 사람에게도, 저에게도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라도 자신에게서 시간을 내서 다른 사람에게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루 24시간으로 240시간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그녀의 시간 활용법이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