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봉사로 가득 찬 하루가 행복해요 [자유총연맹 김현숙 여성회장]

봉사로 가득 찬 하루가 행복해요 [자유총연맹 김현숙 여성회장]

by 안양교차로 2015.02.24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만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유총연맹 여성회장 김현숙 씨(60)는 그래도 이렇게 바쁜 일상이 행복하다며 웃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봉사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며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만큼 삶의 충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없다는 그녀에게서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봉사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라
2월 10일, 김현숙 회장의 봉사는 9시부터 시작된다. 9시 30분부터 대안중학교에서 졸업식 캠페인을 하기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졸업식이 끝난 뒤 탈선으로 이어지는 청소년을 막기 위한 이 캠페인은 법사랑위원회에서 하는 활동으로, 졸업식이 있는 학교를 돌며 이어진다. 오후에는 이모삼촌결연맺기 활동 중 하나로 검찰청에서 후원한 쌀을 결연을 맺은 조카에게 전해줄 예정이다. 그 뒤에는 법사랑위원회 동안지구에서 회원들이 조금씩 성금을 모아 마련한 라면을 안양보호관찰소, 안양여자자립생활관, 법무보호복지공단경기지부에 전달한다. 모든 일정을 끝낸 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7시. 이렇게 잡힌 일정을 따라 생활한지 벌써 수년 째,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특별한 일정이 아닌 주기적으로 잡혀 있는 스케줄도 빽빽하다. 법사랑위원회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청소년 유해업소 감시감찰을 하며, 자유총연맹 여성회장이자 포순이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는 평일 하교시간에 학교 주변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둘째 주, 다섯째 주 수요일에는 요양원에서 어르신들 식사 준비를 도와드리고, 한림병원에서는 2시간 정도 안내봉사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안양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일손을 보태주고,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에서 휴지 줍기부터 장묘문화 권장 등의 활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진실, 질서, 화합의 3대 기본 질서를 지키는 사회단체인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이념운동단체인 자유총연맹, 법무부 산하 봉사단체로 기소유예?보호관찰 청소년을 선도관리하며 검찰청과 보호관찰소를 돕는 민간단체인 법사랑협의회. 조금씩 성격이 다른 세 단체를 병행하려니 쉴 틈이 없고, 일정이 겹치는 날 또한 많지만 큼직한 봉사단체 세 곳에서 모두 중책을 맡고 있다 보니 세 단체가 봉사단체 협약식 체결도 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에 나와 저녁에 들어가다 보니 동네에선 제가 직장에 다니는 줄 알고 있더라고요.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면 ‘이제 퇴근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많아요.”
작은 시작에서 출발한 봉사
안양으로 이사 오기 전 30대 초반, 그녀는 광명시에서 부녀회 반장으로 간단한 물품들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를 하거나 적십자 회비를 걷는 등 사소한 봉사들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봉사는 94년 안양에 이사 온 뒤에 시작되었다. 그녀의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각 반에 한 명씩 부모님 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이것을 계기로 하게 된 것이 청소년 선도위원회였다.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활동한지 10년째가 되며 청소년선도위원회가 자유총연맹으로 들어갔고, 당시 자유총연맹 여성회장은 그녀에게 여성회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다.
자유총연맹은 반공단체지만 여성회는 주로 봉사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안양시에서 지원을 맡았던 아나바다 매장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여성회에서 매장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서민들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이 와서 500원, 1000원을 내고 옷을 사갔다. 매일 1000만 원 이상 매출을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좋아 팔 옷이 부족하자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 옷을 기부 받았고, 여기서 나온 수익으로 주변의 불우이웃을 꾸준히 도울 수 있었다. 지금은 매장위치를 옮기느라 자유총연맹에서 옷을 계속 모아두고 있지만 또 다시 매장이 생기면 진열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궂은 일,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묵묵히 일을 돕다보니 총무, 임원 등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그녀는 자신이 맡은 자리의 무거움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였다.
마취제이자 비타민, 봉사
자유총연맹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북한 이탈주민 돕기 바자회를 연다. 다른 봉사단체가 일일 찻집을 하듯, 이곳에서는 바자회에서 북한음식을 판매한다. 천 명이상 찾는 이 바자회에서 그만큼의 음식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곧 있으면 열리는 2월 26일 척사대회 음식 준비도 여성회에서 도맡아 한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허리 필 틈 없이 일하지만 고생이 생활에 젖어서 그런지 봉사가 없는 날 집에 있으면 더욱 좀이 쑤실 지경이다. 봉사를 해야 힘이 생기고, 생기가 돈다니 그녀에게는 비타민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
“처음에는 이리 저리 사람들과 몰려다니며 서툰 마음으로 봉사를 했지만 안양에서 봉사를 시작한지 20년 정도 되니, 봉사가 제 하루 일과를 결정할 정도로 봉사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형식적인 봉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고요.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하면 제가 내세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마음으로 느끼게 되요. 저도 이제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확실하게 박혔네요.”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어 침을 맞으러 다니면서도 요양원 식당에서 무를 다듬고, 파를 썰고, 설거지를 했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아픔이 잊어졌고, 아픔이 오더라도 참을 수 있었다. 봉사의 뿌듯함이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뒷바라지하면서 틈틈이 봉사를 시작하다가 봉사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남편은 ‘집안일보다 봉사를 더 중요하냐’며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몸 아프면 오래 봉사를 못한다’며 응원할 정도다. 아이들도 엄마가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바르게 컸다. “이게 다 봉사의 은덕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아이들만큼 예쁜 조카도 있다. 이모삼촌결연맺기로 생긴 조카다.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맺은 인연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조카뿐만 아니라 조카의 부모님도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줬다. 그녀에게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다.

취재 강나은 기자(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