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열정적이라고요? 그저 맡은 바에 충실한 뿐이죠.” [안양3동 적십자봉사회 박로헌 회장]

“열정적이라고요? 그저 맡은 바에 충실한 뿐이죠.” [안양3동 적십자봉사회 박로헌 회장]

by 안양교차로 2015.07.07

안양3동 주민자치위원회 서종화 위원장은 오늘의 칭찬릴레이 주인공으로 박로헌 회장을 적극추천하면서 “봉사활동 기간이 남들보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만큼 열정적인 인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하니 박로헌 회장은 대답했다. “열정적이라고요? 그저 맡은 바에 충실한 뿐이죠.”

준비된 그에게 찾아온 봉사 기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서종화 위원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박로헌(58) 씨에게 봉사단체 ‘사랑의 집수리’에 함께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로헌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봉사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는 내내 사내 봉사활동으로 서울역이나 명동에서 노숙자들을 위해 빵과 우유를 나누는 봉사에 참여하면서 봉사활동이 무엇인지, 또 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어요. 또 봉사활동가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중에 나도 꼭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도 결심했었고요.”
스스로 마음먹고 있던 차에 서종화 위원장이 방법을 제시해준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안양에 있는 어려운 이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일이라면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저소득층 가정을 직접 방문해보면, 대부분 반지하나 지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벽지며 장판에 곰팡이가 심해요. 창문이 부서져 추위나 비를 제대로 피하기 어려운 곳들도 있고, 페인트가 다 뜯어져 있는 건 기본이고요. 새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생활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갖춰드린다는 생각으로 하는 거죠.”
사랑의 집수리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동네’인 안양 3동의 주거환경을 집중적으로 해주고 싶다는 소망도 생겨났다. 그래서 동 단위의 봉사단체인 브이터전에서 집수리를 시작해 작년에만 25가구의 러브하우스를 꾸며주었다. 브이터전에서 안양3동 자원봉사회로, 또 여기서 발전해 앞으로 이 봉사단체는 안양3동 대한적십자봉사회로 그 명칭과 역할이 바뀔 예정이다.
“적십자로 바뀌면 봉사활동 범위가 더 넓어져요. 적십자사에서 쌀이나 반찬 등 지원을 받아서 나눌 수 있게 될 겁니다. 이제는 어려운 이웃의 의식주 중 ‘주’뿐만 아니라 ‘식’도 챙길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16명의 회원 수가 적어도 20명 이상으로 늘어나야하겠죠.”
좋은 일을 위해서라면 고생을 사서 해야 한다
집수리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운 여름에는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무거운 짐들을 나르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기구 하나 없이 꽁꽁 언 손으로 이곳저곳을 쓸고 닦아야 한다.
“그래도 여러 명이 모여서 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니까 훨씬 덜 힘들죠. 또 제가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전문 기술이 없지만 이렇게 모여서 봉사활동을 하면 다른 전문 봉사자들을 도와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움을 줄 수 있고요.”
하지만 이 고생을 하고도 수혜자들에게 도리어 불만사항을 듣기도 하고, 과도한 요구를 받아 난감할 때도 많다.
“사소한 걸 도와드렸는데도 고마워하시는 분들이 있고, 많은 걸 해드려도 더 요구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심지어 TV광고에 나오는 싱크대를 설치해달라고 하시거나 ‘시와 동에서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며 떼를 쓰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정말 곤란해요. 솔직히 아주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저희도 되도록 좋은 걸로 이것저것 도와드릴 수 있으면 좋죠. 그런데 더 많은 분들을 돕기 위해서는 한 분께 굉장히 좋은 걸 해드리기는 어려워요. 모든 분들께 골고루 혜택을 드려야 하니까요.
반대로 저번에는 동사무소 오는 길에는 어떤 어르신께서 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시더라고요. 저는 도움을 드리는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니니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어르신께서는 저를 기억해주셨어요. ‘매년 겨울마다 집 안에서 덜덜 떨었는데 덕분에 올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고 있다.’고 ‘정말 고맙다’하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내가 정말 뜻 깊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그는 단체에 나오는 지원금에 더해 사비를 털어 한 집이라도 더 수리하기 위해 애쓴다.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술 한 잔 먹을 돈 안 먹고 보탠다고 생각하면 돼요.”
어려운 이웃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사실 말은 안 하지만 가족들도 제가 이렇게 돈 쓰고 다니면서 봉사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아무리 정년까지 일하고 은퇴 후에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가장이니까요. 그래도 아내가 제가 하는 일에 관여하는 편이 아니라서 다행이죠.”
그는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무엇보다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볼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98년에 우리나라가 IMF경제위기를 겪던 시절에도 저는 직장에 다니느라 세상이 어렵다는 걸 몰랐어요. 뉴스에서 연일 ‘중산층이 무너졌다,’ ‘빈곤층이 늘어났다’ 해도 저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봉사를 하다 보니 느껴져요.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동네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요.
제가 안양에서 30년 이상을 살고 있는데 이렇게 지하 셋방이 많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어요. 지하라서 눈에 띄지 않고, 제가 방문할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어르신들이 방 한 칸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시고, 곰팡이 핀 공간에서 겨울이며 여름마다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줄 몰랐죠. 아마 봉사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몰랐을 거예요. 지금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으신 분들도 생각보다 어려운 이웃이 가까이에 있다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네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