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가슴 뭉클해 눈물 쏙 빼는 봉사활동을 꿈꾸다 [안양3동 주민자치위원회 서종화 위원장]

가슴 뭉클해 눈물 쏙 빼는 봉사활동을 꿈꾸다 [안양3동 주민자치위원회 서종화 위원장]

by 안양교차로 2015.06.16

소원을 물었더니 “절박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난 뒤, 가슴 뭉클해서 눈물이 나는 봉사를 꼭 해보고 싶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했던 봉사보다 더욱 자신의 마음을 쏟을 봉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열정이 끊임없이 봉사를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돈 버는 것만큼 돈을 제대로 쓰는 것도 어렵다
현재 안양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부회장이자 사랑의 집수리 이사이자 후원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종화(57) 씨는 지난 94년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이전부터 독거노인이나 조손가정을 돕고자 마음먹었던 그는 이들의 여행을 지원해주겠다며 나섰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있었다. 조손가정의 손자, 손녀들이 여행을 위해 학교를 빠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조손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 중에 학교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아이들이 많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욱 심했잖아요. 그러니까 여행을 보내주겠다고 해도 학교에 이러저러한 사정을 말하면서 학교를 빠지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조손가정보다는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위한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또한 쉽지는 않았다.
“연로하시다보니까 차에서 내리고, 올라타고, 돌아다닐 때에도 도움이 필요하더라고요. 어르신 두 분당 한 사람 정도가 어르신들을 돌봐야 해요. 그래서 도움을 주실 분들을 찾아보니 부녀회나 봉사단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또한 많은 명수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다보니 행정적인 절차도 밟아야 해서 동사무소 직원 중 한 명과 늘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은 지금까지 매년 이어지고 있다. 집에 오래 계시면서 한번 여행하기가 어려운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이쯤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폐지 줍는 어르신 신발부터 다문화가정의 비행기 표까지
그렇게 봉사를 시작하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눈에 띄어 외면할 수 없었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고물상에 이야기를 전하고 식당에서 제대로 식사대접을 하려고 했지만 식당을 찾는 어르신들이 적었다. 알고 보니 폐지를 주우면서 더러워진 옷으로 식당에 들어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물상으로 오시도록 했다. 며칠 전부터 고물상에서 어르신들의 신발 사이즈를 재고, ‘며칠 동안 일 안하셔도 될 정도의 금액을 드릴 테니 꼭 식사하러 오시라’며 당부하도록 부탁했다. 다행히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 각자의 사이즈에 맞춘 신발을 전달하고 식사대접을 해드릴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다문화가정이 눈에 밟혔다.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에서 며느리들은 친정을 한 번도 가지 못하고, 친정 식구들도 한 번도 딸을 보러 오기가 힘들다. 어떻게든 가족들을 만나게 해줘야겠다 싶어서 처음에는 외국에 계신 어머니만 모셔오는 걸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딸이 안 보고 싶을까?’ 생각하다보니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결국 한국에 있는 가족 모두가 친정 나라를 밟았다. 비행기 값이며, 체류비까지 지원하다보니 보통 큰돈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작년부터 시작한 이 봉사는 앞으로도 매년 이어질 예정이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이런 활동들도 모자라 그는 직접 안양 3동 자원봉사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사랑의 집수리를 오래 하다 보니 집중적으로 안양 3동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자원봉사회는 현재 적십자회 안양 3동 봉사회가 되어 봉사에 더욱 힘쓰고 있다.
“능력껏 해야 하는데 욕심을 많이 냈어요. 아직도 더 하고 싶은 건 많죠. 뒷받침이 어려워서 ‘지금 이 정도라도 유지해야겠다.’ 싶다가도 다른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아직 가식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봉사를 하기 위해 모은 돈을 인출하고 나면 그 돈을 쉽게 내어놓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이제는 봉사가 필요한 곳에 그대로 자동이체를 해버려요.”
또한 그는 안양 3동만큼은 직접 돌아다니며 매년 전수조사를 한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알려진 곳에 일정한 물품을 매번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해서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필요한지 꼭 묻는다.
“요즘은 봉사단체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반찬을 나눠주는 곳들도 많아졌어요. 보니까 오징어채, 멸치볶음 이런 반찬을 주로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받으시는 분들이 이가 없어서 제대로 씹지를 못하신대요. 오징어채며 멸치 같은 건더기는 다 건져내고 양념만 덜어서 밥에 비벼 드시는데 이런 반찬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래서 제가 봉사단체를 찾아가서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봉사단체 같은 경우도 나물반찬 같은 씹기 편한 반찬을 해드리려고 해도 이런 반찬은 금방 상하니까 하루, 이틀밖에 못 드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생김이랑 간장, 부탄가스 같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신 물건들을 지원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번에도 이것들을 사다드리고 오는데 마음이 무거운 거예요. 많은 부탄가스가 집안에 있는데 혹시나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봉사를 시작하면서 부쩍 걱정도 늘었고, 더욱 욕심도 많이 생기지만 그는 이상적인 봉사를 꿈꾸며 살고 있다.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울컥해서 눈물 흘려보고 싶어요. 그게 무슨 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