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바람에 떨어진 느티나무 가지를 줍다

바람에 떨어진 느티나무 가지를 줍다

by 강판권 교수 2020.05.18

바람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은행나무와 소나무 등 바람을 통해 수정하는 나무들은 바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천연기념물 제290호 충북 괴산군 삼송리 왕소나무가 2012년 볼라벤 태풍으로, 천연기념물 제541호 경남 합천군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가 2019년 강풍으로 쓰러져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길을 걷다 보면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근무하는 곳 길에서 바람에 떨어진 느티나무 가지를 주워서 연구실로 가져왔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보니, 느티나무는 열매를 맺었다. 내 주변에는 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느티나무가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나의 부모도 90 평생 동안 느티나무에 꽃과 열매를 본 적 없이 돌아가셨다.
나는 느티나무의 꽃과 열매를 보았는가의 여부로 나무에 대한 관심을 평가한다. 느티나무를 알지만 꽃이나 열매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드물다. 이는 일상에서 만나는 나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뜻이고, 늘 만나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도 자생하는 귀한 존재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중 느티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천연기념물이 많다는 것은 나무가 오래 산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들이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느티나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존재를 수호신으로 삼는 것은 나무의 가치가 물질을 넘어 정신까지 인정하기 때문이다.
느티나무의 정신적 가치는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무한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수백 년을 산 느티나무의 모습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년 제사를 지내면서 느티나무를 숭배한다. 인간의 나무에 대한 숭배는 종교의 인간 숭배와 차원이 다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숭배는 종종 인간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나무는 어떤 경우에도 갈등을 낳지 않는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 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아주 많지만 한 그루의 나무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마을에 가면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있는 느티나무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숭배하는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편안한 시간을 즐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중정당 기둥은 느티나무다.
내가 바람에 떨어진 느티나무 가지를 주워서 연구실로 가져온 것은 1년 동안 목숨을 걸고 만든 한 존재의 노력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결실을 맺지 못하고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느티나무의 아픔은 인간도 늘 겪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느티나무의 고통에 눈 감지 않고, 잠시라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것은 느티나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느티나무가 바람에 가지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느티나무에 대한 측은지심은 나무가 나의 아픔에 대해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듯이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느티나무의 아픔을 통해 나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