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말뫼봉사단 장근자 씨 “갑상선암 투병 이후 봉사 더 하게 됐죠”

말뫼봉사단 장근자 씨 “갑상선암 투병 이후 봉사 더 하게 됐죠”

by 안양교차로 2013.07.11

장근자 씨는 자녀들이 크고 난 뒤부터 일을 했다. 월급쟁이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에 보태 조금이나마 살림을 펴보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양재로 학원에서 기술을 배워 커튼가게에 취업했다. 10년을 일한 뒤 사양 산업에서 발을 뺀 뒤부터 이삿짐센터에서 영업을 했다. 이삿짐 견적을 뽑아주고 상담해주는 일을 8년 동안이나 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늘 조심해야 하는 법. 그에게도 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교통사고에서 목숨 건지고 은퇴 후 봉사 시작
“딸애랑 조카를 데리고 완도에 놀러 갔어요. 프라이드 왜건을 끌고 갔는데 맞은편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서 덮치더라고요. 차가 완전히 부서졌죠. 신기한 건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예요. 경찰도 와서 보더니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어요. 아,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그건 액땜이었을까. 일을 그만두면 늘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게 있었다. 어린 시절, 칠월칠석만 되면 태평소를 불던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였다. 언젠가는 풍물놀이를 꼭 해보리라 결심했던 장근자 씨는 퇴직 후 안양시주부민속단에 찾아갔다. 민요를 배우면서 활동하다보니 공연과 봉사를 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동네인 비산3동에 있는 풍물놀이 동아리를 찾아가 합류했다. 그가 2005년 창단한 봉사동아리가 바로 비산3동의 옛 지명을 딴 ‘말뫼봉사단’이다.
“우리 봉사단의 특징은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설거지나 청소 같은 몸 봉사도 함께 한다는 거예요. 매달 한 번씩 호계동 안양노인복지센터에서 500인분 식사 준비랑 뒷정리를 해요. 예술 하는 사람들이 몸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해요? 7년 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했으니 칭찬 받을 만하네요(웃음).”
갑작스러운 암 진단에 충격
매주 목요일은 독거노인들을 위한 반찬 배달 봉사도 맡고 있다. 몸으로 봉사하다가도 가끔 장애인복지센터에서 공연 초청이 오면 또 끼를 발휘한다. 봉사단 내에서 장근자 씨는 전체를 지휘하는 상쇄 역할을 맡고 있다.
“은퇴하고 보통 노는 걸 생각하잖아요. 취미활동도 좋지만 저는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게 봉사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건강하게 살아온 것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삶을 나누는 거죠.”
평범한 삶에도 굴곡은 있다. 한없이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지만, 인생은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3년 전의 일이었다. 갑상선암이라는, 발음하기도 싫은 녀석이 그를 조용히 찾아왔다. 의사는 “다음 번 진료 받으실 때 암센터로 가시라”고 덤덤하게 일러주었다. 장근자 씨는 앞길이 캄캄해 차에 가서 한동안 울었다. 남은 삶 봉사로 선행하며 채우리라 결심한 그에게 청천벽력이었다.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하고 지금은 완쾌된 상황이에요.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고, 몸은 시도 때도 없이 축 쳐지죠. 하루에도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봉사는 한동안 엄두도 낼 수 없었어요.”
그래도 봉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게 봉사였다. 몸이 아플수록 움직여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처럼 봉사에 팔을 걷고 나서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동료들의 눈길에 아랑곳없이 그는 매달 공연봉사와 주방봉사에 빠짐없이 나간다.
“어르신들 보면 힘이 더 생겨요(웃음). 누워 있는 것보다 가서 봉사하고 있으면 아픈 것도 잊게 되죠. 가끔 설거지 하다가 힘 빠지면 눈치 빠른 친구들이 얼른 쉬라고 앉혀요. 그렇게 쉬었다고 또 하고 쉬었다고 또 하고….”
수술하고 난 뒤의 봉사 감회란 전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진심. 이렇게 아픈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안위가 그를 봉사하게 했다.
“어르신들은 늘 저에게 ‘미안해서 어떡하냐’고 물어요. 사실 미안한 것도 아닌데…. 저는 아픈 몸으로도 즐겁게 봉사하는데 말이죠(웃음). 봉사할 때마다 늘 제 자신한테 그래요. 건강해야 한다고. 내가 건강해야 어르신들 즐겁게 해드릴 수 있다고.”
장근자 씨는 “봉사자들이 활동적이고 표정도 밝은 걸 보면 봉사엔 아주 특별한 기운이 있는 것 같다”며 “하기 싫고 억지로 오는 사람들에겐 일이지만, 즐기는 사람에겐 영혼이 새로워지는 게 바로 봉사”라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