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내 힘으로 세상을 누비고, 내 힘으로 세상을 돕는다 [여성자전거회 송명옥 회장]

내 힘으로 세상을 누비고, 내 힘으로 세상을 돕는다 [여성자전거회 송명옥 회장]

by 안양교차로 2015.04.28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여성자전거회 송명옥 회장을 마주하면서 새삼스레 이 격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제 나이는 60세를 넘긴 지 오래지만 30대처럼 날씬하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의 그녀는 20대 소녀 같은 순수하면서도 따뜻한 마음까지 갖추고 있었다. 건강과 봉사 모두에 열정적인 진정한 ‘젊음’이 느껴졌다.
이 주에 한 번, 다른 이의 손과 발이 되어 보내는 하루
아침 9시 30분, 여성자전거회 송명옥 회장(63)은 매달 둘째, 넷째 수요일마다 수리복지관을 찾는다. 그녀가 들어서자 시각장애인들은 그녀를 반기며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녀는 오늘도 한 친구의 눈과 손이 되어 일상생활을 함께 했다. 밥을 먹여준 후에는 창밖골공원으로 나가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작년이나 재작년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산책이 아닌 등산을 했었지만 예산이 줄어 등산이 어려워지자 아쉬운 대로 가까운 공원으로 나간 것이다.
공원에 야트막한 오르막을 만나자 그녀와 함께 다른 시각장애인의 휠체어를 밀던 장애인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평소에 자주 나오지 않다보니 운동량이 적어져 조금만 힘들어도 이렇게 지치고 만다. 한참을 달래고, 용기를 북돋아줬지만 휠체어를 같이 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혼자서 휠체어를 밀며 오르막을 올랐다.
“복지관에 있는 친구들 모두 제가 처음 갔을 때보다 지금 살이 더 많이 쪘어요. 봉사자들이 많이 없다보니 산책이나 나들이를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이렇게 몇 년 전만해도 산에 수월하게 갔던 친구들이 이제는 오래 걸으면 부쩍 힘들어해요. 그 친구도 작년까지만 해도 표 끊는 방법까지 가르쳐가면서 과학관도 같이 갔었는데, 이제는 복지관에서 외출하는 건 좋아하지만 어디에 도착하고 나면 더 이상 안 움직이려고 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봉사자로 나서 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젊고 힘이 센 남자 분들이 많아지면 휠체어를 밀면서 산책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예요.”
즐거우면서도 힘이 들었던 산책이 끝나고 4시 30분이 되자 시각장애인들은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 한 명 한 명 하이파이브를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여성자전거회의 회원으로 있을 때와 달리 회장이 되자 자주 복지관을 찾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하자, 사회복지사는 이렇게 와주시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손을 맞잡는다.
“복지관에 못 가는 날은 사실 사회복지사님과 친구들보다도 제가 더 안타까워요. 격주로 보던 친구들을 한 번 못 보면 눈에 아른거리고 자꾸 생각나서요.”
활동적이고 봉사심이 있는 그녀에게 딱, 여성자전거회
20여 년 전, 그녀는 호계동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반찬을 배달해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간단하다면 간단하다고 여길 수 있는 봉사였지만, 매주 목요일마다 복지관에 가서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고, 동 단위로 배달을 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농촌 봉사나 적십자 활동 등에 열심이었던 그녀는 결혼과 육아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봉사심을 다시 찾았다.
반찬 봉사를 통해 물꼬가 트인 그녀는 동안복지관과 석수동 요양원에서 조리사들을 도와 어려운 이웃들이 먹을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고, 한림대병원 중앙공급실에서 수술실에서 쓰이는 솜방망이와 가제를 만드는 등의 봉사를 찾아하기 시작했다.
봉사 외에 그녀가 빠져 있던 건 운동이었다. 헬스같은 실내 체육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녀는 원래는 등산을 가장 좋아했다. 농협주부대학교에서 산악대장까지 맡아 하던 중 산을 자주 가시던 그녀의 친정 어머니께서 무릎 수술을 받게 되셨고, 이를 보며 무릎이 상하지 않도록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등산 대신 그녀가 취미로 갖게 된 것이 자전거였다. 자전거는 무릎 주변의 근육을 많이 써서 연골이 닳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전신을 운동할 수 있으며, 폐활량에도 도움이 되며 답답하지 않은 야외 활동이었다.
이런 그녀에게 딱 맞는 동호회가 있었다. 봉사와 자전거타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여성자전거회였다. 어느새 그녀가 이 모임에 들어와 봉사와 자전거 타기를 시작한 지 9년. 이제는 회장의 자리에 올라 다른 이들이 봉사와 자전거에 관심을 지켜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소중한 인연과 내 발전을 만들어준 봉사
봉사를 하면서 그녀는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며 웃는다.
반찬배달을 하면서 어머니처럼 모셨던 분은 한 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한 쪽 눈은 백내장이 심해 앞을 볼 수 없으신 상태였다. 반찬을 가져다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한림대병원에서 생활보호대상자에게는 저렴한 수술비로 백내장 수술을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분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애썼다. 당일 수술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다른 백내장 환자와는 달리 이 분은 일주일 정도를 병원에 입원해계셔야 했지만 결국 회복해내시고 한 쪽 눈의 시력을 되찾으셨다.
“원래 소변주머니를 차고 다니셨는데 눈이 잘 안보이시니까 소변 주머니를 꽂는 데가 잘 안보여서 늘 소변이 흘렀어요. 그런데 백내장 수술을 하고나서 ‘이제 소변주머니를 나 혼자서도 잘 끼울 수 있다’며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또한 1급 시각장애인인 친구도 있다. 한 등산업체 사장님께 도움을 받아 이 친구와 함께 등산을 하고, 1박 2일로 제주도에도 다녀왔다.
“남편과 함께 1급 시각장애인 친구인데 정말 제가 본받아야 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 친구에요. 그래서 봉사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만나고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 또한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요즘엔 수리복지관에서 오카리나와 우쿨렐레도 배운다. 이는 수강료를 내고 듣는 수업이 아니라 복지관에서 활동하는 봉사자들을 위해 진행하는 수업이다.
“복지관에서도 도움을 받기만 하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든 받은 봉사를 봉사자들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해요. 그러니 많은 분들이 봉사에 나서 다른 이를 돕는 보람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함께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