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자원봉사자 유하비 씨 “봉사는 마음공부입니다. 산 부처에게 봉사하는 것이죠”

자원봉사자 유하비 씨 “봉사는 마음공부입니다. 산 부처에게 봉사하는 것이죠”

by 안양교차로 2013.07.15

유하비 씨는 의왕시 내손1동에서 원룸텔을 운영하고 있다. 라이브카페를 운영하다가 업종을 바꾸었다. 카페를 하던 시절 텅 빈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궁리 끝에 떠올린 아이디어가 ‘경로잔치’였다. 주민센터와 복지관을 통해 수소문해서 불러 모은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연 게 벌써 7년째. 물질이 넉넉해서도, 봉사를 생색내기 위함도 아닌 그저 ‘산부처’를 대상으로 ‘자기 수련’을 하는 거란다. “봉사만큼 좋은 마음공부가 없다”고 말하는 정말 산부처 같은 그를 한낮의 카페에서 만났다.
법정스님 책 읽고 “산 부처에게 봉사하리라” 다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주 지방에 있는 절에 다녔다는 그. 왕복 5시간 거리를 오가며 스님을 뵙고 마음공부를 한 것인데, 어느 날 박으로 머리를 내려치듯 이런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허상을 따라갈 게 아니라 산 부처에게 투자를 하자!” 매주 꼬박꼬박 쓰던 25만 원 돈을 어떻게 활용할까 궁리했다. 어찌 보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 처음엔 어르신들을 위해 간식거리나 사다주자는 마음이었다.
“주민센터를 직접 찾아다니기도 하고, 주변에 소개도 받아서 차상위 계층인 어르신들만 모았어요. 내 엄마 같고, 보면 애틋하잖아요. 원룸텔에서 경로잔치 해드렸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3년 전부터는 아예 사랑채복지관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점심 때 맞춰 600명분의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 비용만도 상당할 텐데 그는 그저 “빈손으로 가는 게 미안해서”라고 말한다. 수박과 딸기, 바나나, 야쿠르트 등 유하비 씨가 복지관에 다녀간 날은 점심 식탁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한 번 어르신들 뵈면 보통 200~300명씩 만나니까. 이제 그냥 생활이 된 거죠. 저도 외로운 사람인지라 봉사로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해요. 물론 비용도 만만찮죠. 매달 100여만 원에 가까운 비용 쓰는 것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웃음).”
봉사로 받는 사랑, 금전적 봉사로 못 채워
오십 평생 살며 얻은 인맥을 활용해 봉사하라고 엄포를 놓을 때도 있다. “당신들이 마음만 있지 못하는 봉사, 내가 할 테니까 돈 좀 달라”는 것이다. 재작년에는 지인을 통해 어르신200명에게 한강 유람선 체험도 시켜드렸다. 선착장에서 한강을 보고 좋아했던 어르신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매주 복지관을 찾는 어르신들의 수는 늘고 있다. 요즘은 수박을 10통, 20통 사가도 어르신들이 원하는 만큼 나눠줄 수 없다. 금전적 부담이 점점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하비 씨는 어르신들이 많아지는 게 오히려 즐겁다고 말한다.
“제가 심심하지 않거든요. 한 주만 안 가도 어르신들이 저 걱정하느라 전화하시죠, 고맙다고 찾아와서 위로해주시죠. 제가 받는 사랑에 비하면, 돈 들어가는 거 그거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에요.”
노인정 텃밭에서 재배한 무공해 배추는 제일 먼저 유하비 씨에게 돌아간다. 주민센터에서 김장을 담가도 그는 시식 1순위다. 노인정에서 열리는 월례회에 빠짐없이 참석할 만큼, 어르신들과는 피붙이 못지않은 정을 나눴다. 그는 “엄마를 만나듯, 친구를 만나듯 편안한 마음으로 간다”며 “봉사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인생 공부인 셈”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만, 어르신들은 특히 더 외로워하세요. 젊은 사람은 눈 뜨면 할 일이라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그냥 하루하루 외로워하면서 사는 거야. 제가 보니까 이 감정적 공허함이 굉장히 무서운 병이더라고요. 그런데 딸 같은 제가 마음 써드리고 챙겨 드리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문 앞에 도시락 툭 던져놓고 가는 거 봉사 아니죠”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 모습을 그려본다는 그. 이제 막 나이 쉰에 돌입한 그는 20년 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봉사로 남은 삶을 풍요롭게 살 작정이다.
“제가 봉사에 돈 쓰는 거 보면 사람들이 그래요. 저거 제정신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이제 철이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봉사를 인연으로 부모와 딸처럼 만나는 거, 얼마나 아름다운 거예요? 그동안 살기 바빠서 나 혼자만 알고 살았지만, 한 순간에 정말 툭하고 터지는 거더라고요.”
자신이 정말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생활의 다른 부분이 채워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유하비 씨. 부자가 되는 것보다, 주변에 알려진 사람이 되는 것보다 그저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그는 “봉사에 대한 개념을 다 버려야만 진짜 봉사가 시작된다”며 “봉사한다는 의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으로 다가가는 봉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독거 어르신 방문하면서 문 앞에 도시락만 던져주고 가는 건 봉사가 아니라고 봐요. 과연 이 어르신이 뭐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요양보호사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어야 진짜 봉사자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봉사는 정말 평생 마음공부인 것 같네요.”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