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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미학: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여행의 미학: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by 강판권 교수 2020.06.15

여행은 경험과 지혜를 얻는 삶의 중요한 과정이다. 함께 하는 여행도 즐겁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은 아름답다. 혼자 떠나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장점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 함양군에 위치한 남계서원(藍溪書院)과 청계서원(靑溪書院)은 조선시대의 중요한 인물을 모시는 곳인데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1450-1504)을 모신 곳이자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9곳 서원 중 한 곳이다. 남계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설립 당시 서원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계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즉 강학공간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에 있는 건물 구조의 전형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인 경북 영주시의 소수서원은 전학후묘의 구조가 아니다.
정여창은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이자 김굉필·조광조·이언적·이황과 함께 동방오현 중 한 사람이다. 그는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서 독서하다가 김굉필과 함께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했다. 그는 강직한 성품 때문에 연산군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그는 연산군 1년(1495) 현재 함양군의 안음현감 재직 때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서 백성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1498년 무오사화 때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으며,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되었다.
정여창이 무오사화에 연루된 것은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 때문이었다. 조의제문은 세조가 왕위 찬탈한 것을 중국의 항우가 의제를 죽인 것에 비유한 글이다. 김종직의 제자였던 탁영 김일손(1464-1498)은 연산군 때 만든 『성종실록』의 사초(史草)에 스승의 글을 넣었다. 그런데 김일손의 사초에는 당시 사초의 책임자였던 이극돈의 잘못도 들어있었다.
이극돈은 자신의 잘못이 사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 삼아 연산군을 움직여 김종직과 그의 제자를 처형한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김일손은 무오사회로 능지처참되었다. 그러나 무오사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김종직이 부관참시를 당했으며, 정여창과 정여창의 친구인 김굉필도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되었다.
남계서원 바로 옆에는 김일손을 모신 청계서원이 위치하고 있다. 청계서원은 김일손이 이곳에 청계정사를 세워 공부했던 곳을 그가 죽은 뒤 후학들이 세운 것이다.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은 같은 스승을 모신 제자와 관련한 서원이라는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우리나라 서원 중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같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내가 두 서원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두 서원의 이름이 ‘청출어람(靑出於藍)’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청출어람은 중국 전국시대 순자(荀子)의 『순자·권학편』에 나오는 ‘푸른색은 쪽 색에서 나온다’는 데서 유래한다. 청출어람은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말로 쓰인다.
나는 이 말이 코로나19 이후가 이전보다 낫길 바라는 뜻으로도 사용하고 싶다. 힘든 시대일수록 청출어람의 사고가 절실하다.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큰 고통이 뒤따른다. 모든 생명체가 엄청난 고통 뒤에 탄생했듯이, 고통은 단순히 힘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를 낳는 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