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가네 김미영 사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홍가네 김미영 사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by 안양교차로 2013.08.27
유독 인터뷰가 부끄럽다며 두 볼을 가리던 김미영 씨. ‘자신은 그저 있는 것에서 조금 떼어드릴 뿐’이라며 그녀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녀가 품고 있는 ‘나눔의 마음’이 진정한 봉사라는 것을.
닭으로 나눔을 실천하다
안양1번가에서 닭요리전문점 ‘홍가네’를 운영하고 있는 미영 씨는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안양지구협의회(이하 지구협의회)에 생닭을 후원하고 있다. 그 숫자가 무려 한 달에 85마리에 달한다고 하니 만만찮은 규모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닭을 후원해왔어요. 40여 마리로 출발해 지금은 이렇게 규모가 커졌죠.”
처음에는 전기구이통닭을 직접 만들어서 전달했다. 하지만 점점 후원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식당운영과 병행하기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그래서 이제는 아예 생닭을 판매점에서 지구협의회로 직배송하고 있다.
“우리가 요리하지 않는데 굳이 신선도를 떨어뜨려가면서까지 여기를 거쳐서 갈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생닭을 곧바로 지구협의회에 배달하고 있습니다.”
지구협의회와 미영 씨의 인연은 그녀의 이모로부터 시작됐다. ‘홍가네’는 원래 이모가 운영하던 가게였고, 그녀는 식당일을 돕고 있었다. 이모가 닭을 후원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당시 지구협의회 회장과 친분을 쌓게 되면서부터다. 미영 씨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서면서 후원은 탄력을 받았고, 이모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은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안양1번가에서 닭요리전문점 ‘홍가네’를 운영하고 있는 미영 씨는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안양지구협의회(이하 지구협의회)에 생닭을 후원하고 있다. 그 숫자가 무려 한 달에 85마리에 달한다고 하니 만만찮은 규모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닭을 후원해왔어요. 40여 마리로 출발해 지금은 이렇게 규모가 커졌죠.”
처음에는 전기구이통닭을 직접 만들어서 전달했다. 하지만 점점 후원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식당운영과 병행하기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그래서 이제는 아예 생닭을 판매점에서 지구협의회로 직배송하고 있다.
“우리가 요리하지 않는데 굳이 신선도를 떨어뜨려가면서까지 여기를 거쳐서 갈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생닭을 곧바로 지구협의회에 배달하고 있습니다.”
지구협의회와 미영 씨의 인연은 그녀의 이모로부터 시작됐다. ‘홍가네’는 원래 이모가 운영하던 가게였고, 그녀는 식당일을 돕고 있었다. 이모가 닭을 후원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당시 지구협의회 회장과 친분을 쌓게 되면서부터다. 미영 씨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서면서 후원은 탄력을 받았고, 이모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은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따뜻한 마음씨, 꽃피우다
미영 씨의 첫 봉사활동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각에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학교 친구를 통해 봉사를 접하게 된 것. 어느 날 미영 씨는 친구가 봉사 다니던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라갔고, 그곳에서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그들을 도저히 못 본 척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학업과 봉사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몸 건강한 것만 해도 큰 복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죄 없는 아이들이 아파하는 게 불쌍했죠. 그래서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목욕, 빨래 등 많은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졸업 후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떤 형태로든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 생각이 지구협의회 생닭 후원으로 꽃피운 것이다.
“혼자 세상을 살 수는 없잖아요. 같이 어울려서 살아야죠.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이나마 나누면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미영 씨의 첫 봉사활동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각에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학교 친구를 통해 봉사를 접하게 된 것. 어느 날 미영 씨는 친구가 봉사 다니던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라갔고, 그곳에서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그들을 도저히 못 본 척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학업과 봉사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몸 건강한 것만 해도 큰 복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죄 없는 아이들이 아파하는 게 불쌍했죠. 그래서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목욕, 빨래 등 많은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졸업 후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떤 형태로든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 생각이 지구협의회 생닭 후원으로 꽃피운 것이다.
“혼자 세상을 살 수는 없잖아요. 같이 어울려서 살아야죠.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이나마 나누면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마음을 전하는 최고의 방법, 봉사
이런 미영 씨도 장사가 안 될 때는 후원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녀는 이 후원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익금에서 운영지출이 조금 더 나갔다고 여긴단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생닭 후원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판매업자가 적어놓은 거래 장부 내역을 보며 ‘그러려니’ 한다. 후원을 일상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요즘 같은 불황에 일부러 돈 내서 후원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어요. 그냥 무심하게, 거래장부에 쓰여 있으면 ‘나갔나 보다’하고 넘겨버리는 거죠.”
미영 씨는 앞으로도 직접 봉사든 간접 후원이든, 자신의 힘이 허락하는 한 나눔의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도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제가 어렸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어려웠어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여서 의료 지원, 급식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도움을 많이 받았었죠. 그래서 저도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없어요.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봉사예요.”
미영 씨의 말처럼 많이 나누는 것은 봉사가 아닌지도 모른다. 마음을 형편에 맞게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 함께 어울려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손을 잡는 것. 이것이 진정한 봉사라는 것을 미영 씨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
이런 미영 씨도 장사가 안 될 때는 후원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녀는 이 후원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익금에서 운영지출이 조금 더 나갔다고 여긴단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생닭 후원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판매업자가 적어놓은 거래 장부 내역을 보며 ‘그러려니’ 한다. 후원을 일상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요즘 같은 불황에 일부러 돈 내서 후원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어요. 그냥 무심하게, 거래장부에 쓰여 있으면 ‘나갔나 보다’하고 넘겨버리는 거죠.”
미영 씨는 앞으로도 직접 봉사든 간접 후원이든, 자신의 힘이 허락하는 한 나눔의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도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제가 어렸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어려웠어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여서 의료 지원, 급식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도움을 많이 받았었죠. 그래서 저도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없어요.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봉사예요.”
미영 씨의 말처럼 많이 나누는 것은 봉사가 아닌지도 모른다. 마음을 형편에 맞게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 함께 어울려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손을 잡는 것. 이것이 진정한 봉사라는 것을 미영 씨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