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사람에게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 아닐까요?” [서예가 꽃실 김영남]

“사람에게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 아닐까요?” [서예가 꽃실 김영남]

by 안양교차로 2015.10.20

미술계의 국가대표라 일컫는 한국미술협회를 포함해 경기도미술협회, 경인 미술협회 등 열 개 미술협회에 초대작가로 이름이 올라있고,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여러 번 입상 해 초대작가가 된 서예가 김영남 씨는 강사로서, 그리고 지역사회 조력자로서 우리 가까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술과 봉사로 꽉 채운 그녀의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은 어떨까?
예술가와 봉사자, 그리고 지역사회 활동가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는 모든 서예가들에게는 꿈이자 목표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몇 십 년 동안 꾸준히 한 분야에서 자신을 갈고 닦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이 자리에 올라서도 아직도 자신은 서예를 배우는 중이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김영남(64) 씨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예술에 한 번 바치고, 지역사회에 또 한 번 바쳤다.
그녀는 평생교육센터, 만안노인복지회관, 안양문화원, 주민센터 등에서 20년째 서예를 가르치고 있으며, APAP(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프렌즈에 소속되어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작품들을 알리는데도 열심이다. 여기에 지속가능발전실천협의회의 마을위원이자 안양천살리기운동 생태해설가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는 매 시간 빈틈없는 일정에 익숙하다.
강원도 출신으로 안양에 온 지 50년. 여자는 학교를 다니기 힘들었던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안양여중, 안양여고를 졸업할 정도로 배움의 열의가 강했다. 어쩌면 그 시절부터 그녀는 밤 12시까지 꽉꽉 채워 무언가를 하던 것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졸업 후 바로 금성통신에 취직한 그녀는 회사가 끝나자마자 펜글씨며 한자, 꽃꽂이, 등공예, 지점토, 서예 등을 배웠다. 주말엔 학창시절에 소풍 한 번 못 가본 한을 풀기 위해 산악회에 가입해 전국에 있는 산을 올랐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던 배움의 갈증은 결국 만학으로 채웠다.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미술대학원 조형예술학부에서는 서예전공으로 솜씨를 갈고 닦아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남들은 지금 제 일정을 보고 ‘너무 바쁘지 않냐’고 물어보는 데 예전이랑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행복한 거예요. 그때는 얽매여서 하고 싶지 않아도 하는 게 많았지만 지금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배우고, 이룬 것들을 나눌 때가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배워서 남 주자
그 때부터 시작했던 수많은 취미 중 서예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녀는 서예의 매력으로 배우는 데 끝이 없고, 가르치는데 끝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다른 강좌와 달리 서예 강좌는 강사의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고, 가장 오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로 18년째 그녀에게 서예를 배우고 있는 제자가 그 증거다.
그녀의 서예 강좌는 어느 곳을 가든 정원 초과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인기 비결은 서예 솜씨와 강의 노하우, 그리고 남들보다 다양한 경험들이다.
“서예 강의에서 글씨만 쓰면 뭐가 재미있겠어요. 제가 경험한 것들이 많아서 서예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서예를 통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하고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봉사에 열성적인 그녀에게서 서예와 봉사를 함께 배운 제자들도 있다. 그녀는 ‘꽃으로 만든 실로 사람들을 엮는다’는 뜻으로 지은 그녀의 호 ‘꽃실’에서 이름을 가져와 꽃실서우회라는 동아리를 만들고, 제자들과 함께 복지관이나 보육원, 방과후교실, 빚진자들의 집 등 다양한 소외 계층이 머무르는 곳을 찾아가 서예로 이들을 보듬기도 했다.
그 다음엔 서예 분야를 뛰어넘어 APAP프렌즈에 들어가 2005년 비엔날레 프로젝트에 일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예술 분야는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작가 이름과 발상, 주제 등 공부가 필요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기에 다른 이들보다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안양천 생태안내는 안양시청에서 생태에 대해 3년간 배운 뒤에야 동참할 수 있었다. 원래 오염이 심했던 안양천이 이렇게 맑아지게 했던 노력들과 안양천이 맑아지면서 이곳에서 자라나는 식물, 또 이곳을 찾는 곤충과 조류 등을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는 안양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에 능행 하실 때 머물렀다고 해서 이름 붙은 주접동처럼 특별한 사연을 담은 옛 지명을 현재의 행정구역과 함께 표기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거나 개발로 인해 지금 사라지고 있는 마을을 영상과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양다리를 걸쳐라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양다리’를 걸치라고 말한다. 한 발은 가정에, 한 발은 봉사에 걸쳐놓고 살다보면 양다리로도 부족해서, 세 다리, 네 다리 걸치게 된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고 나면 사명의식이 생겨서 꾸준히 하게 되니 뒷일을 걱정하지 말고 우선 여러 봉사를 시작하라는 뜻이다.
“우리 눈동자가 앞만 보지 않고 양 옆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주변을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나서는 것도 중요해요. 안양시봉사센터나 아름다운 동행 인터넷 사이트에 활동분야가 나와 있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또 내 손길이 미칠 수 있는 곳은 어떤 곳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주는 행복에 눈을 뜨고, 유대감을 가지고 안양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에게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 아닐까요? 봉사를 하게 되면 봉사를 하고 계신 좋은 분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그 관계 속에서 본인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함께 지내면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내가 감동받고, 나도 행복하고, 그 사람도 행복하고요. 서로 윈윈이죠.”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