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소울음아트센터 최진섭 화백 “남에게 기대어 살고 있다면 우리 모두가 봉사자”

소울음아트센터 최진섭 화백 “남에게 기대어 살고 있다면 우리 모두가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3.07.15

소울음아트센터 대표이자 1급 지체장애인 최진섭 화백. 18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목이 꺾이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전신마비가 되어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그림을 통해 재활에 성공하고, 화가이자 안양시 장애인예술교육을 담당하는 지도자로 거듭났다. 자신과 같은 지체장애를 가진 이들이 사회인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그의 가슴 따듯한 봉사이야기를 전한다.
손가락에 붓 끼우는 데만 5년 걸려
‘소울음’은 ‘깨달음’이란 뜻의 순우리말.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리며 사랑을 나누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깨닫자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 최진섭 화백은 지난 92년 7월 장애인화가모임을 결성하고, 소울음 화실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치장애인 그림 공부방은 이렇게 탄생했다.
“살아남은 오른팔 신경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손가락에 붓을 끼우는 데만 5년이 걸렸죠.”
불가능할 거라고, 모두가 고개를 저을 때 그는 20년 동안 골방에서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다. 붓이 닿는 곳마다 생명력이 피어난 ‘작품’을 만들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자,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지체장애인들이 화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려 달라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장애인들을 보며 최진섭 화백은 장애인들의 ‘소통의 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림은 사진과 달리 자신만의 세계를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잖아요. 색깔도 수없이 많고, 그림을 통해서 심리치료와 재활치료를 할 수 있으니 끌릴 수밖에요.”
장애인과 더불어 그림을 그려온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안양6동의 비좁은 작업환경 속에서도 그는 세계 장애인 문화예술 축제와 대한민국 창작미술 축제 장애인 초대전 등 여러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해 주목을 끌었다. TV교양프로그램에도 몇 번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장애인 복지, 문화예술교육으로 발전시켜야
그는 그림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지체장애인들에게 센터 문을 활짝 열었다. 현재 화실 식구는 장애인 50여 명과 일반인을 포함해 200여 명에 이른다. 교습비는 받지 않는다.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 장애인들의 절망적인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기에 사명처럼 여기고 있다고.
“장애인들도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걸 정부에서 조금씩 알아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장애인 복지’가 ‘장애인 교육’이라는 측면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센터는 지난해 안양시의 지원으로 안양5동에 새둥지를 텄다. 연면적 305.64㎡ 규모의 아트센터에는 장애인용 화장실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중증장애인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2007년 비영리 민간단체로 바뀐 뒤 지난해에는 정식 사단법인단체로 등록돼 명실공이 안양시를 대표하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것.
“아마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 부문은 전국 지자체에서 안양시가 제일 앞서 갈 겁니다. 우리 센터만 봐도 주차장도 있고, 여러 가지 환경이 장애인들에게 편리하게 돼 있어요. 많은 분들이 배려해주고 도와준 덕분에 장애인미술협회에서 조언을 구하는 전화도 많이 걸려옵니다. 보람 있는 일이죠(웃음).”
“인간은 사람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어”
전신마비인 그 혼자서 센터를 이끌어왔다고 하면 불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식사할 때 수저 드는 것조차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그이기에,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다. 매일 장애인들을 차로 데려다주는 이웃들, 화실에 들러 이발을 해주는 아주머니, 또한 식사와 청소 등 화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을 볼 때 그는 봉사가 삶을 따듯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배운단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잖아요? 그건 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봉사라는 건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보답하는 일이 아닐까요.”
화실 안에는 편안한 이야기와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휠체어에 누워 붓을 쥔 남자, 최진섭 대표는 자유롭고 유쾌한 그림 세계에 빠져 오늘도 행복하다. 그는 “중요한 건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느냐보다 그림을 통해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라며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안양시, 그리고 안양교차로를 통해 더 많은 봉사자들이 양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