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시민의 발이자, 시민의 수호대가 되어 [모범운전자회 이권승 회장]

시민의 발이자, 시민의 수호대가 되어 [모범운전자회 이권승 회장]

by 안양교차로 2015.07.21

바쁜 아침, 많은 차량이 붐비며 각자가 갈 길을 재촉할 때 가운데에서 복장을 차려입고 호루라기를 불며 수신호로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언뜻 교통경찰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은 모범운전자회 회원들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양이 뜨겁게 아스팔트를 내리쪼일 때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도로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자신들의 수신호를 잘 따라주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립니다
모범운전자회는 택시, 버스 등 영업용 차량 운전자들이 모여 교차로 수신호와 교통 캠페인 등의 봉사를 하는 단체로, 시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운전대 대신 호루라기 하나와 맨손으로 나선 이들은 교차로 수신호를 하던 의경이나 전경이 줄어들면서 경찰 보조 업무를 하고 있다.
“교통이 혼잡한 구간에서는 교통 신호만으로는 차들이 원활하게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이럴 때 교차로에서 누군가 한 명이 수신호를 하고, 모든 시민들이 이 수신호에 따라준다면 자기 본인만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두가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경찰서나 시청에서 ‘신호보다 수신호가 먼저입니다.’라는 플랜 카드를 붙이고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많은 홍보와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민들은 ‘경찰도 아닌 사람들이 뭔데 교통정리를 하냐’며 수신호를 제대로 따르지 않을 때도 많다.
“속상하죠. 특히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있을 때는 많은 인파와 차량이 몰려 사고 위험이 굉장히 높아져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호루라기를 불고 수신호를 하는데, 돈 받고 한다는 오해를 하기도 해요. 오히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영업용 운전자들한테 회비를 걷어가며 봉사를 하고 있는 건데요. 이런 오해만 사라져도 지금 하고 있는 봉사에 훨씬 더 보람을 느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아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새마을운동을 하며 봉사하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이권승(57) 회장은 오래 전부터 모르는 이들을 돕는 일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우연히 버스 운전을 하던 동료의 제안으로 모범운전자회에 들어온 2004년 9월 1일 이후로 지금까지 11년 동안 묵묵히 봉사를 해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회원들은 지난 6월 26일 그를 모범운전자회 회장으로 선출했다.
부회장은 “이권승 회장은 달변가는 아니지만 그만큼 신뢰가 깊고, 듬직해서 적극적으로 회장후보로 추천했다.”며 이권승 회장의 안타까운 사연도 함께 전했다.
“이권승 회장님 아들이 대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뇌를 다쳤어요. 지금 25살인데 인지능력이 초등학교 저학년에 머물러 있어요. 축구선수를 할 정도로 건강했던 아들이 이런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저였다면 계속 봉사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간병하려면 시간이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요. 하지만 회장님은 오히려 더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내 아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면서요. 사실 회장직을 맡으면 그만큼 생계는 더 어려워진다고 볼 수 있어요. 영업할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되니까요. 그런대도 흔쾌히 회장직을 맡아주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어요.”
단순히 봉사만 하다가 이번에 회장이 되어서 고민이 많다는 이권승 회장은 가장 큰 고민거리로 사무실을 꼽았다. 현재 수도도 나오지 않는 컨테이너 건물을 사무실로 쓰다 보니 회원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활동 중인 110명의 인원 중 실제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원을 더 늘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다른 봉사단체처럼 이것이 쉽지는 않다. 경찰보조업무를 해야 하는 봉사 특성상 최근 3년 동안 사고가 없어야 하며 사소한 범죄사실도 있어서는 안 된다.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경찰서에서 교통과장과 심의위원 6명이 의논해 심의에서 통과되어야 정식으로 수첩이 발부되고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모범시민이 되어주세요
말 그대로 ‘모범’을 보인 운전자만이 봉사할 수 있는 모범운전자회이지만 봉사활동이 쉽지는 않다. 황색 신호를 보고 기다리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높여 달리는 차를 몸으로 막아도 위협적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들 때문에 머리가 쭈뼛 서기도 하고, ‘왜 앞에 서 있던 차는 보내고, 내 차는 보내주지 않느냐’며 욕설을 퍼붓는 이들에게도 안전을 위해 동참을 부탁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봉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어려움과 바꾼 것이 시민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걸음이 느려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하실 때가 많아요. 그러면 교통신호가 바뀌어도 차가 오지 않도록 수신호를 하고, 어르신을 부축해서 건너다드리죠. 그러면 어르신들이 어찌나 고마워하시는지 몰라요. 또 시민들이나 학생들이‘수고하십니다.’,‘감사합니다.’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죠.”
앞으로 거리에 외롭게 서서 땀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는 이들을 위해 간단한 인사를 건네며, 안전 운전을 한다면 하루의 새로운 시작을 여는 아침이 더 상쾌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