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작약의 이름

작약의 이름

by 김민정 박사 2020.06.22

노숙의 피로를 감춘 민낯의 안개들이
담쟁이 오르다만 창가를 기웃댄다
어머니 먼 길 가신 뒤 고요마저 끊긴 빈 집

스멀스멀 흩어지는 안개를 따라가면
뭉개진 손금 위에 두고 가신 꽃 한 송이
봄처럼 부지런해라 그 말씀, 울컥한다

사람이 가고 나면 그림자도 거둬지고
사랑도 흩어져서 꽃잎처럼 지겠지만
작약의 이름 하나로 지키는 봄이 아프다
- 이두의, 「작약의 이름」 전문

작약꽃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하는 작품이다. 안개가 스물거리는 날, 화자는 생전의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고향집의 작약꽃을 보며 ‘봄처럼 부지런하라’고 말씀해 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정이 북받치고 있다. 삶은 살다가 스멀스멀 사라지는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셋째 수에 오면 그 감정이 더 잘 살아나고 있다. ‘사람이 가고 나면 그림자도 거둬지고/ 사랑도 흩어져서 꽃잎처럼 지겠지만/ 작약의 이름 하나로 지키는 봄이 아프다’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사람도 언젠가는 가고, 사랑도 언제가는 꽃잎처럼 진다는 것을 깨달으며 작약이 피어 있는 현재, 작약의 이름 하나로 지키는 이 봄이 아프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현재에 더욱 충실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의 봄을 생각하면 참 황당하게 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 가을까지도 우리는 이 더운 여름날에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황사가 심하다고 하는 날도 갑갑하게 생각되어 마스크를 쓰지 않던 나에게는 한 시간만 쓰고 있어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조금 일이라도 하고 나면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니 더욱 덥고, 언제 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수업 시간에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해야 하니 더 힘들다. 학생들도 마스크를 쓰고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수업마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고, 가을과 겨울에 2차 유행이 온다고 하니 더 심해지면 어떨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상황이 호전이 되면 너무 좋겠지만 악화될 수도 있으니,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미래에 대한 근심보다도 오늘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라는 스피노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학교 화단에 오늘 아침에도 나팔꽃이 많이 피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었는데도 그렇게 싹이 안 나더니 언제부터인가 싹이 나기 시작했고, 키가 자라지 않더니 어느 날 그 작은 난쟁이 나팔꽃의 줄기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줄기나 잎에 비해 큰 꽃을 피운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고 기뻐서 활짝 웃어주었다.
자라지 않는 꽃에도 열심히 물을 주고 보살폈더니 결국은 이렇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그래, 우리의 삶에,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기쁨으로 돌아올 날이 있지 않겠는가.
마스크를 쓰고 물조리개로 화단의 나팔꽃, 코스모스, 해바라기에게 열심히 물을 주다가 보면 얼굴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한두 시간이 금방 가 버린다.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늘 바빠서 종종거리지만 나팔꽃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그저 기쁘다. 우리 삶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