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성민무료급식센터 구자술 봉사자 “봉사는 제 삶의 활력소죠”

성민무료급식센터 구자술 봉사자 “봉사는 제 삶의 활력소죠”

by 안양교차로 2013.10.22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활력소를 가지고 있다. 성민무료급식센터 봉사자 구자술 씨는 “내 인생의 활력소는 봉사”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봉사하라”고 권한다. 그녀에게 봉사란 무엇일까. 봉사의 어떤 면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그녀의 ‘봉사터’인 성민무료급식센터 식당에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녀가 전하는 한 끼의 행복
성민무료급식센터의 하루는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된다. 네 명의 봉사자들이 산더미 같이 음식을 만든다. 4시가 넘으면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때문. 이제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대접할 차례다. 80여 명 배식을 한 뒤 설거지와 식당 청소까지 마무리하면 어느새 6시. 봉사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간다.
자술 씨는 매주 월요일마다 이곳에 와서 쉴 새 없는 4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렇게 지낸지 어느새 6개월. 봉사 후 집에 오면 녹초가 되지만, 그녀는 그마저도 기분 좋다고 말한다.
“제가 몸이 약한 편이에요. 그래서 더 하고 싶어도 못해요. 월요일, 목요일에 봉사에 참여했었는데 건강상 이유로 목요일은 못하게 됐어요. 안타까워요.”
자술 씨는 네 명의 팀원들과 함께 음식 만들기부터 배식, 설거지에 청소까지 모든 일을 도맡고 있다. 80여 명의 어르신들이 이곳을 찾지만 음식은 120인분을 만든다. 집안 형편이 여의치 못한 학생들을 위해 40인분의 음식을 더 만드는 것. 힘들지만 뿌듯함이 더 크다며 그녀는 미소 짓는다.
“제 손길을 거쳐 100명의 사람들이 한 끼의 행복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저도 덩달아 행복해져요.”
위로를 주고받다
자술 씨 가족은 7년 전 아무런 연고 없던 군포시로 이사 왔다. 남편의 은퇴와 발맞춰 더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서울에 살 당시 교회 활동에 매진하고 있던 그녀는 바깥 일이 사라지자 곧 무기력감을 느꼈다. ‘안 되겠다’ 싶어 봉사할 곳을 찾아다녔다고.
“군포로 온 뒤로 ‘그동안 못했던 봉사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동사무소에 가고 시청에도 갔어요. 여의치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군포제일교회에서 기도하던 와중에 급식센터를 운영하는 걸 알게 됐어요. 안내 데스크로 찾아가서 봉사 자리를 알아봤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내내 어르신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성민무료급식센터. 이곳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활동 중인 자술 씨는 어르신들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고 고백했다.
“사실 점심식사 대접하는 곳은 여기저기 많은데 저녁 대접하는 곳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여기를 찾는 어르신들이 많이 고마워하세요. 어떤 분은 ‘밥다운 밥은 여기서 한 끼 먹는다’며 손을 꼭 잡아주시더라고요. 눈물이 찔끔 났죠.”
많은 사람들이 봉사의 참맛 느꼈으면
자술 씨의 봉사는 남편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날씨가 안 좋으면 데리러 오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군말 없이 들어준 사람이 남편이었다. 지금까지 91세 시어머니를 기꺼이 모신 것도 남편의 위로 덕분이었다고.
“어머니와 저는 서로 의지하고 살아요. 어머니 걱정에 여행 한 번 제대로 못갈 정도로. 어머니, 남편, 저, 세 노인네가 모여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웃음)”
“봉사는 곧 자신의 활력소”라고 단언하는 자술 씨. 일요일 저녁, 수면제를 먹고 잘 정도로 월요일 봉사에 신경 쓰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했으면 좋겠다”며 나눔의 기쁨을 전했다.
“봉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해 샤워하면 그렇게 뿌듯하고 개운할 수가 없어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건강해지는 거죠. 많은 분들이 여가 생활 조금 줄이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봉사했으면 해요. 그러면 온 사회가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