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여기 오시는 분들 모두가 제 가족이에요” [의왕시장애인심부름센터 장현희 사무장]

“여기 오시는 분들 모두가 제 가족이에요” [의왕시장애인심부름센터 장현희 사무장]

by 안양교차로 2014.03.11

장현희(52) 사무장은 오늘도 누군가의 눈이 된다.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 “여기를 찾으시는 시각장애인 분들은 모두 가족”이라며 그들의 손을 꼭 잡는 그녀. 맞잡은 두 손에서 행복의 온기가 피어난다.
따스한 마음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가족’
의왕시 오전동 한편에 자리 잡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의왕시지회(이하 의왕시각장애인협회). 의왕시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힘쓰고 있는 이 단체에는 따뜻한 마음을 품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왕시장애인심부름센터 장현희 사무장도 그중 한 명이다. 장 사무장의 하루는 전화로 시작된다. 출근하자마자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심부름센터 차량의 배차 신청을 받는 것이다. 수십 통의 전화를 연달아 받고, 배차 신청 현황을 정리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오전 10시. 시각장애인들이 의왕시각장애인협회를 찾을 시간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각종 교육과 행사, 점심식사를 챙기고 시각장애인이 하기 힘든 서류작성과 배차 안내 등 각종 업무를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고.
“사실 저희 직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협회 업무 전반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어요. 직원들 모두가 ‘시각장애인 분들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니 즐겁고 신이 난답니다.(웃음)”
직원들의 생각이 이러하니 의왕시각장애인협회의 분위기는 난롯불을 켜놓은 듯 훈훈하기 그지없다. 직원들은 시각장애인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시각장애인들은 직원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제 의왕시각장애인협회 직원들과 120여 명에 이르는 협회 등록 시각장애인 회원들은 그야말로 가족이다.
이 일은 그녀의 천직
장 사무장과 의왕시각장애인협회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사무장은 본래 안양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안양시지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안양시지회장과 장 사무장은 같은 본관이었고, 쉬이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얼마 뒤 그녀가 의왕으로 적을 옮기자 안양시지회장은 의왕시각장애인협회를 소개시켜줬고, 그녀는 곧바로 회원 등록을 했다.
“그 뒤 종종 협회에 들렀어요. 그런데 그때는 사무원도 없었고, 협회 초기 단계라서 상황이 열악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힘을 보태야겠다’ 싶어 일을 시작하게 됐죠.”
2004년부터 3년간 차비 정도만 받으며 일하던 그녀는 의왕시장애인심부름센터가 생기면서 정식 직원이 됐고, ‘사무장’이라는 직함도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전처럼 시각장애인들과 모든 것을 함께한다. 외출적응훈련, 재활교육, 민요교실, 정보화교육, 점자공부 등 교육 프로그램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고, 앞장서서 협회 주관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협회 초창기부터 모든 것을 함께하다보니 이 일이 저에게 딱 맞더라고요. 무엇보다 시각장애인 분들이 도움을 받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이런 걸 천직이라고 한다죠?(웃음)”
기꺼이 그들의 눈이 되다
장 사무장이 누구보다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이유는, 그녀 또한 시각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각막이 약해 시각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열중할 수 없었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눈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현재 그녀는 시각장애 3급. 하지만 몸 상태를 잘 추스르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는 등 꾸준히 관리한 결과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다고. 자신보다 더 불편한 분들을 도울 수 있어 기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그분들을 이해하고, 원하는 부분을 찾아내기가 더 쉬워요. 시각장애인 분들을 보면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뭐든지 도와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여러 면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있음에도 장 사무장은 오히려 그들에게서 많이 배운다고 말한다. 사건이나 사물을 기억하는 능력과 매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시각장애인들이 일반인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 분들은 안 보이시니까 편견 없이 사람이나 사건을 대할 수 있어요. 겉모습으로 많은 것을 판단하는 일반인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죠. 시각장애인 분들이 이런 강점을 잘 살려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우뚝 서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오늘도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을 웃으며 맞이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미소다. 의왕시 시각장애인들의 진정한 동반자, 장현희 사무장. 앞으로도 그녀는 기꺼이 그들의 눈이 되어줄 것이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