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김재근 노무사 “안양에서 가장 특별한 공부방 만들었죠”

김재근 노무사 “안양에서 가장 특별한 공부방 만들었죠”

by 안양교차로 2013.07.15

김재근 씨는 노무사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좀 특별한 봉사를 하고 있다. 사무실 한 켠 공간을 내어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 안양 토박이로서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공부방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나눔의 가치란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치는 게 아니라 자기중심을 지키면서 조금씩 나를 내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재근 노무사의 즐거운 봉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민자치공부방의 탄생
안양에서 나고 자란 김재근 노무사는 서울에서 노무사로 오랫동안 일했다. 2년 전 안양 7동에 사무실을 얻은 뒤부터 지역사회공헌을 고민해 왔다고 한다.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반값등록금’ 논의를 보면서 학업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중 지인들과 함께 ‘주민자치공부방’이라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의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대학생들과 저소득층 학생들의 과외를 연결해주는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저와 뜻을 같이 한 전문직 종사자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후원금을 마련했어요. 대학생들에게 일반 과외비만큼 돈을 지급할 순 없지만 작게나마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학업의 기회를 주는 일거양득의 사업이죠.”
문제는 역시 재원이었다. 이렇다 드러내놓고 하는 활동이 아니다보니, 지인들 중에서도 후원을 받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김재근 노무사는 “상대적으로 물질적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 공부방의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며 “물질이든 시간이든 자신의 역량을 갖고 봉사에 동참함으로써 공부방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부방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과외 연결을 해준 것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미래 진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학업에 흥미를 느끼면서 멘토와 멘티로서 관계 맺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다
“예의를 배우는 거죠. 나보다 고작 몇 살 많은 형, 누나지만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예의를 배우면 학습 태도가 달라지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저절로 알게 되죠.”
그는 젊은 시절에 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 학생운동을 10년 했고 노조운동을 거쳐서 정당에도 발을 들인 적이 있었다. 정치를 하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깨달은 그는 지인을 통해 노무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문직이자 평생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일을 발견하게 된 것.
“보람 있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많죠. 임금을 못 받는 분들을 도와줬을 때는 뿌듯함을 느끼죠. 최근에는 청소년 노동권리라는 측면까지 들여다보게 되니까 ‘아, 내가 사회에서 아직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많구나’라는 걸 알게 되고요. 청소년 인권이나 노동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그동안 주민자치공부방을 거쳐 간 아이들은 13명이다. 민간 공부방도 어려운데 자기 사무실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봉사를 한다는 게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다. 김재근 노무사는 “교사들과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며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지 고민하던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부방을 시작하기 잘했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공부방, 동네주민 사랑방으로 열려
아쉽게도 공부방은 현재 잠시 문을 닫은 상황이다. 재정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만, 공부할 인원이 늘어난 데 비해 과외를 해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있다. 비영리교실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김재근 노무사는 ‘나눔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사는 게 각박하지 않다고 봐요. 오히려 최근에는 각박한 모습들이 많이 해소됐죠. 기회가 되면 누구나 나누려고 하는데 그 방법이 차이가 큰 거잖아요. 제 생각은 그래요. 봉사란 자신을 바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생활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는 공부방으로 사용하는 강의실을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동호인 모임이나 공부 모임 등 여럿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장소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한 것. 빔 프로젝터와 장서들이 여러 권 있어서 웬만한 도서관 못지않게 아늑하고 편리하다. 김재근 노무사는 “저녁 시간에 모임을 갖고 싶은 이들에게 언제든지 열려 있는 공간”이라며 “공부방의 역할을 이어가면서 주민의 사랑방과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