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전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류승란 봉사자]

“전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류승란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4.04.22

‘산너머 산’을 만나면 보통 사람들은 으레 포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류승란(62) 씨는 자신을 겹겹이 둘러싼 산마루를 하나둘 넘으며 지금껏 봉사의 길을 걸어왔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지금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이겨나간다는 류 씨. 그녀는 오늘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봉사에 매진하고 있다.
월요일마다 찾아오는 그녀의 기쁨, 봉사
“나는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함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안양 메트로병원 5층 호스피스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구호가 흘러나온다. 진달래를 연상케 하는 분홍색 조끼를 입은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봉사자들은 한쪽 벽에 걸려있는 이 문구를 함께 외치며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다가간다. ‘환자 분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따스한 의지가 봉사자들의 면면에 가득 서려있다. 봉사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친 류승란 씨의 표정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오늘은 좀 괜찮으세요?” 가까운 병실부터 다니며 일일이 환자들의 안부를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가득 묻어나온다.
요즘 류 씨는 매주 월요일마다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을 찾는다. 오전 9시에 도착한 그녀는 주로 그날의 봉사자들과 함께 환자들의 목욕을 맡는다. 침대에서조차 몸을 가누기 힘든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그녀와 봉사자들의 목욕 봉사는 언제든 반갑다.
환자 목욕 봉사로 오전을 보낸 뒤에도 류 씨는 호스피스실을 떠나지 않는다. 매주 월요일마다 진행되는 호스피스 봉사자 양성 과정에서 스태프를 맡고 있기 때문. 그녀가 예비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가르치는 과목은 ‘의사소통’이다. 16년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환자들 및 환자 가족과의 의사소통 노하우를 교육생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이 봉사를 꽤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의사소통 노하우가 생겼어요. 그 어떤 자격증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살아 있는 지식’인 셈이죠. 저희 호스피스 봉사자 양성 과정 외에도 화성 등 저를 불러주는 곳에도 의사소통 강의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류 씨는 심신이 말할 수 없이 지친 환우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환우와 가족 사이에서 불화가 생겼을 때 중재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여생을 조금이나마 편안한 길로 인도하고픈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에 환우들은 그녀에게 많은 의지를 한다고. 하지만 이 일이 힘들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류 씨는 말한다.
“환자 분들을 만나 이것저것 해주다 보면 정작 받는 게 더 많아요. 그분들의 마음과 보람, 뿌듯함을 느낄 수 있잖아요. 전 진심으로 이 일이 즐거워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린이날을 기다리듯, 메트로병원에 봉사하러오는 매주 월요일을 고대하고 또 고대한답니다.(웃음)”
봉사의 꽃, 호스피스실에서 활짝 피다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류 씨는 ‘좋은 일’에 뜻을 품고 있었다. 10년 동안 매달 안양교도소에 다니면서 자매결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손수 싼 도시락을 전달하고, 그들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여러 가지 사정상 안양교도소에 들을 수 없게 된 뒤에는 부모와 이혼한 열다섯 살 여자아이를 몇 달 동안 집에 기거토록 배려하기도 했다.
“여러 노력 끝에 그 애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서 보냈는데 저희 가족도, 그 아이도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요. 이런 경험들을 통해 가정의 소중함을 느꼈고, 외롭고 소외된 분들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로부터 2년 뒤, 류 씨는 다니던 교회 주보에서 안양호스피스선교회의 봉사자 양성 과정에 대한 공지를 발견한다. 낮은 자들을 섬기고 싶었던 그녀는 그 공지를 보자마자 봉사자 양성 과정에 등록했고, 교육 직후 메트로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봉사였기에 열심히 했어요. 그런 제 모습을 예쁘게 봐주셨는지 선교회를 이끄시는 목사님이 저를 봉사분과회장으로 임명해주셨죠. 10년 동안 봉사자들을 대표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했어요. 몸은 고됐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잃었던 제 자신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기쁘게 활동했고,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도 행복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어요.”
역경을 넘어 진정한 행복 찾다
사실 류 씨는 신체적으로 여러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 무렵 한 차례 대수술을 거쳤고, 그 후 임파선에 종양이 생겨 3년간의 치료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5년 전 몸이 힘들어 찾아간 병원에서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외부로부터 인체를 지키는 면역계가 오히려 인체를 공격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은 것이다.
“발병 사실을 알고 가족은 물론이고 모든 지인들이 ‘이제 봉사는 그만 하라’고 말렸어요. 그런데 제 마음은 그게 아닌 거예요. 이 병을 통해 호스피스 환우 분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제야 온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죠.”
그로부터 지금까지 류 씨는 몸과 마음을 다해 호스피스 환우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봉사한다고는 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를 온전히 봉사에 바치기에 무척 힘들 터. 그러나 그녀는 “저는 마중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그 누구보다 밝게 미소 지었다.
“수동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던 시절에, 물이 잘 안 나오면 마중물을 부었잖아요. 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제 봉사로 인해 많은 환우 분들이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셨으면 좋겠고, 봉사하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던 분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고, 저처럼 신체적 역경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오늘은 이 세상을 살며 가장 젊은 날이잖아요. 전 이 날을 정말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요. 몸이 허락하는 한 여기서 환우 분들, 그리고 봉사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이게 제 꿈이에요.”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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