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도울터봉사단 김선수 씨 “CF 찍을 때보다 봉사할 때가 더 행복합니다”

도울터봉사단 김선수 씨 “CF 찍을 때보다 봉사할 때가 더 행복합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7.10

김선수 씨는 남다른 이름처럼 꽤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광고회사로 유명한 제일기획 공채 1기 출신인 그는 우리나라 CF 연출자로 1세대에 속한다. 굵직굵직한 광고들을 제작하며 20여 년간 광고장이로 살아온 그는 은퇴 후 봉사자의 삶을 시작했다. 김선수 씨는 “집에서는 설거지 하나 못하던 사람이 밖에서는 설거지 도사가 됐다”며 “봉사는 보수적인 한국 남자도 변하게 하는 위대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20년 광고업계 생활, 봉사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약간 낡은 점퍼에 평범한 얼굴을 한 남자, 누가 봐도 치열한 광고업계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광고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제일기획 CM팀에서 초창기 때부터 일하며 이름을 날렸던 김선수 씨는 또래 소박한 중년 남성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냥 인연이었던 거죠. 그동안 찍었던 CF만도 1천여 편은 족히 넘을 거예요. 몽쉘통통 아시죠? 런칭광고를 제가 담당했어요. 제가 광고업계에 있을 때만 해도 CF가 전부 애니메이션 광고였죠.”
CF 한 편당 제작비가 4~5천만 원 가량 할 때의 일이었다. 지금은 편당 제작비가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75년부터 95년까지 일했으니 꼭 20년을 일한 셈.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광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꾸준히 해 대학에서 강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은퇴한 지금도 그는 프로덕션을 하는 후배들의 SOS를 종종 받는다. 좀 더 활발하게 일할 사람처럼 보였는데, 김선수 씨는 손을 내저었다.
“광고할 때는 만날 별 보면서 퇴근하고 잠도 2~3시간 겨우 잤어요. 이젠 좀 쉬고 싶죠. 이제 와서 돈 얼마 더 벌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봉사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아요?”
보수적인 한국 남자 바꿔놓은 봉사의 힘
김선수 씨가 봉사에 발을 들이게 된 건 한 유력 정치인의 팬클럽의 소모임을 통해서였다. 도울터봉사단은 그처럼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모인 봉사 단체다.
“공무원부터 새터민까지 다양한 분들이 모였어요. 봉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욕심 없이 한 번 뭉쳐보자. 뭐, 그런 뜻이죠. 남을 돕는다는 것보다 은퇴한 뒤에 정신 수양을 놓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를 포함해 10여 명의 회원들이 안양노인요양원에서 매달 두 번씩, 설거지와 주방 봉사를 한다. 예향원이라는 장애인 요양원에서 목욕봉사를 가는 날도 있다. 김선수 씨는 설거지 담당이다. 주방에 한 번 들어가면 3~4시간이 훌쩍 지나도 모를 만큼 시간이 빨리 갈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제가 집에서는 90점짜리 남편입니다. 10점은 집안일을 안 해서요. 제가 자랄 당시엔 남자는 부엌에 발 들이지 말라는 가훈이 있었어요. 그런데 봉사 다녀오면 음식 냄새 풀풀 나고, 설거지 한 흔적이 있으니 마누라가 기 막힌다는 표정이죠.”
그래도 ‘뻣뻣한’ 한국 남자가 하다못해 마루 걸레질이라도 할 정도로 바뀌었으니 봉사의 힘이 대단하기는 하다. 김선수 씨는 “반찬 담그고, 식당 청소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풍경을 배운다”며 “남을 돕는 차원보다 내가 좋고,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하니 봉사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10년째 봉사하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소중함 깨달아
가만히 보면 그는 어딘지 모르게 도인 같은 기색이 있다. 상업적인 광고계에 오랫동안 몸 담았지만, 일할 때보다 봉사하는 요즘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선수 씨.
“일과 봉사가 다르긴 하죠. 젊은 시절에는 봉사고 뭐고, 그냥 먹고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잘 먹고 잘 사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그런데 이제는 주위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더불어 행복할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아마도 봉사가 그런 제 마음의 연결고리가 되지 않았나싶어요.”
김선수 씨가 생각하는 봉사는 등산과 닮은 점이 많다. 등산이 오를 때는 힘들지만 정상에서 숨을 들이 마시면 상쾌하듯, 봉사 또한 남을 도우면서 스스로 정신이 맑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 그는 “10년 가까이 봉사하다보니 그 전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이고, 보이지 않던 주변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을 알고 인생이 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