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군포시장애인단체 총연합회장 송기태]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군포시장애인단체 총연합회장 송기태]
by 안양교차로 2015.03.04
송기태 회장(56)은 두드리면 ‘퉁퉁’ 소리가 나는 의수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는 한쪽 다리가 없어요. 뛰지 못하니 걸어갈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남들이 두 발자국 걸으면, 저는 한 발자국 쫓아간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열심히 걸어가면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를 주저앉힌 단 한 번의 사고
산악용 오토바이 운동선수였던 그는 오토바이로 관악산을 최초로 정복했던 모험가였다. 그렇게 사랑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중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와 오토바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병원에 도착한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몸은 부서졌고, 의식은 없었다. 희망이 없었다. 활발한 성격으로 동창회장까지 맡고 있던 그를 위해 친구들이 가족들을 도와 장례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던 그는 사고 후 4일째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살아난 그를 보며 기뻐했지만 막상 그는 살았다는 기쁨보다는 장애인이 되었다는 절망이 더 컸다. 사고 전의 삶이 행복했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제는 불행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간의 기나긴 치료 후 병원 밖을 나선 그는 더 이상 이전처럼 활발하고, 모험심 강했던 그가 아니었다.
지인은 삶의 희망을 잃은 그에게 세상 밖으로 나오라며 한 장애인단체를 소개했다. 사고 후 3년 만이었다.
“봉사를 처음 시작한 순간, 내가 죽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어요. 내가 아직 할 일이 남아서 날 살렸던 거였죠. ‘사고가 나기 전,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내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니까요.”
98년부터 시작한 봉사는 그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게 했다. 내 일처럼 앞장서서 봉사하다보니 장애인단체에서 임원진과 회장을 역임하고 이웃사랑봉사단 사무국장을 맡았다. 김장을 담가 장애인에게 나눠주는 등 국내 봉사부터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중국 조선족, 일본 징용피해자 등 국외 봉사까지 다양한 봉사경험을 쌓아나갔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행했던 봉사덕택에 그는 지난 12월 2일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산악용 오토바이 운동선수였던 그는 오토바이로 관악산을 최초로 정복했던 모험가였다. 그렇게 사랑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중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와 오토바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병원에 도착한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몸은 부서졌고, 의식은 없었다. 희망이 없었다. 활발한 성격으로 동창회장까지 맡고 있던 그를 위해 친구들이 가족들을 도와 장례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던 그는 사고 후 4일째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살아난 그를 보며 기뻐했지만 막상 그는 살았다는 기쁨보다는 장애인이 되었다는 절망이 더 컸다. 사고 전의 삶이 행복했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제는 불행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간의 기나긴 치료 후 병원 밖을 나선 그는 더 이상 이전처럼 활발하고, 모험심 강했던 그가 아니었다.
지인은 삶의 희망을 잃은 그에게 세상 밖으로 나오라며 한 장애인단체를 소개했다. 사고 후 3년 만이었다.
“봉사를 처음 시작한 순간, 내가 죽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어요. 내가 아직 할 일이 남아서 날 살렸던 거였죠. ‘사고가 나기 전,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내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니까요.”
98년부터 시작한 봉사는 그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게 했다. 내 일처럼 앞장서서 봉사하다보니 장애인단체에서 임원진과 회장을 역임하고 이웃사랑봉사단 사무국장을 맡았다. 김장을 담가 장애인에게 나눠주는 등 국내 봉사부터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중국 조선족, 일본 징용피해자 등 국외 봉사까지 다양한 봉사경험을 쌓아나갔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행했던 봉사덕택에 그는 지난 12월 2일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낮에는 연합회장, 밤에는 택시기사
연합회장의 자리는 봉급이 나오진 않지만 책임감과 의무사항이 많은 자리인지라 그는 이전보다도 더욱 바빠졌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새벽 2,3시까지 택시를 운전하고, 오후 1시에 연합회에 출근했다가 다시 4시쯤 일터로 향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큰 행사가 없지만 이제 오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행사 일정이 빼곡하다. 곧 4월 21일 장애인의 날에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행사는 많은 장애인을 초청해 공연이 열린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도 연합회의 몫이다. 그 외에 장애인가요제, 장애인단합대회가 이어지고, 가을에는 택시를 빌려 가을 나들이를 간다.
“가을 나들이는 작년까지 14년 동안 성공적으로 매년 하던 행사였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장애인에게는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꼭 가야 하는 이동목적이 아니라 휴식을 위해 소풍을 간다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거든요. 함께 여행도 가면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삶의 재미를 느끼게끔 해주고 싶어요.”
이런 애뜻함을 알고 있어서인지 어딜 가든 그에게는 감사를 전하는 이들이 많다. 며칠 전에도 길을 가던 사람들이 그의 택시를 길거리에서 알아보고 다가와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저는 해준 게 많지 않은데 그래도 이렇게 반겨주시는 걸 보니 감사하죠. 진정한 마음이 오고가면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도 그걸 느껴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장애인들과 모일 때마다 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자고 말하거든요. 물론 예의를 지키자는 의미가 더 강하지만 감사를 표현하면서 스스로도 더욱 행복감을 느끼게 되요. 전에는 그런 표현을 안 하다가 자원봉사자 분들이나 도움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제 기분이 더 좋아져요.”
연합회장의 자리는 봉급이 나오진 않지만 책임감과 의무사항이 많은 자리인지라 그는 이전보다도 더욱 바빠졌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새벽 2,3시까지 택시를 운전하고, 오후 1시에 연합회에 출근했다가 다시 4시쯤 일터로 향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큰 행사가 없지만 이제 오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행사 일정이 빼곡하다. 곧 4월 21일 장애인의 날에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행사는 많은 장애인을 초청해 공연이 열린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도 연합회의 몫이다. 그 외에 장애인가요제, 장애인단합대회가 이어지고, 가을에는 택시를 빌려 가을 나들이를 간다.
“가을 나들이는 작년까지 14년 동안 성공적으로 매년 하던 행사였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장애인에게는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꼭 가야 하는 이동목적이 아니라 휴식을 위해 소풍을 간다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거든요. 함께 여행도 가면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삶의 재미를 느끼게끔 해주고 싶어요.”
이런 애뜻함을 알고 있어서인지 어딜 가든 그에게는 감사를 전하는 이들이 많다. 며칠 전에도 길을 가던 사람들이 그의 택시를 길거리에서 알아보고 다가와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저는 해준 게 많지 않은데 그래도 이렇게 반겨주시는 걸 보니 감사하죠. 진정한 마음이 오고가면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도 그걸 느껴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장애인들과 모일 때마다 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자고 말하거든요. 물론 예의를 지키자는 의미가 더 강하지만 감사를 표현하면서 스스로도 더욱 행복감을 느끼게 되요. 전에는 그런 표현을 안 하다가 자원봉사자 분들이나 도움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제 기분이 더 좋아져요.”
화합으로 만든 한 목소리의 힘
3년 정도 남은 그의 임기 중 목표는 ‘교육’과 ‘복지회관 건립’이다. ‘교육’은 거창한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감사를 표하도록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복지회관 건립’은 현재 군포역 건물 한 층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합회 사무실의 환경을 바꿔 더 많은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장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서이다. 목표는 단 두 가지이지만 둘 모두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기에 걱정이 없다.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우리 중에 네가 제일 낫다’하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고요. 그게 오히려 저를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저는 여기 토박이거든요. 군포초등학교, 안양중학교 등 고향 선후배며, 친구들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또 장애인이 된 후에 저를 도와주신 자원봉사자들이 정말 많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그 기대에 부응해야합니다.”
이렇게 모든 이에게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에게도 어려운 점, 아쉬운 점은 남아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애인 중에 생활이 어려워 이중고를 겪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결국 장애인 복지 정책을 추진시키는 것도 이분들이에요. 궐기 대회하고 집회하면서 무엇을 해달라며 요청하시니까요. 그렇게 해서 복지정책이 이뤄지면 그건 모든 분들이 누리죠. 앞으로는 다른 분들보다 좀 여유가 있고 배우신 분들이 이런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데 우리끼리 단합하고 화합해야죠. 그분들이 모이면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바로 우리 세대의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후대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장애인 복지에 힘쓰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 (사)경기도신체장애인복지회 군포시지부 >
후원 : 국민은행 348301-04-225740
취재 강나은 기자(naeun113@naver.com)
3년 정도 남은 그의 임기 중 목표는 ‘교육’과 ‘복지회관 건립’이다. ‘교육’은 거창한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감사를 표하도록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복지회관 건립’은 현재 군포역 건물 한 층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합회 사무실의 환경을 바꿔 더 많은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장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서이다. 목표는 단 두 가지이지만 둘 모두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기에 걱정이 없다.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우리 중에 네가 제일 낫다’하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고요. 그게 오히려 저를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저는 여기 토박이거든요. 군포초등학교, 안양중학교 등 고향 선후배며, 친구들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또 장애인이 된 후에 저를 도와주신 자원봉사자들이 정말 많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그 기대에 부응해야합니다.”
이렇게 모든 이에게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에게도 어려운 점, 아쉬운 점은 남아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애인 중에 생활이 어려워 이중고를 겪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결국 장애인 복지 정책을 추진시키는 것도 이분들이에요. 궐기 대회하고 집회하면서 무엇을 해달라며 요청하시니까요. 그렇게 해서 복지정책이 이뤄지면 그건 모든 분들이 누리죠. 앞으로는 다른 분들보다 좀 여유가 있고 배우신 분들이 이런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데 우리끼리 단합하고 화합해야죠. 그분들이 모이면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바로 우리 세대의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후대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장애인 복지에 힘쓰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 (사)경기도신체장애인복지회 군포시지부 >
후원 : 국민은행 348301-04-225740
취재 강나은 기자(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