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많이 허락되지 않은 시간, 행복한 시간만 채워주고 싶어요. [희망세움지역아동센터 정택숙 센터장]

많이 허락되지 않은 시간, 행복한 시간만 채워주고 싶어요. [희망세움지역아동센터 정택숙 센터장]

by 안양교차로 2015.08.13

행복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절대적 우선순위로, 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난치병 아동에게는 치료만이 유일한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난치병은 말 그대로 치료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행복을 치료 다음으로 미루면 행복은 더 멀어진다. 이 아이들의 행복은 세상을 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되었건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오밀조밀 모인 공부방에서 싹트는 행복
호계동에 위치한 희망세움지역아동센터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며진 작은 도서관과 한두 명의 아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작은 교실들이 보인다. 교실을 이렇게 작게 만든 건 평범한 아이들과 달리 한 선생님이 몇 십 명의 아이들을 돌볼 수 없기에 공간을 쪼개 많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센터가 만들어져서 이전보다 많은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정택숙(51) 센터장은 10년 전 처음 난치병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뛰어들었다. 성결대에서 사회복지를 공부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녀에게 난치병센터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만나게 된 아이들이 근육병을 앓고 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었다. 근육병은 스티븐 호킹이 겪었던 루게릭병처럼 온 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질병으로, 8살에서 12살 정도에 발병이 되면 20세를 넘기기가 어려운 질병이다.
교회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로부터 시작해 아이들을 돌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야 학원으로 가겠지만 난치병 아동이나 장애아동은 방과 후에 갈 곳이 없었다. 이 몇 명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더 넓은 곳에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지 4년 만에 지금의 센터를 만들게 되었다.
이미 다른 곳에 세워지고 있는 다른 지역의 센터를 돌아보며 직접 인테리어를 하고 레크리에이션 위주로 강좌도 다양하게 구성했다. 일반 아동 없이 장애아동만 모여 재활치료까지 진행하는 센터는 이 센터가 유일하다. 그녀는 이렇게 벌써 10년째 난치병 아이들과 함께 병이 아닌 불행과 싸우고 있다.
나아졌다는 건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았다는 것
이렇게 10년째 싸워오면서 가장 힘든 건 아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자신의 육체적 힘듦이 아니라 아이들과 지내며 갖게 되는 측은지심이었다.
“근육병 아이들은 자기 몸이 굳어 가는 걸 보고 있잖아요. 머리까지 굳어야 죽는 거니까요. 그래서 2년 정도는 ‘땀 흘리면서 농구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혼자서 울고 다시 들어오곤 했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눈물 흘린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차라리 눈물을 멈추고, 더 오랜 시간 아이들에게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눈물 흘리는 일이 거의 없죠. “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쉽고도 어려웠다. 우선은 아이의 장애로 인해 어려워진 가정을 돕는 일이 우선이었다. 다른 복지기관들과 힘을 합쳐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오히려 가장 쉬운 방법이다. 정말 어려운 건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이 나아지지 않을 때이다.
“나아진다는 것이 병이 나았다는 의미가 아니고요.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았다는 의미에요. 발달장애 1급인 아이들이 음악치료를 받고나서 노래를 흥얼대면 그 아이는 조금 더 행복해진 거잖아요. 이 아이가 오래 살지, 오래 살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는 동안은 그래도 우리 센터에서 지내면서 조금이라도 성숙해지고 행복해지길 바라죠. 그런데 아이들을 돌보다보면 한 측면에서는 좋아지는 듯 하다가도 다른 측면으로는 나빠질 때도 있어요. 속상해도 이 과정을 이겨내야 더 좋은 모습도 볼 수 있겠죠.”
아이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
이렇게 아이들이 나아졌다가도 나빠지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결국 ‘사람’이다.
“지적장애 아이와 지하철을 타면 늘 두려움과 무시가 섞인 시선을 느껴요. 물론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긴 해요. 소리를 내거나 코를 풀거나 틱 장애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죠. 하지만 이 아이들이 해를 입히지는 않거든요. 피하거나 과도한 경계를 할 필요는 없어요. 심지어 저번에 장애아동 어머님께서는 지하철에서 뇌병변 아이가 일어난 자리를 닦고 나서 앉는 것도 봤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어요. 전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장애아동을 보듬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또한 주변이 아닌 가장 가까운 가족이 아이들을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제가 봤을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별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해요. 저도 처음에는 경증인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아이들의 흥미만 찾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증여부나 업종에 관계없이 직업체험을 가보면 늘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일하면서 관연 행복할까? 라는 회의감이 들어요. 심한 말로 ‘앵벌이’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이걸 견뎌서 번 돈으로 뭘 해야지’하는 즐거움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들이 오셔서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늘 제가 말씀드려요. ‘어머니 그렇게 직업을 갖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요즘엔 많은 엄마들도 저처럼 직업 생각 안 하고, 사는 동안 행복한 시간만 주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학교도 마찬가지에요. 일반반에 아이들이 들어가서 50분씩 알지도 못하는 수업을 앉아서 듣는 것이 행복할까요? 왔다갔다 돌아다니면 혼나면서요. 그 아이들한테는 학교가 지옥인거에요. 일반반에 들어간 아이 중에서 특수반에 있는 게 더 편하다고 하면서 일반반에 있는 시간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게다가 이렇게 억지로 참고 있으면 자해 등의 행동들을 보일 수 있으니 더 위험하죠.“
정택숙센터장이 지난 10년간 해온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해가야 할 일들은 이렇게 아이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없애서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희망세움지역아동센터] 031-427-7525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