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어르신들 사진 찍으면서 행복 느낍니다” [직장인 조성진 씨]

“어르신들 사진 찍으면서 행복 느낍니다” [직장인 조성진 씨]

by 안양교차로 2014.08.07

“자, 여기 보시고요. 웃으시고, 찍습니다. 하나, 둘!” 조성진 씨의 카메라에 어르신들의 깊은 주름이 새겨진다. 어쩌면 마지막 증명사진이 될지도 모를 영정사진. 조 씨와 동료 두 명은 묵묵히 그 기록을 남겨 전해드리고 있다.
동료와 함께 걷는 ‘아름다운 사진 여정’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사람들한테 빚을 많이 졌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조성진 씨가 푸르른 여름 나무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다. 뚜벅뚜벅 열심히 걸어온 60여 년 세월이 그의 머릿속을 지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진에 관심을 뒀어요. 누님이 사오시던 잡지에 가끔씩 ‘사진 잘 찍는 법’ 부록이 딸려왔었어요. 그걸 우연히 펼쳐봤는데 흥미롭더라고요. ‘사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죠.”
고등학생이 된 조 씨는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했다. 교내 사진반 활동을 하며 사진 찍는 재미를 알았다. 군 제대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전신인 의료보험관리공단에 입사하면서 그의 사진 활동은 탄력을 받았다. 사진 스킬과 안목을 키우는 동시에 오랜 기간 동안 사내 동호회 사진반을 이끌었던 것.
“사내 사진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여러 번 전시회도 했어요. 그러다가 퇴사하고 사진관을 했죠. 지금은 24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틈틈이 출사도 다니고, 사진으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죠.”
조 씨 말마따나 그는 수십 년 만져온 카메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바로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것. 현재 그는 함께 사진 찍는 김기성 씨, 윤창오 씨와 함께 7년째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있다.
“안양과학대학에서 사진 교육을 받을 때 김기성 씨를 만났어요. 윤창오 씨는 의료보험공단 선배고요. 세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도중 ‘사진으로 사회에 봉사해보자’는 뜻을 품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정사진 촬영을 해오고 있죠.”
사실 조 씨는 동료들을 만나기 전부터 사진으로 봉사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만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만난 것. 세 사람의 ‘아름다운 사진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진 봉사를 넘어 더 큰 봉사 꿈꾸다
조 씨 일행의 활동 영역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아우른다. 사업상 자주 외출하는 김기성 씨가 주로 봉사지 선정을 맡는다.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씩 꾸준히 영정사진을 무료로 촬영해주다보니 복지관이나 자원봉사센터에서 직접 연락이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예전에는 강원도 삼척, 전남 장성도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아서 이제는 주로 수도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각오를 하고 있죠.”
장소 섭외, 사진 촬영, 후보정작업, 인화, 액자 부착, 배송 등이 모두 이들의 몫이다. 다른 데서 후원받는 돈은 전무하다. 오로지 세 사람의 주머니에서 활동 경비가 나오는 것. 이들의 뜻에 동조하는 인화소와 액자 가게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일처리를 해주는 게 그나마 큰 도움이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했어요. 그러니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아깝지 않죠. 다만 쓸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다 보니 한 번 촬영에 어르신 30~50분 정도 촬영하는 것을 기준으로 잡고 있어요. 물론 어르신들이 더 많은 곳에도 방문하지만요.”
세 사람의 사진 봉사는 영정사진 촬영에만 그치지 않는다. 복지관이나 경로당에 행사 촬영 요청이 있을 때도 어김없이 달려가 촬영을 해준다고. 이쯤 되면 힘들 만도 한데, 조 씨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젓는다. 어르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공들여 제작한 영정사진을 보시면서 ‘사진 참 잘 나왔다’고 말씀해주실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몸은 고단할지라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조 씨는 앞으로도 카메라를 들고 어르신들을 찾아뵐 생각이다. 물론 조 씨의 두 동료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조 씨는 은퇴 후 사진 강의 및 공연 활동을 할 계획도 갖고 있다. 봉사하는 분들에게 봉사는 끝없는 ‘훌륭한 욕심’이다.
“작년에 1년 동안 의왕시 희망나래복지관에서 사진 강의를 했었어요. 물론 지금은 직장에 적을 두고 있는지라 강의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은퇴하면 강의 봉사도 여러 군데 다닐 생각입니다. 또 요즘 제가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어요. ‘사진 봉사와 공연을 합치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죠. 아들 녀석이 기타와 드럼을 좀 치니, 아들과 함께 공연 봉사를 다니면 좋겠죠. 요즘은 아내에게도 ‘악기 하나 배우라’고 운을 띄우고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가서 어르신들과 즐겁게 공연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안 그래요?(웃음)”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