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안양이 엄마 품처럼 편안해요” [아키플랜 종합건축사사무소 윤경숙 부소장]

“안양이 엄마 품처럼 편안해요” [아키플랜 종합건축사사무소 윤경숙 부소장]

by 안양교차로 2013.12.24

그녀는 안양 골목골목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 올해만 서른 번 넘게 마을들을 답사했다. 일일이 사진 찍고 글 쓰는 게 피곤할 법도 하건만, 그녀는 안양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이 행동의 근원에는 ‘애정’이 있다. 자신의 터전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녀, 윤경숙 씨를 만났다.
안양탐사대, 길거리를 누비다
건축가 윤경숙(39) 씨는 어릴 적부터 안양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그녀의 이력은 특이하다. 섬유공학과를 전공하고 관련 직종에서 3년간 근무한 윤 씨는 돌연 건축을 배우기로 결심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꼬마아이 때부터 미술과 만들기를 좋아하던 그녀의 성정이 결정에 큰 몫을 했다. 그녀는 미국의 한 건축대학원에서 3년 6개월간 공부한 뒤 뉴욕 소재 건축사사무소에서 5년간 일하다가 지난 2009년 귀국했다.
익숙한 안양에 다시 자리 잡은 윤 씨는 문득 서울의 변화상이 궁금해졌다. 10여 년 세월을 거쳐 몰라보게 변한 대도시의 모습을 목도하고 싶었던 것. 그러던 차 지인을 통해 한옥의 대가로 유명한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을 만났다.
“조정구 소장님은 10여 년간 매주 서울의 면면을 답사하고 기록한 분이세요. 서울을 둘러보고자 했던 저에게 한 줄기 동아줄 같은 분이셨죠. 4개월간 무작정 소장님을 따라다니면서 대도시의 숨겨진 모습을 목격하게 됐어요. 그 후 구가도시건축에서 2년간 일하면서 도시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죠.”
그 와중에 문득 한 가지 물음이 윤 씨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평생 살아온 안양은 어떤 모습이었지?’ 서울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동안 정작 자신의 터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안양7동 덕천마을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에 홀린 듯이 그곳으로 찾아갔어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안양만의 독특한 주거형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런 곳이 아무런 기록도 없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러다가 주변 지인들에게 ‘안양의 면면을 기록해봤으면 좋겠다’고 푸념처럼 말했는데, ‘좋은 생각’이라며 호응해주시더라고요.”
용기를 얻은 윤 씨는 주변 지인들을 모아 올해 1월, 안양 답사의 첫 발을 뗐다. 이른바 ‘안양탐사대’가 발족한 것이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열두 명으로 덩치가 커졌다. 매주 토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해 안양 길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탐사대원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안양탐사대는 건축가의 모임이 아니에요. 작가, 화가, 조경사, 대학 교수님, 주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탐사대원으로 참여해주고 계시죠. 직업군이 다양하니 한 동네를 둘러보더라도 각자의 시각과 생각이 다채로워서 정말 좋아요.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있답니다.(웃음)”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대, 안양
안양탐사대는 올해 안양1동, 5동, 7동, 9동, 박달동, 관양동, 비산동 등 다양한 마을을 둘러봤다. 현재는 안양3동을 답사하고 있는 중으로, 올해만 총 34회 안양 답사를 실시했다. 윤 씨는 안양탐사대 참가자들이 각자의 분야와 답사를 접목한 ‘창의적인 작업’을 벌이기를 바란다. 그것이 개개인의 역량 및 안양 지역 문화를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마을축제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답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 한 예다.
“안양탐사대 참가자 분들이 서로 영역에서 창의적으로 활동한다면 모두에게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해야죠.”
윤 씨는 안양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의 손에서 안양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는 셈. 현재는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지만, 훗날 이 자료들이 안양의 정체성과 뿌리를 말해주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제가 다니던 학교 주변을 답사하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요. ‘안양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도 실감이 나고요. 답사를 다니면서 안양에 대한 소속감도 굉장히 커졌어요.”
윤 씨는 내년부터 동네의 전체적인 모습과 더불어 독특한 개별 건축물에 대해서도 연구하려 한다. 미리 허락받은 실제 주거공간에 들어가 주민들의 지혜를 엿보고, 반대로 건축가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줄 생각이다. 안양에 사는 건축 관련 대학생 및 전문가들과 협력해서 안양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안양이 엄마 품처럼 편안하다”며 생긋 미소 짓는 윤 씨. 그 미소 속에는 안양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