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를 위한 시간을 비워두는 것이 장기 봉사활동의 비결 [고순재 자원봉사자]
봉사를 위한 시간을 비워두는 것이 장기 봉사활동의 비결 [고순재 자원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5.06.30
“얼떨결에 추천을 받아서 하긴 하지만, 난 인터뷰할 만큼 특별할 게 없어요.”라며 부끄러워하는 그녀. 하지만 봉사자가 많지 않던 20여 년 전부터 봉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꾸준하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장기 자원봉사자이다.
배움에 대한 끌림이 봉사에 대한 열정으로
고순재 (61) 씨는 예전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둑부터 시작해 자전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정적인 취미와 동적인 취미를 아우른다. 그래서였는지 그녀가 30대 후반이 됐을 무렵, 남편은 그녀에게 안양 농협 주부대학을 권했다. 그렇게 가족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가게 된 주부대학에서는 그녀에게 배움뿐만이 아니라 봉사까지 가르쳤다. 봉사를 나갈 복지관을 지정해준 것이다.
“원래는 봉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아이들 키우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 배우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알게 된 봉사가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오늘도 처음 봉사했던 복지관에서 식사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하지만 마음만큼 봉사를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들었다. 한창 아이들도 어릴 때라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그녀 또한 그때 당시에는 가족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돈 대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애들이 모두 자라 결혼하니까 이제는 또 돈 보다 봉사활동이 더 값지다고 생각이 드네요. 저도 지금에야 시간이 여유로워져서 이렇게 나서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서서히 자라면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늘려나갔다. 지역 봉사를 위한 부녀회부터 시작해, 취미로 했던 바둑과 자전거 동호회에서도 봉사활동을 병행했다.
“동호회에서 봉사를 하면 여럿이 함께 하니까 힘이 나고,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랑 연관되어서 하는 일이니 더 즐겁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어요.”
안양의 어려운 이들을 위한 안내자이자 조력자가 되어
그렇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던 그녀는 이번 해부터는 크게 세 가지 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는 그녀가 가장 오랫동안 해오던 복지관 식사봉사이다. 안양 내 세 곳의 복지관에서 음식을 만들고, 배식을 하며 식사가 끝난 뒤에 뒷마무리와 설거지까지 마치고 돌아온다.
두 번째는 샘병원 내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을 관리하고, 복잡한 병원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일이다.
“병원에 있는 환자분들은 늘 심심하고 적적하잖아요. 그럴 때 도서관에 오시면 책을 빌려 가실 수 있어요. 저희가 말동무도 잠깐 해드리고요. 또 처음 샘병원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병원 안에서 길을 잘 못 찾으시거든요. 그럴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봉사를 하고 있어요.”
세 번째는 동V터전으로, 안양에 있는 동 단위의 미니 자원봉사센터이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소소한 봉사를 할 수 있어 전수조사가 어려웠던 취약계층을 직접 챙길 수 있고, 봉사할 만한 곳이 생기면 직접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한다. 요즘은 의무적인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봉사활동에 참여하려고 하는 어린 아이들이 많아 일손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주로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에 필요한 자원봉사를. 두루두루 해요. 환경정화부터 시작해서 취약계층에 도시락 배달, 그 때 그때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하는 봉사가 달라지기도 하고요.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을 가르쳐주니 보람이 크죠. 규모가 작다보니까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요.”
봉사활동을 할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일 뿐
취약계층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각각 다르다. 복지관에서는 식사 봉사를 하는 도중 일부 어르신들이 더 달라, 덜 달라, 반찬이 마음에 안 든다며 봉사자들에게 불만을 쏟아내기도 하고,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안내자가 처리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녀는 화가 나기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 동네에 있는 불우이웃에 반찬을 배달할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도시락 배달을 하기 위해서 집에 방문하면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이 많잖아요. 사람이 반가우셔서 그런지 ‘차도 마시고 가라’면서 붙잡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오죽 사람이 그리우실까’싶기도 하고, ‘힘도 없으신데 힘들게 차까지 대접하려고 그러시나’싶기도 해요. 반대로 장애인에게 도시락 배달을 가면 열려있는 문 앞에 도시락을 놓고, ‘도시락 가져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씀드려요. 안쪽에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대답만 나오죠. 거동이 힘들어 나오시기 어려우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에게 오랜 시간 이렇게 봉사를 지속해올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제가 봉사를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보람을 많이 느껴서라기보다는 봉사활동을 할 일정을 잡아놓고 정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나가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봉사활동에 특별한 비결이 어디 있겠어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