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식

엄마한테 물어봐라

엄마한테 물어봐라

by 권영상 작가 2018.05.10

카톡! 카톡이 왔다. 초등학교 친구다. 서울에서 만나 오랜 날을 함께 하며 정이 깊어진 친구다. 그는 몇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신갈쯤에 나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카톡! 그 소리에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문자 카톡이 아니고 그림과 글이 있는 꽤 긴 카톡이다.
그런 류의 카톡은 내용이 뻔하다. 인생이 뭐네, 하고 쓴 닳고 닳은 글들이다. 나는 대충 그림만 보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그런 류의 글을 카톡! 보냈다. 이내 답장이 왔다. 시간 없더라도 자신이 보낸 글 꼭 한번 읽어보란다. 알았어,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는 또 다른 일에 치어 저녁 늦게 쯤에야 카톡을 열었다. 보낸 글의 제목이 ‘아버지, 그 침묵이 말하는 것’.
아버지와 간극을 메우고 싶은 한 젊은이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몇 년 사이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저예요."
"어, 그래! 잘 있었냐? 엄마 바꿔주마."
"아니, 엄마 바꾸지 마세요. 아버지하고 얘기하고 싶어요."
"왜? 돈이 필요하냐?"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대학에 보내주고, 먹여 살리느라 애쓰고, 자신이 이만큼 자라게 된 것은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도 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 술 마셨냐?"
스티브 비덜프,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중에서”라는 인용처까지 달려있는 글이다. 휴대폰 화면을 끄면서 문득 생각해 보니 이 글속의 아들이 나와 같고, 이 글속의 아버지가 나와 같았다. 나도 이런 식의 아들로 컸고, 커서는 이런 식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 무렵의 나도 아버지와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드릴 말씀은 어머니 입을 통해 전해졌고, 역시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생각이 내게 전해지는 식의 대화가 대화라면 대화였다. 그것도 대학은 가도 되는지, 등록금은 대주실 수 있는지…. 주로 돈과 관련된 대화였다.
그 후, 그 아버지는 인생을 다 사시고 돌아가셨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와 그때에 못하던 대화라는 걸 다시 한다. 가끔 아버지의 유택을 찾아가 답답한 내 심정을 말씀드리면 아버지는 뜸을 좀 들이신 뒤 대답해 주셨다. ‘엄마한테 물어봐라.’ 그게 아버지 대답의 전부다. 이제 나는 아버지의 그 대답이 얼마나 아름답고 절묘한지를 알 나이에 와 있다.
내 생각이 어머니 입을 통해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생각이 어머니의 입을 통해 내게 전해지는 동안 아버지와 나의 거친 목소리는 완곡해지고 감정은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화다운 대화는 없어도 아버지와 나 사이엔 별 탈이 없었다.
5월엔 먼 세상에 나가 사시는 아버지를 한번 찾아뵈어야겠다. 엄마한테 물어봐라, 뻔하신 그 대답이지만 아버지 대답을 듣고 싶다. 저녁에 딸아이가 카네이션 꽃화분을 들고 들어왔다. 딸아이에게 받은 기쁨을 나는 또 나의 아버지에게 돌려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