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주부 원복희 씨 “봉사자는 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생 아니에요”

주부 원복희 씨 “봉사자는 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생 아니에요”

by 안양교차로 2013.07.09

원복희 씨는 평범한 주부이자, 성결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딴 학생이다. 봉사모임의 총무이거나 노인복지에 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하면, 관내 후원문화를 독려하는 열성적인 봉사자이기도 하다. 그에겐 직함은 없지만 맡은 역할은 여러 개다. 남들은 석사를 따서 왜 취직 안 하냐고 묻지만, 그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이유가 단순히 봉사를 더 잘하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말한다.
머리와 다리가 함께 움직이는 봉사자
서울이 고향인 원복희 씨는 남편과 결혼한 이후 안양에 정착하면서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연히 성결대에서 진행하는 노인복지 관련 무료 강의를 듣고, “봉사도 배워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암으로 투병했던 시아버지를 홀로 수발하는 외며느리로서의 경험도 큰 동기가 됐다. 그렇게 늦깎이 대학생으로 성결대에 입학, 석사까지 받으면서 복지 분야에 깊숙하게 발을 들였다.
“학기 중에 학교 측에서 마련한 해외 노인요양기관 탐방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때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을 돌아봤는데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운영의 전문성을 보고 우리나라 여건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그들이 정말 부러웠죠. 노인복지가 사회복지의 틀 안에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어요.”
원복희 씨는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행동하는 것이 함께 이뤄지는 보기 드문 봉사자다. 그 자신이 노인복지기관에서 봉사를 하고 있으며, 성결대에서 노인복지에 대해 공부하길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전천후다.
얘기를 듣고 보니 젊은 시절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받은 적이 있다. 2002년 국내에 컴퓨터 관련 붐이 일었을 때 원복희 씨는 PC통신을 공부한 1세대 주부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컴퓨터를 공부했다. 이후 주부인터넷대회 등을 거쳐 의왕시청과 군포시청에서 컴퓨터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봉사자들 연결해주는 중간 관리자 필요해
“안양을 비롯해 여러 곳을 다녀보면 봉사기관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봉사자도 많죠. 하지만 봉사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할이 전무해요. 기관의 봉사 담당자, 그리고 전문 봉사자를 연결해주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필요한 거죠.”
그는 “봉사자들을 잘 키우는 기관은 무척 드물다”고 말했다. 어떤 기관이든지 봉사자들이 3개월 이상 봉사를 지속하는 곳은 체계가 잡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일부 기관에서는 봉사자를 직원처럼 대하고, 일손을 거들어주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는 한참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된 이유도 봉사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기관에서 봉사자들의 지위에 대해 인식시켜주는 매개 역할을 맡기 위해서다.
“제 꿈은 안양 지역에서 봉사자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는 일을 하는 거예요. 또 제가 항상 권하고 있는 게 바로 후원이거든요. 우리나라는 후원문화가 정말 발달돼 있지 못해요. 나의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봉사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는 사랑의 열매, 유니세프 등 각종 사회복지기관 여러 곳에 후원금을 조금씩 나눠 내고 있다. 후원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믿기에 정치후원금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돈을 조금씩 나눔으로써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수당 받고 봉사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닌가요?”
“안양에 20년 동안 살면서 ‘내가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하고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일본 같은 경우는 마을 단위로 배움의 커뮤니티가 잘 돼 있어서 큰 모임에서 배운 사람들이 작은 모임에서 나눠주는 식으로 봉사를 해요. 결국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적어도 안양에서만큼은 봉사자들의 특기나 적성, 인성 등을 고려해서 그들이 정말 자신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어요.”
원복희 씨는 봉사자들에게 교통비를 지급하는 데도 인색한 국내 봉사문화의 빈곤함을 지적했다. 복지국가인 유럽에서는 봉사자들에게 작은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데 비해, 한국은 봉사자들이 돈 받는 일을 오히려 더 부끄러워한다는 것. 원복희 씨는 “봉사라고 허드렛일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봉사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봉사자들의 입지도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 해 전 남편과 강원도 여행 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삶에서 봉사의 의미를 되찾았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가 중앙선을 넘고 충돌해 큰 사고가 났었던 것. 당시 견적이 400만 원 정도 나올 정도였는데 남편 또한 크게 다친 데가 없어 기적이라고 생각했었다고.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봉사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봉사가 어려우신 분들은 자택에서 가까운 곳부터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봉사하면서 사는 삶이 정말 가치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