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뒤, 봉사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안양호스피스선교회 김종복 봉사자]
다시 태어난 뒤, 봉사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안양호스피스선교회 김종복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4.10.07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생각도 못 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여기 김종복(61) 씨도 자신의 터닝 포인트를 갑작스럽게 겪어냈다. 그 때 바뀐 인생의 방향키는 ‘봉사’를 가리켰다. 꾸준히 봉사의 길을 걸어온 지난 11년, 그는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지고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난 삶, 의미를 찾다
“살면서 큰 어려움에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김종복(61) 씨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40대, 그는 주변에서 볼 때 누구보다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IBM을 다니며 부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던 휴일이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간 집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후 꼬박 2주간 의식을 찾지 못하다가 깨어났다. 그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게 된 날이었다.
덤으로 살게 된 삶은 하루하루가 전보다 훨씬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이전에도 IBM에서 전사적으로 뇌성마비 아이들이나 정신지체 아이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내가 호스피스 봉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도 함께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며 교육을 받고, 열정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벌써 11년 전 이야기다.
“저는 그때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 이렇게 제가 몸이 건강하고, 능력이 있어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렵거나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봉사를 가면 제가 준비해서 드리는 것보다 늘 정신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받아요.”
일인 다역을 소화해내다
그의 명함은 독특하게도 양면으로 되어있다. 한 면은 안양호스피스 선교회의 실행위원으로, 또 다른 한 면은 안양제일교회 음향, 영상 담당이다. 그는 봉사활동에 있어서는 일인 다역을 혼자서 해나가고 있다.
안양호스피스 선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있는 호스피스 봉사 말고도 총무로 근무하며 호스피스 교육을 위한 봉사를 함께 하고 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봉사이며, 가장 열정적으로 하는 봉사이다.
그의 두 번째 봉사는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전자전기계통의 전공자로서 음향, 영상을 담당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봉사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은퇴 후에는 직업이 되었다.
그의 세 번째 봉사는 색소폰 연주 봉사다. 이 또한 아내와 함께하는 봉사로, 한 달에 2~3번 요양원 등을 다니며 색소폰 연주를 선보인다. 기타나 노래하는 다른 봉사자들의 협조를 받아 다채로운 연주를 선보이기도 한다. 색소폰은 고등학교 때 클라리넷으로 밴드부 활동을 하던 재능을 살려 금세 배울 수 있었다. 주로 안양이나 산본, 안산 지역에서 봉사하지만 요청이 오는 경우 지방까지도 찾아가기도 한다. 교회 일이 없는 쉬는 날 대부분은 이렇게 음악봉사를 한다.
“요양원에 가면 희망 없이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한 시간 정도의 연주가 어떻게 보면 참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정말 행복해하세요. 저도 그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그리고 봉사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느끼죠.”
부부는 매일을 이렇게 함께 봉사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한다. 어려운 일도 함께 이어나가고, 봉사의 보람을 함께 느끼니 부부 사이는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더욱 각별하다.
“살면서 큰 어려움에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김종복(61) 씨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40대, 그는 주변에서 볼 때 누구보다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IBM을 다니며 부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던 휴일이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간 집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후 꼬박 2주간 의식을 찾지 못하다가 깨어났다. 그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게 된 날이었다.
덤으로 살게 된 삶은 하루하루가 전보다 훨씬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이전에도 IBM에서 전사적으로 뇌성마비 아이들이나 정신지체 아이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내가 호스피스 봉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도 함께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며 교육을 받고, 열정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벌써 11년 전 이야기다.
“저는 그때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 이렇게 제가 몸이 건강하고, 능력이 있어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렵거나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봉사를 가면 제가 준비해서 드리는 것보다 늘 정신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받아요.”
일인 다역을 소화해내다
그의 명함은 독특하게도 양면으로 되어있다. 한 면은 안양호스피스 선교회의 실행위원으로, 또 다른 한 면은 안양제일교회 음향, 영상 담당이다. 그는 봉사활동에 있어서는 일인 다역을 혼자서 해나가고 있다.
안양호스피스 선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있는 호스피스 봉사 말고도 총무로 근무하며 호스피스 교육을 위한 봉사를 함께 하고 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봉사이며, 가장 열정적으로 하는 봉사이다.
그의 두 번째 봉사는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전자전기계통의 전공자로서 음향, 영상을 담당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봉사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은퇴 후에는 직업이 되었다.
그의 세 번째 봉사는 색소폰 연주 봉사다. 이 또한 아내와 함께하는 봉사로, 한 달에 2~3번 요양원 등을 다니며 색소폰 연주를 선보인다. 기타나 노래하는 다른 봉사자들의 협조를 받아 다채로운 연주를 선보이기도 한다. 색소폰은 고등학교 때 클라리넷으로 밴드부 활동을 하던 재능을 살려 금세 배울 수 있었다. 주로 안양이나 산본, 안산 지역에서 봉사하지만 요청이 오는 경우 지방까지도 찾아가기도 한다. 교회 일이 없는 쉬는 날 대부분은 이렇게 음악봉사를 한다.
“요양원에 가면 희망 없이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한 시간 정도의 연주가 어떻게 보면 참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정말 행복해하세요. 저도 그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그리고 봉사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느끼죠.”
부부는 매일을 이렇게 함께 봉사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한다. 어려운 일도 함께 이어나가고, 봉사의 보람을 함께 느끼니 부부 사이는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더욱 각별하다.
삶에 봉사를 녹여내다
김 씨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호스피스 교육을 권한다. 봉사를 하지 않더라도 이는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교육에는 죽음을 배우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미리 유언장을 쓰거나 관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해 보는 수업도 있다. 그저 죽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다. 교육으로 본인이 먼저 마음이 풍요로워지게 된다.
물론 봉사까지 한다면 그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불안감과 초조함, 고통으로 가득 찼던 얼굴이 평온함과 행복감으로 안정된 표정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 ‘내가 참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보람이 저절로 찾아온다.
“사람들은 모두 사람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이기도, 받기도 하는 존재에요. 재능이 있으면 나누고 싶은 것이 당연하고요. 봉사가 거창한 무엇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해야 할 일이고 삶의 일부분이죠.”
삶에 봉사를 녹여낸 그의 생각은 그의 모습처럼 수수하면서도 푸근하고 정다웠다.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
김 씨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호스피스 교육을 권한다. 봉사를 하지 않더라도 이는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교육에는 죽음을 배우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미리 유언장을 쓰거나 관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해 보는 수업도 있다. 그저 죽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다. 교육으로 본인이 먼저 마음이 풍요로워지게 된다.
물론 봉사까지 한다면 그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불안감과 초조함, 고통으로 가득 찼던 얼굴이 평온함과 행복감으로 안정된 표정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 ‘내가 참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보람이 저절로 찾아온다.
“사람들은 모두 사람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이기도, 받기도 하는 존재에요. 재능이 있으면 나누고 싶은 것이 당연하고요. 봉사가 거창한 무엇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해야 할 일이고 삶의 일부분이죠.”
삶에 봉사를 녹여낸 그의 생각은 그의 모습처럼 수수하면서도 푸근하고 정다웠다.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