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안동 주민센터 김명자 동장]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동네 만들 거예요”
[달안동 주민센터 김명자 동장]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동네 만들 거예요”
by 안양교차로 2013.11.12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당장 달안동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낙엽이라도 치우고 싶었다. 그녀의 진심어린 마음이 타지의 주민마저 움직이고 싶게 만든 것이었다. 달안동을 이끄는 김명자 동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지난 7월 달안동장으로 이곳에 온 명자 씨는 베테랑 공무원이다. 광명시에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어느덧 31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중 절반이 넘는 세월을 사회복지에 매달렸다는 그녀. 남들은 1, 2년도 힘든 사회복지 업무를 20년 넘게 이어온 배경에는 녹록찮았던 그녀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제가 사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수출공단에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봤죠. 그 뒤 교대에 가고 싶었는데 학자금 대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봤죠.”
우여곡절 끝에 공직생활에 들어섰기 때문인지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는 명자 씨.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일정 부분 관리해준다는 건 그녀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수록 어려운 사람들의 희망이 조금씩 더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잖아요. 단지 돈이 없다고, 조금 덜 배웠다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그분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생각했죠. 이 생각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 7월 달안동장으로 이곳에 온 명자 씨는 베테랑 공무원이다. 광명시에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어느덧 31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중 절반이 넘는 세월을 사회복지에 매달렸다는 그녀. 남들은 1, 2년도 힘든 사회복지 업무를 20년 넘게 이어온 배경에는 녹록찮았던 그녀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제가 사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수출공단에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봤죠. 그 뒤 교대에 가고 싶었는데 학자금 대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봤죠.”
우여곡절 끝에 공직생활에 들어섰기 때문인지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는 명자 씨.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일정 부분 관리해준다는 건 그녀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수록 어려운 사람들의 희망이 조금씩 더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잖아요. 단지 돈이 없다고, 조금 덜 배웠다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그분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생각했죠. 이 생각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주민들을 위해 살아가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20년 세월은 달안동 주민들의 20년 미래를 위한 활동으로 탈바꿈했다. 동장 취임 후 명자 씨가 가장 먼저 신경 쓴 부분은 역시 소외계층. 그녀는 화분이며 감이며 주변에 있는 것들은 모두 싸들고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외로움을 풀어드렸다.
“어르신들이 ‘동사무소에서 나를 따뜻하게 보살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여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명자 씨는 주민센터 문을 활짝 열어 놨다. 주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 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활짝 열어 놨으니 주민과의 소통이 잘 될 수밖에 없다. 주민자치센터 운영도 설문조사를 통해 투명하게 진행하고, 주민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동장실까지 내준다.
“돈 안 받고도 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저는 봉급을 받잖아요. 그만큼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달안동 주민 이동률은 1년에 50% 안팎으로 비교적 높다. 중소형 아파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 그럴수록 명자 씨는 주민들의 행정 참여를 독려한다.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달안동을 떠나더라도 ‘참 좋은 곳에 살았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픈 ‘좋은 욕심’의 발현이다.
“저는 열린 행정을 통해 달안동을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고 싶어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더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20년 세월은 달안동 주민들의 20년 미래를 위한 활동으로 탈바꿈했다. 동장 취임 후 명자 씨가 가장 먼저 신경 쓴 부분은 역시 소외계층. 그녀는 화분이며 감이며 주변에 있는 것들은 모두 싸들고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외로움을 풀어드렸다.
“어르신들이 ‘동사무소에서 나를 따뜻하게 보살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여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명자 씨는 주민센터 문을 활짝 열어 놨다. 주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 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활짝 열어 놨으니 주민과의 소통이 잘 될 수밖에 없다. 주민자치센터 운영도 설문조사를 통해 투명하게 진행하고, 주민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동장실까지 내준다.
“돈 안 받고도 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저는 봉급을 받잖아요. 그만큼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달안동 주민 이동률은 1년에 50% 안팎으로 비교적 높다. 중소형 아파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 그럴수록 명자 씨는 주민들의 행정 참여를 독려한다.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달안동을 떠나더라도 ‘참 좋은 곳에 살았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픈 ‘좋은 욕심’의 발현이다.
“저는 열린 행정을 통해 달안동을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고 싶어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더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행복을 나누는 V센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달안동’을 만들기 위해 명자 씨는 ‘달안동 V센터(자원봉사센터)’를 만들었다. 주민센터 민원실 한편에 자리 잡은 V센터에서는 매일 봉사자들을 모집한다. 일주일간 모집한 봉사자들은 그 주 토요일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환경미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시간될 때 자신이 사는 동네를 위해서 일하면 좋잖아요. 말로만 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행동해야죠.”
말로만 시키는 동장이 되기 싫어 현장으로 뛰어든다는 명자 씨. 주민들에게 하고픈 말을 물어보니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움직인다.
“내 마을은 내 관심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주민들이 저희에게 찾아와서 여러 가지 제언과 요구를 해야 저희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러니 언제든 찾아오셔서 다양한 말씀 해주셨으면 해요. 아참, 달안동 V센터도 자주 찾아주시고요!(웃음)”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달안동’을 만들기 위해 명자 씨는 ‘달안동 V센터(자원봉사센터)’를 만들었다. 주민센터 민원실 한편에 자리 잡은 V센터에서는 매일 봉사자들을 모집한다. 일주일간 모집한 봉사자들은 그 주 토요일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환경미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시간될 때 자신이 사는 동네를 위해서 일하면 좋잖아요. 말로만 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행동해야죠.”
말로만 시키는 동장이 되기 싫어 현장으로 뛰어든다는 명자 씨. 주민들에게 하고픈 말을 물어보니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움직인다.
“내 마을은 내 관심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주민들이 저희에게 찾아와서 여러 가지 제언과 요구를 해야 저희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러니 언제든 찾아오셔서 다양한 말씀 해주셨으면 해요. 아참, 달안동 V센터도 자주 찾아주시고요!(웃음)”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