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현실이 된 노노(老老)상속

현실이 된 노노(老老)상속

by 이규섭 시인 2020.05.01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케어’에 이어 노인이 노인에게 상속한다는 ‘노노(老老)상속’도 현실화되고 있다. 노노상속은 피상속인(상속을 해주는 사람)과 상속인(상속 받는 사람) 모두 노인이 돼 자산이 고령층 안에서 맴도는 현상이다. 2017년도 과세 대상 상속의 경우 피상속인 중 51.6%가 80대 이상인 것으로 우리나라 국세통계서 드러났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얹혀살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게 노인 세대의 보편적 가치다. 물려준 다음 “부양 안할 거면 재산 도로 내 놓으라”고 ‘불효 소송’을 내 봤자 대부분 패소로 끝나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내 집이라도 지키고 있어야 자식들이 찾아오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나이 들면 아픈 곳이 늘게 마련이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간병비 같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사망한 뒤 배우자의 주거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자가 집 한 채를 남기고 사망하면 남은 사람은 그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자식이 사업자금이 필요하다며 상속 재산 분할을 요구하면 팔아서 나눠줘야 한다. 법정상속 비율은 배우자 몫이 1.5, 자녀 당 1이다. 팔아서 나눠 준 뒤 남은 돈으로 새 주거지를 마련하고 노후 생활비까지 해결하려면 막막해진다.
올해 92세인 언론계 선배는 아내와 사별한 뒤 지방에 거주하던 집을 팔아 66세와 61세 된 아들 2명과 손자 4명에게 상속한 뒤 둘째 아들집에 얹혀산다. 투병생활에 필요한 병원비 등도 녹록치 않아 자식 입장에서는 부양 부담이 크다. 초 고령 노인이 노인 줄에 접어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노노상속’은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2세다. 80대 중후반에 숨지면서 그 때 상속을 한다면 상속받는 자녀는 대략 60대 전후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보다 고령화 문제를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 2013년 피상속인 중 68.3%가 80대 이상이었고, 그 가운데 90대 이상이 23.7%에 달했다. 노노상속 현상이 늘어나면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산이 젊은 층에 이전되지 않고 노인층에 머물게 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감소되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현금을 다다미 밑이나 장롱에 감춰 두는 규모는 지난해 1월 현재 약 50조 엔으로 총 발행 현금(100조 엔)의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고령의 자산 소유주가 치매 등에 걸리면 자산 인출이나 처분이 불가능하여 실질적으로 자산이 동결되는 이른바 ‘치매 머니’ 규모도 2017년 기준 143조 엔에 달한다니 엄청난 규모다.
일본 정부는 내수 소비 장려 등을 위해 조손간 증여에 세금을 깎아주는 변화를 택했다. 2013년 교육자금에 증여세 비과세를 적용했고, 2015년에는 주택취득자금, 육아·결혼·출산 비용까지 혜택을 확대했다. 우리나라도 노노상속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1인 가구의 상속은 어떻게 될까. 증여를 해두거나 유언장을 써두지 않으면 생전에 특별한 교류가 없거나 데면데면한 형제자매나 4촌 이내 친척들이 상속 받게 된다. 늘어나는 나홀로족도 상속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