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인회 의왕시지회 김천희 회장 “장애4급으로 의왕시 봉사왕 된 비결요?”
한국부인회 의왕시지회 김천희 회장 “장애4급으로 의왕시 봉사왕 된 비결요?”
by 안양교차로 2013.07.15
한국부인회는 여성발전사업과 건전가정육성사업 등 여성의 인권과 권익을 강화하는 일들을 하는 비영리단체다. 김천희 회장은 여성단체 활동을 거쳐 한국부인회 의왕시지회 회장을 맡게 되었다. 올해로 두 번째 임기를 맡은 그는 수화, 미용, 장애아 돌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하며 의왕시 ‘봉사왕’으로 손꼽히고 있다.
사진, 수화, 미용까지…영역 넘나든 봉사
그의 부모는 이북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는 부모를 보며 일찍이 봉사를 경험해 왔다. 간호사로 일하다가 결혼을 한 뒤 평탄한 주부 생활을 했던 김천희 회장은 결혼 20주년에 남편과 가족에게 ‘독립선언’을 했다. 더 늦게 전에 봉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정기적으로 남편을 따라서 청각장애인들을 만나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수화를 배웠어요. 내가 수화를 통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더라고요. 이후로 의왕시 수화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시 주관 행사에서 공연을 했죠.”
김천희 회장이 처음부터 의왕시에 거주했던 건 아니다. 남편의 인사 발령으로 전남 광주에서 4년 동안 살았지만, 봉사하던 시절이 그리워 매달 한 번씩 서울로 올라올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2000년에 의왕시로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한 김천희 회장은 사진과 수화 등을 통해 또래 주부들과 다른 색다른 봉사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 수화, 미용까지…영역 넘나든 봉사
그의 부모는 이북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는 부모를 보며 일찍이 봉사를 경험해 왔다. 간호사로 일하다가 결혼을 한 뒤 평탄한 주부 생활을 했던 김천희 회장은 결혼 20주년에 남편과 가족에게 ‘독립선언’을 했다. 더 늦게 전에 봉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정기적으로 남편을 따라서 청각장애인들을 만나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수화를 배웠어요. 내가 수화를 통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더라고요. 이후로 의왕시 수화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시 주관 행사에서 공연을 했죠.”
김천희 회장이 처음부터 의왕시에 거주했던 건 아니다. 남편의 인사 발령으로 전남 광주에서 4년 동안 살았지만, 봉사하던 시절이 그리워 매달 한 번씩 서울로 올라올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2000년에 의왕시로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한 김천희 회장은 사진과 수화 등을 통해 또래 주부들과 다른 색다른 봉사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 나누는 기준 무의미해
“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봉사를 하고 싶었어요. 미용 기술도 군인회관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거예요. 원래는 남편과 아이들 머리해주려고 시작한 건데, 몸에 익힌 기술은 다 봉사로 써먹게 되더라고요.”
보건소에서 수화봉사를 시작한 그는 교회 노인대학, 아름채복지관, 농아인협회 등으로 봉사처를 넓혀나갔다. 의왕시 최초의 장애아 어린이집인 ‘징검다리 어린이집’에서는 보육 봉사자로도 일하고 있다. 웬만한 보육 교사보다 경험이 많아 교사들이 오히려 그에게 물어볼 정도라고.
“장애아를 돌보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눈으로 봐서 낯선 사람인지 아닌지를 금방 구분하거든요. 깨끗하고 맑은 눈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기준이 무의미해져요.”
한국부인회 의왕시지회는 그가 회장을 맡은 직후부터 침체된 조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의왕시 어머니들이 솔선수범해서 지역 발전을 위해 나서도록 헌신하는 것이 그의 역할. 올해로 회장직을 연임하게 된 그는 여성발전 및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왕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봉사를 하고 싶었어요. 미용 기술도 군인회관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거예요. 원래는 남편과 아이들 머리해주려고 시작한 건데, 몸에 익힌 기술은 다 봉사로 써먹게 되더라고요.”
보건소에서 수화봉사를 시작한 그는 교회 노인대학, 아름채복지관, 농아인협회 등으로 봉사처를 넓혀나갔다. 의왕시 최초의 장애아 어린이집인 ‘징검다리 어린이집’에서는 보육 봉사자로도 일하고 있다. 웬만한 보육 교사보다 경험이 많아 교사들이 오히려 그에게 물어볼 정도라고.
“장애아를 돌보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눈으로 봐서 낯선 사람인지 아닌지를 금방 구분하거든요. 깨끗하고 맑은 눈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기준이 무의미해져요.”
한국부인회 의왕시지회는 그가 회장을 맡은 직후부터 침체된 조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의왕시 어머니들이 솔선수범해서 지역 발전을 위해 나서도록 헌신하는 것이 그의 역할. 올해로 회장직을 연임하게 된 그는 여성발전 및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왕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봉사는 일종의 마약이죠”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지만 김천희 회장은 장애 4급이다. 때로는 아프고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장애 때문에 봉사에 걸림이 될까봐 속으로 억누른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치고, 봉사를 하지 않는 순간 오히려 몸이 피곤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봉사는 일종의 마약이에요. 안 할 때는 뭔가 허전한데다가 불안하고 초조해지죠(웃음). 시간이 되면 그냥 나가는 거예요. 나에게 맞든지 안 맞든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봉사를 하다보면 숨통이 트이고,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죠.”
한국부인회 회장으로 일하며 힘들 때도 많다. 아픈 몸을 이끌고 봉사를 하던 그는 올해 초 체력이 한계에 부쳐 일부 활동을 쉬기로 했다. 봉사는 행복한 중독이지만 열 일 제쳐두고 봉사만 하면 금방 지치기도 한다니, 쉼과 봉사의 균형을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봉사하는 분량을 늘려나갔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봉사하는 사람을 보면 불안하거든요. ‘저 사람이 언제까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웃음).”
김천희 회장은 “봉사는 남이 하니까 쉽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사서 고생한다는 말처럼 내 인격의 극한을 체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봉사”라고 설명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지만 김천희 회장은 장애 4급이다. 때로는 아프고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장애 때문에 봉사에 걸림이 될까봐 속으로 억누른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치고, 봉사를 하지 않는 순간 오히려 몸이 피곤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봉사는 일종의 마약이에요. 안 할 때는 뭔가 허전한데다가 불안하고 초조해지죠(웃음). 시간이 되면 그냥 나가는 거예요. 나에게 맞든지 안 맞든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봉사를 하다보면 숨통이 트이고,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죠.”
한국부인회 회장으로 일하며 힘들 때도 많다. 아픈 몸을 이끌고 봉사를 하던 그는 올해 초 체력이 한계에 부쳐 일부 활동을 쉬기로 했다. 봉사는 행복한 중독이지만 열 일 제쳐두고 봉사만 하면 금방 지치기도 한다니, 쉼과 봉사의 균형을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봉사하는 분량을 늘려나갔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봉사하는 사람을 보면 불안하거든요. ‘저 사람이 언제까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웃음).”
김천희 회장은 “봉사는 남이 하니까 쉽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사서 고생한다는 말처럼 내 인격의 극한을 체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봉사”라고 설명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