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마지막 순간 두 손을 마주 잡아줄 수 있다면 [안양호스피스선교회 정여해 봉사자]

마지막 순간 두 손을 마주 잡아줄 수 있다면 [안양호스피스선교회 정여해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4.09.30

평온한 죽음을 떠올려보면 미소가 깃든 얼굴과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몸, 두려움을 떨친 마음, 그리고 누군가가 꼭 잡아준 손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평온한 죽음을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정여해(63)씨다. 마지막 순간 두 손을 잡아주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정 씨에게 호스피스와 봉사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이사’를 돕는 일, 호스피스 봉사
정여해 씨의 호스피스 봉사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어머니가 8년여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후에 우연히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훈련 공고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이런 교육을 진작 받았으면 우리 어머님께선 좀 더 행복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으셨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의 마지막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6개월 후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벌써 15년째, 그때의 시어머니를 생각하던 마음은 수많은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이어졌다.
“호스피스 환자분들에게는 생명의 애틋함이 느껴져요. 생에 대한 미련은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으세요. 슬프고 마음 아프지만 그분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위로를 하고, 삶을 더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환자분들에게 우리는 죽음을 ‘이사’라고 표현해요. ‘지금 이곳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한 곳으로 가시기 위한 과정이다. 머무르는 곳만 달라지는 것’이라고요. 그렇게 안아드리고 손잡아드리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죠.”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호스피스 환자들도 많다.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우거나 심지어 눕지도 못하는 환자들도 있다. 이런 불안감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힘들게 한다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몸이 편해지고, 그래야 고통이 덜해진다. 그래서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평온한 죽음뿐만 아니라 평온한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힘든 만큼 무엇보다도 값진 가치
호스피스 봉사는 마음먹는다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3주 교육 후에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다른 봉사보다 마음이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 씨가 속한 안양호스피스선교회에서는 자발적으로 원하는 시간을 정해 일주일에 한 번, 2~3시간 봉사를 하되, 그 이상의 시간은 자제하도록 권유한다.
“처음에는 환자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처음 봉사를 시작하신 분들은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씩 가서 봐 드리고 집에서 죽도 쑤어오고 그래요. 그러다 돌아가시면 당연히 아프고 힘들죠. 그것 때문에 그만두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죠. 그분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도와야 하니까 계속 마음을 추스르는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니만큼 보람도 더 크다. 호스피스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동이 바로 천국’이라며 ‘내가 진작 알았다면, 나도 이런 봉사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정 씨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나도 언젠가는 갈 텐데, 누군가 내 손을 잡아줄 때 이런 마음이겠구나’ 상상하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봉사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깨닫게 돼요.”
봉사자들이 하는 일은 또 있다. 바로 사별가족을 돕는 일이다. 아빠나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며 나들이를 가거나 일 년에 한 번 사별가족들을 모두 초청해 함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가족까지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감동해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더라도 편지를 보내오는 경우도 많다.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
정 씨는 호스피스 봉사 이외에도 다방면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교회 고등부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지도하고, 주중에는 국학진흥원에서 주최하고 문화관광부에서 후원하는 ‘이야기 할머니’로 유치원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이야기 할머니’는 5분에서 8분가량 되는 옛날 이야기를 외워서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하고, 옷차림도 한복 차림으로, 일주일에 두세 군데의 유치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하지만 정 씨는 이 시간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저에게 있어 질 좋은 삶은 휴식이 많은 삶은 아니에요. 사람은 살다 보면 자기만족을 위해 살잖아요.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여유 있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요. 하지만 자기만족은 바닷물 마시듯이 아무리 해도 늘 목마름이 있어요. 그런데 봉사를 한다면 작은 일이라도 내 삶의 질이 높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 저에게 있어서 질 좋은 삶이란 봉사하는 삶이죠.”
이렇게 말하는 정 씨에게서 누구보다도 여유로운 미소를 볼 수 있었다. 호스피스 환자들의 말처럼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정 씨와 같은 마음을 가진 봉사자들이 아닐까?
“이 세상은 나 혼자 잘 돼서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저절로 다가서게 돼요.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잡아준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밝아질 거예요.”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