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소울음아트센터 최진섭대표]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소울음아트센터 최진섭대표]

by 안양교차로 2015.10.02

소울음아트센터는 전국에서 유일무이하게 장애인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40~50명의 장애인이 모여 그림을 배우고 있으며 최진섭 대표가 화실을 만든 지 20년이 지난 최근에는 회원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한 ‘제 20회 일어서는 사람들의 기록전’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 살아가기
75년도에 큰 사고로 경추 6번, 7번을 다친 뒤 점점 악화되어 전신마비가 되었던 최진섭(58) 씨는 지금은 어엿한 화가이자, 사단법인 소울음아트센터의 대표로서 후진양성에 힘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90년, 그는 팔이 기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손 안쪽에 붓을 끼고 고정하기 위한 연습부터 시작했다. 차근차근 선 긋기부터 배워간 그는 92년, 안양 소해미술관에서 소울음 3인전으로 그의 그림을 세상에 알렸다. 전시회를 하던 도중 몸이 악화되어 두 번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를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어릴 적부터 가졌던 화가의 꿈이었다.
그 뒤 뉴스와 신문에 그의 이야기가 실리자 많은 중증 장애인이 자신도 그림을 배우고 싶다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그러자 그는 운수사업을 하던 아버지 소유의 건물에서 장애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것만으로 기뻤던 그는 다시 한 번 고비에 직면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귀향을 결심하며 좌절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안양시였다.
안양시는 안양 토박이로서 장애인 교육을 위해 애쓰며 살아온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마땅한 공간 마련부터 도왔다. 구 동사무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화실을 마련해 무상임대를 해주고, 보건소 건물이나 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가 휠체어로 불편함 없이 센터를 다닐 수 있도록 센터 바로 앞에 있는 빌라 1층에 집도 마련해주었다. 지금까지도 타 시에서 장애인 예술지원 모범사례로 꼽혀 견학을 올 정도로 그의 상황과 그가 가르치는 장애인예술가들에게 딱 맞는 지원이었다. 여기에다가 그가 센터를 다니며 경제생활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중증장애인이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죠. 얼마나 좋아요. 장애인으로 사는 게 아니고 예술가로 사니까. 그렇죠?”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소울음아트센터에 오는 이들은 다양하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있고, 전문 작가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으며, 지금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해 기초를 배워나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 나이와 장애 정도의 차이, 그림을 그리는 ‘손’도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입이, 누군가에게는 팔과 겨드랑이 사이가, 누군가에게는 손가락 사이가 손이 된다. 작품들에서는 불편한 손으로 붓을 쥐고, 주사와 약으로 고통을 견뎌낸 모든 시간들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최진섭 대표는 ‘장애인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그림을 배울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많은 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셨기 때문’이라며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성심병원 엄주택 의학박사님, 안양화방 송 선생님, 오용길 교수님, 홍상현 선생님 이런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많이 주셨어요. 화실이 법인이 된 후에는 5,000원씩, 10,000원씩 기부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고요. 그분들이 있어서 소울음아트센터가 유지가 될 수 있었죠.”
동호회로 운영되는 장애인화가단체는 있지만 이곳처럼 화실로, 화가 양성을 돕는 장애인단체는 전국에서 유일무이하다. 그를 포함해 프로작가 세 명이 요일별로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의 예술을 돈 많은 일부 장애인의 취미로 인식했어요.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후천적 장애인이 많아지면서 그 의미가 확장됐죠. 재활이나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문화예술의 힘이 크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인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어요. 재능이 있다면 그림으로 직업도 갖고, 사회생활도 할 수 있고요. 우리 회원들은 그림 그리고, 전시회 하고, 야외 스케치 나가고, 봄이나 가을이면 박수근미술관이나 장욱진미술관 등 방문하면서 굉장히 바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가능성의 예술에 도전하라
시, 도에서 지원비와 관리비, 모델비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센터를 운영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어려움은 많다. 우선 많은 장애인화가들이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물감이나 캔버스를 넉넉하게 살 수 없을 정도로 재료비가 부족하다. 교통이 많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그림을 배우러 오는 이들 중에는 전주나 동대문 등 전국에서 찾아오기에 급한대로 그의 집을 내어주고는 있지만 공간도 협소하고, 돌볼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없는 것도 문제다. 또 일주일에 한 번은 그의 집에서 잔치국수를 먹지만 그 외에는 늘 김밥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작업할 수밖에 없는 환경도 열악하다. 하지만 모두들 꿈이 있어 쉽게 붓을 놓지는 않는다.
“예술은 그 열매가 금방 맺히지가 않아요. 일반인 작가들도 십수 년동안 노력해서 작가가 될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목표를 멀리 잡고,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방황을 딛고 일어서길 바랍니다. 에이블 아트,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해서 장애인의 예술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또 지금은 활동도우미분들도 있고, 착한 수레라고 장애인택시 시스템도 워낙 잘 마련되어 있잖아요. 그러니 충분히 휠체어를 타고도 올 수 있어요. 처음이라 조금 겁날 수는 있지만 도전해야죠. 주변에서는 도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주고요. 그래서 많은 장애인 화가가 성공해, 장애인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떳떳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많은 중증 장애인들에게 스스로 희망이 되어 ‘최진섭’이라는 이름을 알린 예술가는 또 다른 희망이 생겨나길 바라고 있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