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한문강사 김상남 씨 “봉사는 나를 위해 하는 겁니다.˝

한문강사 김상남 씨 “봉사는 나를 위해 하는 겁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6.28

“봉사는 나를 위해 하는 겁니다.”

군포에서 ‘국 푸는 봉사자’로 유명한 김상남 씨. 6년 동안 군포시 노인복지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배식 봉사를 하고 있는 그는 한자 선생님이기도 하다. 복지관에서는 노인들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생활한자’를 가르치고, 초등학교에서는 방과 후 교실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봉사는 나를 위해서 하는 거다. 상대방을 위해 나를 ‘갖추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그의 행복한 봉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간이 흐를수록 봉사의 ‘진심’ 알게 돼
올해 일흔 두 살인 김상남 씨는 60대 초반까지 학원 강사로 일했다. 서울에 유명한 입시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그는 은퇴 후 군포시 노인복지관을 알게 되었다. “병든 마음으로 정보나 들을까”하고 왔던 복지관에서 그는 봉사 제의를 받게 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순 없고 화장실 청소는 할 수 있다”고 했더니 앞치마를 주더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식당에서 국 푸는 봉사는 그의 몫이 되었다.
“처음 한 3개월까지만 해도 할 일이 생겼다는 게 좋았죠. 내가 남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자부심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제 착각이더라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봉사하는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돼요.”
김상남 씨가 말한 진심은 배식 과정에서의 갈등 과정을 거쳐 알게 된 봉사의 의미다. 배식이 없는 주말을 빼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국자를 들고 서있는 그이지만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단다. “반찬은 공손하게 놓아주어라.” “식판에 음식 담을 땐 기름 덜 묻게 담아야 설거지 하는 사람이 편하다.” 배식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을 배려한 그의 ‘잔소리’에 뒷말을 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안 들으면 모를까 그런 말 들으면 당연히 섭섭하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한 사람이 잘함으로써 여럿이 좋아질 수 있다는 취지니 오해하지 말라고. 배식하는 과정도 상대방에 대한 존경이 필요하니 봉사가 만만하게 볼 게 아니죠.”
“군포 시민들 한문 교양 갖추도록 만드는 게 목표”
배식 봉사와 함께 복지관 봉사자들에게 무료로 ‘생활한자’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한자 급수 취득에 관심 많은 이들이 그에게 부탁을 한 것. 워낙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줘 3급·2급 자격증을 딴 봉사자들도 꽤 많다고. 나이 여든이 넘은 노인이 3급 자격증을 땄다며 아이처럼 좋아할 땐 그 역시 봉사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차비라도 받고 가르쳐준다고 하지만 저는 봉사로 하는 게 더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벌써 생활이 되어 이젠 익숙해요.”
몇 해 전엔 장애우들을 위한 징검다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자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알아들었어?”라고 하면 “예”라고도 대답 못하는 아이 몇 명을 데리고 무려 1년 동안 가르쳤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아이 한 명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가구공장에 취업을 했다. 그 학생은 스승의 날에 “선생님 덕분에 제가 문자도 보내게 되었어요”하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상남 씨는 “군포시민들이 한문 섞은 문장도 읽을 수 있는 교양을 갖추었으면 좋겠다”며 “군포시민의 한문 역량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 내 바람”이라고 말했다.
봉사는 소비가 아닌 충전, 자신의 행복 지키는 방법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한문 교육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한 봉사자들이 유치원에 보조강사로 파견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복지관에 후원하는 유치원들과 협약을 맺고 노인들의 ‘인생 2막’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봉사 6년 차인 그에게 봉사란 자기 충전이요, 삶의 행복을 위한 에너지다. 복지관에서 봉사를 하루 2시간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못 견딜 정도라는 그. 나이 60이 넘도록 자신만 알고 살았던 지난 삶을 돌아보면, 봉사를 시작한 이후 뒤늦게 철이 드는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봉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모든 게 결국은 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죠. 봉사는 겉으로 보기엔 노동이고 소비 같지만, 실은 충전이고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저는 이제 봉사 없으면 못 살아요.(웃음)”
현재 군포노인복지관 봉사자들의 모임인 ‘비추미 봉사단’의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그릇이 적다고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다”라며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봉사의 ‘봉(奉)’자가 ‘받들다’는 의미인데, 자신을 위해 하는 봉사는 부끄럽다고도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변합니다. 젊은 시절 봉사 한 번 안 한 제가 인생을 이렇게 가치 있게 살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봉사가 좋은 점이요? 그건 말로 아무리 해도 모릅니다. 봉사의 진짜 ‘보너스’는 직접 해봐야 알죠. 일단 해보신 분들은 저랑 말이 좀 통할 겁니다.(웃음)”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