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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평화롭게 머물 수 있는 터전” [평화의집 김광진 원장]

“아이들이 평화롭게 머물 수 있는 터전” [평화의집 김광진 원장]

by 안양교차로 2018.10.12

1946년에 설립된 ‘평화의집’은 우리나라의 아픔과 그 맥을 같이 했다. 송귀환 설립자는 사비를 털어 아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일제에게 목숨을 잃은 독립투사 자녀들이 이곳에 머무르도록 했고, 전쟁 후에는 전쟁고아를 돌봤다. 그리고 이제 평화의집은 가정폭력이나 가정해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 보호받는 터전이 되어주고 있다.
외조부의 큰 뜻을 이어받아 천 명의 아이들을 돌보다
올해로 31년 째 평화의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광진 원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사업가’를 꿈꿨다. 외조부인 고 송귀환 설립자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평화의집에서 일하는 보육사를 좋은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좋았어요.”
기독교교육을 전공해 선교원 교사를 3년간 하면서도 그녀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원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자기도 했다. 그녀를 본 어머니는 ‘결혼도 안 한 애가 왜 저러는 지 모르겠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아이들이 좋았고, 게다가 성격에도 맞았던 것 같아요. 그 때까지는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없었을 때였어요.”
그러던 그녀는 87년 평화의집에 입사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업무를 터득하다보니 과장을 거쳐, 국장이 되었다. 그리고 전임 원장이 정년퇴직을 하면서 그녀도 공채에 지원해 평화의집 시설장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가 처음 평화의집에 왔을 때만 해도 이곳에 있던 아이들은 100명이 넘었고,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평화의집을 지켜왔으니, 퇴소한 아이들을 모두 포함해 그녀를 거쳐간 아이들만 해도 천 여명이 넘는 셈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9월 7일, 사회복지의날에는 사회복지발전 공로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수많은 아이들
수 많은 아이들은 각각의 사연으로 기억된다. 한 친구는 처음 그녀가 입사했을 때 평화의집에 머물던 아이였다. 간질은 약을 주기적으로 먹으면 증상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아이만큼은 약 먹는 것을 게을리 했는지, 혹은 약이 듣지를 않았는지 증상이 자주 나타나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쓰러지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해 취업을 했다. 하지만 결국 20대 후반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아이는 그녀에게 있어 가장 눈에 밟혔던 아이이자 끝까지 계속 생각났던 아이다.
“그 아이와 친구들인 11명의 아이들이 새희망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어요.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의 아이들인데, 그 중에는 자기 앞가림을 잘해서 중소기업 사장이 된 친구도 있어요. 모든 아이들이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기억에 남죠.”
뿐만 아니라 그녀와 지낸 아이들 중에서는 평화의집에서 만나 결혼한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이 저한테 주례를 부탁했어요.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평생 해보지 못했을 일이었을텐데 주례도 서봤네요. 그 부부는 명절 때 와서 여기 아이들과 고기도 구워먹곤 해요. 저한테는 아이들이 잘 되어서 새로 가족을 만들어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뿌듯함이에요.”
새로운 거처로 평화의집이 안착할 수 있길
그녀에게 있어 아이들만 희망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평화의집을 찾는 봉사자들도 그녀의 자랑이자 희망이다. 현재까지 30여 년이상 봉사를 이어오는 ‘아미회’라는 봉사자 모임도 있다.
“저보다 먼저 평화의집에 오신 분들이기도 하죠. 종합대학모임인데, 토요일마다 오는 대학생 봉사자들이 1시부터 6시까지 공부와 공동체 놀이를 해요. 대학교를 졸업한 구 멤버들이 성인이 되어 퇴소한 아이들의 대소사를 챙겨주고 멘토역할도 해주죠. 과거에도, 지금도 가장 고마운 이들이 이 아미회 봉사자들이에요.”
평화의집에서 머무르는 아이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필요한 봉사자도 많다. 게다가 학습, 돌봄, 식사는 물론, 환경미화까지 필요한 봉사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녀가 봉사를 위해 평화의집을 찾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따뜻하되, 냉철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달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봉사자분들은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오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해요. 아이들에게 뭐든지 다 내어줄 것처럼 하고, 내일 또 오겠다고 약속하면 아이들의 버릇도 나빠지고, 봉사자 스스로도 부담스러워질 수 있어요.”
현재 평화의집 주변은 재개발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복지 법인으로서 법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전하게 된 평화의집은 새로 이전할 곳에 건물이 다 지어지지 않은 상태다. 여차하면 이 많은 인원이 이곳을 나와 임시 거처에서 머물러야 한다. 원만하게 이전문제가 해결되어평화의집이 다시 아이들의 돌봄에만 집중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