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사람이 가장 빛나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야기너머 정흥모 대표]

“사람이 가장 빛나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야기너머 정흥모 대표]

by 강판권 교수 2013.12.31

㈜이야기너머 정흥모(53) 대표에게 올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장애인 부모님들, 중도장애인들과 함께 그들의 삶을 종이에 옮기기 위해 영혼을 불태운 시간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본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 너머에는 ‘사람’이 있었다.
눈물로 쓴 행복 이야기
올해 11월, ㈜이야기너머와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수리장애인복지관)이 한목소리로 환호했다. 장애인 부모님 다섯 명과 중도장애인 세 명의 삶을 엮은 <뜻밖의 여정>이 출간된 것. 8개월간의 기나긴 여정 끝에 책을 받아든 여덟 저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에게 글쓰기의 길을 터준 정흥모 대표의 눈시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 8개월은 정말이지 눈물바다였습니다. 보통 사람도 자신의 삶을 풀어내기 힘든데 이분들은 오죽했겠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와준 여덟 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너머와 수리장애인복지관의 인연은 2013년과 함께 시작됐다. 올해 1월, 두 기관이 ‘장애인 복지 증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 협약의 가장 큰 줄기가 ‘생애사 쓰기 프로그램’이었다. 이에 따라 정 대표는 수리장애인복지관에 다니는 장애인 부모님과 중도장애인을 대상으로 생애사 쓰기 강좌를 열었다.
“3월부터 5월까지 총 12번 강의했습니다. 사실 이 강의의 가장 큰 목표는 ‘수강생들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었어요. 이분들과 만날 때마다 서로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죠. 간간이 생애사 쓰기에 관한 요령도 교육하고요.”
강좌가 끝난 직후 정 대표와 수강생들은 책을 펴내기 위한 원고 작업에 돌입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옮겨 적어나갔다. 생각보다 순탄치 않은 작업이었다. 한 글자를 쓸 때마다 마음속 깊숙이 숨겨놨던 응어리가 터져 나왔다. 정 대표는 그 응어리를 가만히 어루만져줬다. 수강생들도 서로를 다독이며 하나가 되어갔다. 그러자 바윗돌처럼 단단했던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공감과 이해, 사랑이 만들어낸 놀라운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은 <뜻밖의 여정>으로 실현됐다.
“지금은 그분들 얼굴이 정말 밝아요.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결과죠. 또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행복해하세요. 이번 작업을 통해 저도 제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 속에서 행복을 발견했고요. 저희들처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개인의 삶이 우리의 역사다
정 대표는 3년여 전, 다니던 직장에서 나온 후 ‘인생의 후반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퇴사 후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생각하며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 번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자. 두 번째, 평생 글을 써왔으니 이와 관련된 일을 하자. 이 원칙하에 끊임없이 생각했고, ‘생애사’를 만나게 됐죠.”
고대로부터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보니 보통 사람들의 삶은 자연스레 역사에서 배제돼왔던 게 사실. 정 대표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그에게 보통 사람들의 삶은 곧 당대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다.
“구술사와 생애사는 ‘밑으로부터의 역사’이자 ‘역사의 민주화’입니다. 이제라도 민중의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정대표는 이야기너머를 설립하기 위해 구술사를 배우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생애사’라는 개념을 잡는 데만 2년의 시간이 걸렸다. <뜻밖의 여정>은 그의 피땀이 만든 첫 번째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애착이 깊을 수밖에 없다.
돈이 사람보다 귀한 시대 아이러니의 시대. 정 대표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시대상이 그를 생애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생애사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작은 주춧돌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고 존중받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는 앞으로도 개개인의 희로애락에 집중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안양시민대학에서 문해교육을 받은 할머니들의 생애사를 책으로 펴내려고 협의 중입니다. 지금 운영 중인 이야기너머 도서관이 생애사 전문 도서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도 기울일 생각이고요. 이곳에서 일기, 사진, 자서전, 평전, 자전적 에세이 등의 자료를 모아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개인의 인생을 조명하는 인생전도 열 생각이고요.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하나씩 해나갈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