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한지의 수명은 천 년.. [ 리빙한지]

한지의 수명은 천 년.. [ 리빙한지]

by 안양교차로 2014.02.07

리빙한지의 손지민 선생은 본인이 작업했던 한 한지함을 가리켰다. “수채화는 물이 묻으면 색이 번지지만 민화는 그렇지 않아요. 한지도 그래요. 질기고 색도 오래 가죠.” 평촌 학원가 근방에는 한지가 좋아서 한지공예의 길에 뛰어든 손지민 선생이 운영하는 리빙한지가 있다. 이곳을 찾아 그가 한지공예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현재 운영하는 수업 내용을 알아보았다.
주소 :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900-2 아트빌딩 106호(평촌학원가 초입, 신한은행 옆건물)
문의 : 010-2525-6663
한지공예를 시작하게 된 이유
손 선생은 자신의 부모님 또한 손으로 직접 하는 작업을 종종 했으며 자신은 그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부모님께서는 농번기 이후에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시곤 했어요. 아버지께서는 목수일과 농기구 만드는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뜨개질과 장식용품 만드는 일을 하셨죠. 저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죠. 사료포대 아시죠? 그걸 곱게 뜯으면 다섯 겹이 나와요.”
여러 겹으로 갈라 놓은 사료포대에 그림을 그렸다가 부모님께 혼이 난 적도 여러 번. 당시에는 그 사료포대가 중요한 살림밑천이었기 때문이란다. 이런 옛 기억때문인지 그는 지금도 저소득층, 편부모,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관심이 많다.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꿈을 펼치기 어렵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능기부의 형식으로 관련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우연히 저소득층 아이들과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수업을 마친 뒤 아이들에게 글씨를 써 주기로 했거든요. 엄마에게 할 말 없어? 라고 물어보니까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짠하던지.. 그래서 그 다음부터 저소득층 아이들 수업에 나서게 되었죠.” 그가 사회생활의 처음부터 한지공예와 캘리그라피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00년 초중반부터 최근까지는 지역신문사에서 근무를 했었다. 그러던 도중 한지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 것. 한지의 다양한 색감과 그릇이나 상, 가구까지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하여 재미를 느꼈던 그는 이후 민화에도 손을 댔으며, 그러다보니 검은 색과 흰 한지의 빛과 대조를 이루는 캘리그라피 공부까지 하게 되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후 그는 한지공예, 캘리그라피, 컬러리스트 등 자격증을 땄고 창덕궁 공예대전, 과천시민회관 공예대전, 전국 한지공예응용대전 등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 헤이리 봄 예술축제 오월의 댕기전에도 참여했다. 청주여자교도소와 서울구치소 주관으로 캘리그라피 행사를 진행했으며 공로를 인정받아 법무부에서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자, 그는 신문사 일을 접고 나왔다.
“한지의 질감과 색을 이용해 오늘은 어떤 작업을 할까를 생각하니 사무실 일에는 집중이 되지 않았죠.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일이 제대로 되겠어요? 결국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하나를 포기하자고 결심했죠.”
수강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진행하다
“수강생 본인은 가구를 만들고 싶은데 다른 소품 분야만 열심히 하다가 지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에요.”
현재 리빙한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한지공예 강습은 여덟 가지 소품을 만들어 본 뒤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분야를 바로 연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본인이 원하는 분야 이외를 충분히 습득해야만 관련 분야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강의들과의 차이점이다.
“한지공예는 일일이 오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이 예단함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칼로 조금씩 잘라내는 작업이 필요해요.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집중력이 필요하죠.” 그가 보여준 예단함에 새겨진 문양은 일정 패턴이 무수히 반복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계가 찍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한 것이었다.
“이렇게 작업하다가 지치면 한지를 뜯어서 만들기도 하고, 비즈를 붙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렇게 일일이 한지를 잘라내는 것이 힘든 것만은 아닙니다.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장점도 있죠.”
한지 공예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캘리그라피를 해도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의 강습을 받으면 되고 붓과 먹이 있으면 되기에 준비에 드는 품은 한지공예에 비해 적은 편이다.
비단의 수명은 오백 년, 한지의 수명은 천 년
그는 한지공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고 전했다.
“한지 가격이 요즘 들어 많이 올랐어요. 찾는 사람이 없어 파는 사람도 줄어든 탓이죠. 때문에 종류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물론 저는 원주에 가서 직접 구매해 오지만요. 원주에서는 닥나무를 직접 떠서 한지를 만들거든요.”
한지는 ‘비단의 수명은 오백 년이지만 한지는 천 년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한다. 목판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경우, 751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1966년도에 발견되었는데, 본문 내용이 판독 가능할 정도였다.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닥나무를 잿물에 넣어 삶아 표피를 떼어내고 반죽하여 방망이로 찧어서 물뜸을 한다. 다음에는 한 장씩 얇게 말아 걸어놓고 말린 뒤, 부드럽게 두드려야 완성이 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색을 물들인다. 한 마디로 품이 많이 든다.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들어진 한지를 이용하는 한지공예. 손지민 선생은 그만큼 감성충전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
“생각지도 않은 게 재산이 될 때가 많죠.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완성하고 나면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요.”
은은한 빛과 색깔을 담은 한지 작품들, 그리고 나만의 손맛을 표현하는 캘리그라피를 보급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진한 고즈넉함을 담아 작업을 하고 있다. 취재 이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