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빵 굽는 마을 황태섭 사장 “자식 같은 빵, 어려운 이웃 위해 나눠주니 뿌듯하죠”

빵 굽는 마을 황태섭 사장 “자식 같은 빵, 어려운 이웃 위해 나눠주니 뿌듯하죠”

by 안양교차로 2013.06.28

비산동에 있는 제과점 ‘빵 굽는 마을’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14년 전 같은 자리에서 둥지를 튼 뒤로 수제 제과점을 고집하며 안양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이 특별한 점이 있다면 하루 지난 빵을 세일해서 파는 대신 호계동 노인복지관에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것. 이렇게 소비되는 빵값이 매년 1,0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황태섭 사장은 “주변에선 원재료도 비싼데 하나라도 더 팔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자식 같은 빵인데 주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활용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루 지난 빵이지만 14년의 노하우와 정성 담겨 있어
황태섭 사장이 비산동에 제과점을 차릴 당시만 해도 안양엔 270여 군데의 제과점이 있었다. 모두 자가 운영이었다. 현재는 프랜차이즈의 입김이 거세 40여 군데만이 남아 있는 상황.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빵집들에 관한 기사가 언론에도 나오는데, 빵 굽는 마을은 오늘도 그저 묵묵히 단골 고객들을 맞고 있다.
“솔직히 빵 만드는 사람으로 억울한 면도 있죠. 저 같은 제과기능장들은 이 기술을 배우느라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는데, 프랜차이즈 개업하시는 분들은 재료와 기술 등을 쉽게 지원받잖아요. 마케팅이나 홍보 면에서 프랜차이즈에 점점 잠식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하지만 그만큼 자가 운영하는 빵집의 강점을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빵 하나도 직접 만드는 이곳의 빵맛을 아는 사람은 곧 단골이 된다. 빵의 종류만도 140여 가지. 리모델링을 3년마다 한 번씩 해서 얼핏 보기엔 프랜차이즈와 비슷해 보이지만, 내실을 따져보면 황태섭 사장의 정성어린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당일 만든 빵은 당일에 모두 소진한다’는 원칙이야 요즘 흔한 캐치프레이즈가 됐지만, 남은 빵을 봉사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는가.
빵맛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봉사의 보람이 더 커
“처음엔 제가 만든 빵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당일 안 팔린 빵은 전부 버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것마저 세일해서 파느니, 차라리 어려운 분들에게 나눠주면 빵에 대한 자존심도 지키고 봉사도 될 것 같았죠.”
가게 오픈 당시부터 지켜온 이 원칙은 14년 동안 변함이 없다. 자가 빵집 운영자들의 모임인 안양시제과협회에서도 황태섭 사장의 봉사 정신은 꽤 유명하다. 손님이 뜸한 날에는 엄청난 분량의 빵이 남지만 그는 가차 없이 처분한다. ‘품질이 떨어지는 빵을 봉사에 쓰느냐’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사실 빵 굽는 마을에서 만든 빵은 여느 프랜차이즈에서 만든 것보다 화학성분이 덜 들어가 맛과 신선함은 오히려 더 낫다.
“빵은 오븐에서 나오면서 동시에 노화가 진행됩니다. 잘 모르는 분들은 마트에서 파는 것과 프랜차이즈에서 만든 게 다 똑같은 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빵들은 며칠이 지나도 곰팡이가 없지만, 저희는 따듯한 곳에 3일만 놓아둬도 곰팡이가 싹 펴요. 빵이 발효가 잘 되는 셈이니 그만큼 신선한 빵인 셈이죠.”
빵 대신 돈을 달라는 사람도, 빵이 며칠 놔두었더니 금방 곰팡이가 생겼다며 불만을 털어놓는 경우도 많지만 황태섭 사장은 개의치 않는다. 먹는 것으로 봉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그 역시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봉사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고, 자신이 사업을 하는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기에 14년 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 돌아보면 마음이 편해져요
황태섭 사장은 봉사에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관내에서 작은 봉사모임을 꾸렸다.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독거노인 어르신들 돕는 활동이다. 호계동 노인복지관에는 매년 300포기의 김장을 직접 담가 배달하고 있다.
“젊을 때는 봉사 모르고 살았죠(웃음). 지금 이렇게 봉사하면서 사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돈만 갖고 봉사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가진 기술과 재능을 활용하고, 때로는 배추도 버무리면서 인생을 배우는 거죠.”
틈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봉사에 나서는 이유 역시 ‘어릴 때부터 봉사정신을 길러줘야 커서도 남을 돌아볼 줄 안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일부러 설거지도 시키고, 청소를 돕도록 하면서 단지 봉사점수만 따는 게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는 것.
“돈을 많이 벌어서 봉사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단지 저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돌아보고 나면 제 마음이 더 편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하자고 권하죠(웃음).”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꾸만 자신이 봉사로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봉사 경험의 폭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봉사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황태섭 사장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안 보이는 곳에서 오랫동안 봉사한 분들이 꽤 많다”며 “칭찬릴레이를 통해 그런 분들이 하나둘씩 발굴되고 있는 것 같아서 봉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