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덕분에 저도 행복했습니다 [어울터밴드 봉사단 방석근 단장]
여러분 덕분에 저도 행복했습니다 [어울터밴드 봉사단 방석근 단장]
by 안양교차로 2014.11.18
남양주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한 지 벌써 10년차. 이제는 어울터밴드가 도착하면, 단원들과 악수하기 위해 수많은 청중들이 단원들을 둘러싼다. 봉사가 끝날 때면, 다음에 언제 또 언제 오냐며 아우성이 쏟아진다. 이 인기절정의 밴드의 멤버이자 단장인 방석근 봉사자(68)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마음만으로 할 수 없는 봉사
“충남 예산에서 올라와서 몇 십년간 일만 하면서 살았어요.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고 여유도 없었죠. 그러면서 ‘나중에 50대가 돼서 여유가 생기면 봉사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제가 2005년도에 석수 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되면서 석수 2동 노인잔치를 열었어요. 그 노인잔치에서 혼자 기타치고, 노래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서 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후 방 씨는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만나 밴드를 만들었다. 사비를 들여 장비를 사고, 차비를 들여 공연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갔다. 처음에 한 두 군데 장소에서 공연을 하자 다른 장소로, 다른 단체로 인연이 이어졌다. 이제는 군부대, 장애인복지관, 교도소, 하나원, 꽃동네에서도 어울터밴드의 무대가 열린다.
10년 동안 어울터밴드가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공연봉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방 씨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예상외의 답변을 들었다.
“사실 봉사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봉사를 오래 지속하기 힘들어져요. 저 혼자 봉사를 할 때는 상관없었지만 점차 인원이 많아지면서 많은 인원들이 움직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많아지고, 공연할 때 필요한 장비들도 늘어났어요. 그래서 저희는 돈을 받는 이벤트행사에 참여하기도 해요. 물론 모든 수익금은 봉사를 위한 부분에 재투자를 하고요. 다행히도 저희가 5~6년간 무료로 봉사하던 곳에서 소정의 금액을 주시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봉사공연을 가더라도 차비와 식사비 정도는 챙겨주는 곳들도 많아졌어요.”
“충남 예산에서 올라와서 몇 십년간 일만 하면서 살았어요.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고 여유도 없었죠. 그러면서 ‘나중에 50대가 돼서 여유가 생기면 봉사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제가 2005년도에 석수 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되면서 석수 2동 노인잔치를 열었어요. 그 노인잔치에서 혼자 기타치고, 노래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서 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후 방 씨는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만나 밴드를 만들었다. 사비를 들여 장비를 사고, 차비를 들여 공연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갔다. 처음에 한 두 군데 장소에서 공연을 하자 다른 장소로, 다른 단체로 인연이 이어졌다. 이제는 군부대, 장애인복지관, 교도소, 하나원, 꽃동네에서도 어울터밴드의 무대가 열린다.
10년 동안 어울터밴드가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공연봉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방 씨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예상외의 답변을 들었다.
“사실 봉사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봉사를 오래 지속하기 힘들어져요. 저 혼자 봉사를 할 때는 상관없었지만 점차 인원이 많아지면서 많은 인원들이 움직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많아지고, 공연할 때 필요한 장비들도 늘어났어요. 그래서 저희는 돈을 받는 이벤트행사에 참여하기도 해요. 물론 모든 수익금은 봉사를 위한 부분에 재투자를 하고요. 다행히도 저희가 5~6년간 무료로 봉사하던 곳에서 소정의 금액을 주시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봉사공연을 가더라도 차비와 식사비 정도는 챙겨주는 곳들도 많아졌어요.”
나도 모르게 많아지는 나의 편
지난 10월 말, 안양예술공원에서 10쌍의 부부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합동결혼식 현장이었다. 벌써 5년차 이어지는 이 행사를 첫해부터 지원하고, 축가까지 책임졌던 것이 바로 어울터밴드다.
그 외에도 15개 정도의 환경단체와 함께 행사를 열고, 재래시장 살리기 공연을 한다. 휘경동에 위치한 요양원인 유자원에는 한 달에 한 번 생일잔치를 위해 꼭 들른다. 4년 동안 그 약속을 거른 적이 없다. 장애인의 날에는 고정 스케줄로 신망애장애인복지관에서 공연봉사가 잡혀있다. 이도 7~8년째 꼭 지키는 약속 중 하나다. 이렇게 여기 저기 찾는 곳이 많아지자 일정이 겹치기도 한다. 특히 신정이나 추석 때는 효 잔치가 많아 하루에 2~3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그래도 많은 스케줄이 고생이 아니라 기쁨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그만큼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봉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편이 많아졌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저번에는 안양예술공원에서 공연하고 있는데 어떤 분께서 공연이 정말 좋았다면서 돈을 주시더라고요. 지갑에서 몇 장 꺼내서 돈을 주시는데, 사양하다가 한 장만 받았거든요. 그런데 원화나 달러가 아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캐나다 달러더라고요. 한화로 10만 원 정도 되는 큰돈이었어요. 아마 이 돈을 보태서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의미로 주신 돈이었을 겁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죠.”
요양병원에 봉사를 갔다가 지인을 우연히 만난 적도 있다. 지인은 그를 보며 말했다. “봉사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좋은 일을 하셨는지 몰랐네요.”
지난 10월 말, 안양예술공원에서 10쌍의 부부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합동결혼식 현장이었다. 벌써 5년차 이어지는 이 행사를 첫해부터 지원하고, 축가까지 책임졌던 것이 바로 어울터밴드다.
그 외에도 15개 정도의 환경단체와 함께 행사를 열고, 재래시장 살리기 공연을 한다. 휘경동에 위치한 요양원인 유자원에는 한 달에 한 번 생일잔치를 위해 꼭 들른다. 4년 동안 그 약속을 거른 적이 없다. 장애인의 날에는 고정 스케줄로 신망애장애인복지관에서 공연봉사가 잡혀있다. 이도 7~8년째 꼭 지키는 약속 중 하나다. 이렇게 여기 저기 찾는 곳이 많아지자 일정이 겹치기도 한다. 특히 신정이나 추석 때는 효 잔치가 많아 하루에 2~3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그래도 많은 스케줄이 고생이 아니라 기쁨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그만큼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봉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편이 많아졌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저번에는 안양예술공원에서 공연하고 있는데 어떤 분께서 공연이 정말 좋았다면서 돈을 주시더라고요. 지갑에서 몇 장 꺼내서 돈을 주시는데, 사양하다가 한 장만 받았거든요. 그런데 원화나 달러가 아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캐나다 달러더라고요. 한화로 10만 원 정도 되는 큰돈이었어요. 아마 이 돈을 보태서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의미로 주신 돈이었을 겁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죠.”
요양병원에 봉사를 갔다가 지인을 우연히 만난 적도 있다. 지인은 그를 보며 말했다. “봉사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좋은 일을 하셨는지 몰랐네요.”
지금까지의 보상을 받는 방식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뿌듯하고 기분 좋은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울터밴드는 많은 어려움과 위기들을 넘어오기도 했다.
“연천 군부대에 공연 봉사를 하러 갔어요. 그런데 도착해보니 중요한 장비를 빼놓고 왔더라고요. 2시간동안 다시 장비를 가지러 간 적도 있었어요. 또 하나원 행사에서 사진을 찍었다가 황급하게 사진을 지운 경우도 있었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봉사에 전념한 그는 ‘칭찬합시다’에서는 ‘자랑스러운 칭찬의 주인공’으로, 또 안양시민봉사대상 수상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연습실의 벽면에는 그 때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상패와 감사장, 상장들이 가득했다. 각종 지역신문의 인터뷰 기사도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그는 봉사자로서 유명인사다.
하지만 그에게 봉사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저는 제가 즐겁기 위해서 봉사를 해요. 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제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봉사를 하니까요. 그러면서 저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온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상을 최근의 10년 동안 받았다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한테 부지런히 일해서 저처럼 사는 게 꿈이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쑥스럽죠. 제가 대단한 무엇을 하는 건 아닌데……. 솔직히 이 나이에 노래하고 기타 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좋거든요. 무엇이든 자기만족에 취해서 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또 그걸 받는 사람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을 수 있고요. 그래서 제가 모든 봉사 공연마다 마지막 멘트로 하는 말이 ‘여러분 덕분에 저도 행복했습니다’예요.”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뿌듯하고 기분 좋은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울터밴드는 많은 어려움과 위기들을 넘어오기도 했다.
“연천 군부대에 공연 봉사를 하러 갔어요. 그런데 도착해보니 중요한 장비를 빼놓고 왔더라고요. 2시간동안 다시 장비를 가지러 간 적도 있었어요. 또 하나원 행사에서 사진을 찍었다가 황급하게 사진을 지운 경우도 있었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봉사에 전념한 그는 ‘칭찬합시다’에서는 ‘자랑스러운 칭찬의 주인공’으로, 또 안양시민봉사대상 수상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연습실의 벽면에는 그 때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상패와 감사장, 상장들이 가득했다. 각종 지역신문의 인터뷰 기사도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그는 봉사자로서 유명인사다.
하지만 그에게 봉사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저는 제가 즐겁기 위해서 봉사를 해요. 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제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봉사를 하니까요. 그러면서 저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온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상을 최근의 10년 동안 받았다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한테 부지런히 일해서 저처럼 사는 게 꿈이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쑥스럽죠. 제가 대단한 무엇을 하는 건 아닌데……. 솔직히 이 나이에 노래하고 기타 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좋거든요. 무엇이든 자기만족에 취해서 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또 그걸 받는 사람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을 수 있고요. 그래서 제가 모든 봉사 공연마다 마지막 멘트로 하는 말이 ‘여러분 덕분에 저도 행복했습니다’예요.”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